우리 사회에서 '소득 양극화'가 화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양극화는 좀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극화 해결에 팔을 걷어붙인 참여정부에서 소득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 3분기(7~9월)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상위 20% 소득은 630만원,하위 20%는 80만원에 불과해 소득 격차가 7.79배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7.28배에 비해 더 악화한 것이다.

전국 가구에 대한 소득배율을 조사한 2003년 이후 3분기 기준으로는 가장 큰 소득 격차를 보인 것이기도 하다.

과연 소득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이고,해결책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소득 양극화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까지 소득 분배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였다.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과실이 근로자 등 중하위 계층으로 퍼져나간 결과다.

빈부 격차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0~1 사이의 값으로,낮을수록 소득 분배가 잘 된 것) 추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지니계수는 1982년 0.31 수준에서 1990년대 중반엔 0.28까지 낮아졌다.

이 때문에 한국은 경제 발전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분배가 개선되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곤 했다.

그러던 한국의 소득 분배가 급속히 악화한 건 외환위기 이후.1997년 0.283이던 지니계수는 1998년 0.316으로 수직 상승한 뒤 1999년엔 0.32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는 이후 등락을 거쳐 2004년과 2005년 연속 0.310을 나타내며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과거 추이를 통해 보면 표면적으론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상황 악화가 최근 소득 양극화의 직접적 요인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득 양극화를 외환위기의 부산물로만 치부하기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소득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경제환경 변화 등 구조적 요인과 내수 부진 등 경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정설이다.

구조적 요인으론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중국의 부상,정보기술(IT) 진보 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IT 반도체 자동차 등 고도 수출산업으로 급속히 재편된 게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 경쟁력을 상실한 섬유 기계 가전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 등지로 이전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졌다.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공산품,농산물은 중소제조업 근로자나 농민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됐다.

이른바 잘 나가는 업종·기업들은 더욱 잘 나가는 반면,부진한 업종·기업들은 더욱 부진해지는 양극화 현상의 뿌리가 여기 있다.

또 구조적 요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취약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들이 대거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경기 변화에 민감한 자영업자 고용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한국의 자영업자 고용 비중은 전체 고용의 27.1%(2004년 기준)로 미국(7.3%) 일본(10.8%) 대만(16.0%)에 비해 크게 높다.

이들 자영업자의 소득은 내수경기 변화에 워낙 민감해 소득 양극화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구조적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2003년 이후 본격화한 경기 둔화는 소득 양극화를 부른 촉매제였다.

특히 최근 경기 둔화의 특징인 내수 침체는 음식점 숙박업 등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을 크게 위축시켜 부익부 빈익빈을 한층 심화시켰다.

소득 양극화를 푸는 방법도 간단치는 않다.

일각에선 빈곤층의 사회안전망 확충에 우선 막대한 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확충이 당장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순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양극화의 근본 해법은 될 수 없다.

분명한 건 양극화 해소의 첩경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점이다.

저소득층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 그들이 스스로 소득을 불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단기적으론 경기 회복에 주력하고 중장기적으론 경제의 기초실력인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2000~2002년 중엔 지니계수가 떨어지다가 경기가 둔화한 2003년부터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등 성장과 소득 분배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며 "양극화 문제의 핵심인 소득 분배를 개선하려면 결국 경제성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chabs@hankyung.com


< 지니계수는 미국ㆍ호주가 더 높아 >

외국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소득 양극화 정도를 외국과 비교하면 북유럽 복지국가보다는 심각하지만 영미계 선진국이나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중진국보다는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2005년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낮은 순서(소득 불평등이 작은 순서)로 따져 조사 대상 111개국 중 25위였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중에선 중간 이상인 13위였다.

지니계수로 따져 한국(0.31)보다 낮은,다시 말해 소득 불평등이 덜한 나라는 덴마크(0.24) 일본(0.24) 벨기에(0.25) 스웨덴(0.25) 등 주로 북유럽 국가였다.

반면 미국(0.40) 영국(0.36) 뉴질랜드(0.36) 캐나다(0.33) 등 영미계 국가들은 모두 한국보다 지니계수가 높았다.

홍콩(0.43) 싱가포르(0.42) 등도 한국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그만큼 소득 양극화가 더 심하다는 얘기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이 우리나라보다 높은데도 그 나라에선 양극화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심해지면서 국민들이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