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부활한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개입을 골자로 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1950~1960년대를 전후로 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급속도로 쇠퇴했던 자유주의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 속의 물가상승)으로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한계에 봉착한 뒤 새롭게 부상했다. 최근 타개한 밀턴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양극화'와 관련이 깊다.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세계화가 이 세상을 부자와 빈자만 존재하는 사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두 얼굴'(로버트 아이작)이나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 등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을 비판한 대표적인 책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소중하게 여기는 '시장'은 약육강식의 전쟁터 같은 것이어서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시장에 대한 비판,경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시장원칙보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경쟁보다는 합의에 따른 분배를 중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선한 의도'로 출발한 정부 개입과 분배우선 정책은 거꾸로 대다수 국민의 삶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이 실제 현실이다.

◆더 가난했던 사회주의 사회

'이론에 대한 모든 시험은 그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예측을 반증하려는 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 칼 포퍼의 반증 이론이다. 특정한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명제가 틀리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례가 단 하나라도 나온다면 그 이론은 폐기된다는 것이 요점이다.

시장과 경쟁의 대안으로 '정부의 역할'과 '분배'가 사회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는다면 과연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고 빈부격차도 해결될까? 정부의 역할과 분배가 가장 확고했던 사회체제는 아마도 사회주의일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과 중국 베트남 북한 등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고,빈부격차가 없었을까? 아니다. 이들 사회가 오히려 더 부패했고,가난한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빈부격차도 심했다. 그 결과 소련을 대표로 한 사회주의 체제는 생긴 지 70여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정부의 역할과 분배 제도가 강화된다고 해서 빈부격차가 사라지고 가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에서 명확해졌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어떤가. 시장과 공동체주의를 적당히 혼합시키고 경쟁과 분배를 양립시키려 했던 이 제도는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을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대안으로 거론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불행하게도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앞세운 냉혹한 사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했고 사회 활력마저 떨어뜨렸다. 유럽의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독일마저도 '아젠다 2010'을 통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좋은 이름을 갖거나 훌륭한 취지를 갖췄다고 해서 결과마저 좋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제도가 사회 전체를 허약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지국가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빌헬름 뢰프케)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복지제도가 확대될수록 이 제도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는 얘기다. 국가가 복지혜택을 늘릴수록 국민들은 이 제도에 안주하며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게 되고,이를 충족시키려다 보면 막대한 재정적자와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게 된다.

"잉여금을 나눠주는 제도가 일단 시작되면 중단될 수 없으며,군중들은 그것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된다"며 중우(衆愚)정치를 비판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력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지적이다.

◆개인 욕구 부추겨 공익을 창출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사회 내부의 양극화를 줄이려는 훌륭한 취지로 시작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수정자본주의로 불리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마저 속속 폐기되고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나라는 어떨까. 미국과 영국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깃발을 내걸고 정부의 역할과 분배 개념을 축소했다. 그리고 시장과 경쟁을 복권시켰다. 시장을 중시하고 이기주의,개인주의를 부추긴 미국과 영국에서는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났고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사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개인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공익을 창출하는 효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의 실험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처의 개혁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를 폐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1942년 작성된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를 토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던 영국의 근로소득세율은 최고 83%,부동산.금융 소득세율은 최고 98%였다. 과도한 복지가 과도한 사회적 부담을 초래했던 것이다.

대처는 1979년 집권한 뒤 늘상 파업을 일삼던 탄광노조를 굴복시켰고 1980년 178만여명이었던 공기업 직원수를 2년 뒤 47만명으로 대폭 줄였다. 국민연금 지급액도 줄였고 소득세와 부동산.금융소득세의 최고세율도 40%로 낮췄다. 이른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편 것이다. '암탉''노동자의 적'으로까지 비난받았던 대처 총리는 영국을 '유럽 최대의 자본 유치국'으로 만들었고 1999년에는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재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갖췄다. 1986년 11.8%였던 실업률은 2000년대 들어 5% 이하로 낮아졌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한국이나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한 중국 등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의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한국이나 중국,영국에도 사회적 문제들이 산적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작을 뿐만 아니라,점차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들 사회가 진전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