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9월12일자 A1면

노·사·정 대표들은 11일 한국노총이 수정 제시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한 '조건 없는 3년 유예'를 전격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또 직권중재 폐지,대체근로 허용 등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의 다른 쟁점에 대해서도 극적으로 타결했다.

노·사·정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2007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2009년 12월 말까지 3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노·사·정은 또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필수 유지 업무제를 도입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키로 했다.

한편 노·사·정 협상에 불참한 민주노총은 노사로드맵 협상 결과를 야합이라고 비난하면서 총파업 등 강경투쟁 방침을 밝혀 로드맵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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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노동부 등 노·사·정 대표들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노사로드맵) 협상을 전격 타결지었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하고,필수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필수유지 업무제를 도입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 등이 주요 골자다.

그동안 쟁점 사안을 놓고 대립으로 일관해오던 노·사·정이 극적 합의를 이뤄 파국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합의 내용을 입법화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노동단체들이 "이번 협상 타결은 노동 기본권 신장을 외면한 노·사·정 담합"이라며 비난하고 나서는가 하면,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 또한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히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마치고 나오다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폭행당하고 한국노총 조합원 1000명이 민주노총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여는 등 양대 노동단체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노사로드맵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다는 얘기다.

노·사·정,'이번 합의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

노·사·정은 이번 합의가 보편적 국제 노동 기준과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을 함께 고려해 마련된 것이라며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은 "노사 간 이해 대립이 첨예한 노동법을 역사상 처음으로 노·사·정 간 합의라는 사회적 대화로 타결지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또 "향후 3년간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를 놓고 다시 협상을 벌이며 정부와 사용자가 국제적 관행과 기준을 존중하도록 조직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며 "노동운동에서도 소모적 대결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세와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협상 창구 단일화 등의 대책이 없고 노사가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두 가지 제도가 시행되면 생산현장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번 합의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또한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는가 하면,경영상 해고 협의기간을 단축하되 해고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한 것 등은 국제 기준에도 근접한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시민단체,'노·사·정 야합으로 노동개혁 후퇴 초래'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시민단체 등은 "노·사·정의 밀실 야합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노동개혁의 후퇴를 초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1997년 법제화된 후 이미 10년이나 적용이 유예됐던 사안인데 결국 이번에도 또 유예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자 측에 유리한 것과 사용자 측에 유리한 것을 하나씩 바꾸는 꼴이 됐다는 점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나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이런 식으로 정치적 거래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참여연대는 민주노총이 지난 6월 노·사·정 대화의 장에 복귀했는데도 정부가 이번 합의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해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한국노총 또한 사용자측의 노조봉쇄 정책을 승인함으로써 노동자의 연대성이라는 원칙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도 노사로드맵은 노동부와 경총,한국노총의 야합이라며 애초 계획대로 내년에 복수노조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법과정서 개혁방향 확실히 매듭지어야

복수노조 허용 등은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핵심 과제였음을 감안할 때 이번 노사로드맵은 속빈 강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게다가 3년 뒤에 정말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러니 정부가 외쳐온 노사관계 선진화가 한낱 허울 좋은 구호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노조 전임자에 대해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에도 맞을 뿐더러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노사로드맵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를 바로잡는 것인데 노조가 총파업 으름장을 놓는다고 정부가 뒤로 물러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복수노조 문제의 경우도 비록 국제노동기구(ILO)가 결사의 자유를 들어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아예 도입 방안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은 3년을 벌었다고 해서 또다시 허송세월해서는 결코 안 되며 국회 입법 과정에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개혁 방향을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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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노사관계 로드맵=2003년 9월 발표된 노사관계 개혁 방향으로 공무원노조 허용과 퇴직연금제 도입,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관련 사안 등 우리의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위한 기본 방향과 주요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으로 통용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노·사·정 간 합의 도출을 위해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1998년 1월 발족됐다.

노·사·정 당사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에 관한 노동정책 및 이와 관련된 산업·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우리나라의 각 기관과 산업체에 조직돼 있는 노동조합의 연합단체.1946년 3월 설립됐으며 노사 협조 및 근로자 복지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노동자의 권익을 도모하기 위해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등이 주축이 돼 1995년 11월 결성된 노동조합 연맹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