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유국의 국영 석유회사들(National Oil Companies·NOCs)은 전 세계 석유와 천연 가스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에너지 부문의 슈퍼 파워들이다.

이들이 정치 권력의 개입과 투자 부진 등으로 '문제 투성이'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석유의 어두운 비밀:NOCs'란 제목의 특집 기사를 통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인 PDVSA를 비롯한 대다수 NOCs가 시장 원리에 따른 경영을 도외시한 채 방만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NOCs의 힘은 커지는데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석유회사별로 따져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3000억배럴로 1위에 올라 있다.

이어 이란의 NIOC,러시아의 가즈프롬,이라크의 INOC 등을 포함해 상위 13개 회사가 모두 국영 회사들이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기업(4120억달러)인 민간 석유회사 엑슨모빌도 250억배럴 정도로 겨우 1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도다.

NOCs가 지구상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NOCs는 국제 유가의 움직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줄이는 데 따라 유가는 즉각 반응한다.

북해나 멕시코만 등 모든 기업에 개방된 석유 생산지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자신들의 영역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있는 NOCs가 석유 시장에서 더 큰 지배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처럼 NOCs의 힘이 엑슨모빌 BP 등 다국적 민간 석유회사들에 비해 갈수록 커지고 있어 NOCs의 부실화는 해당 국가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 투성이 기업으로 전락

문제는 NOCs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의 지시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벌여야 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대거 채용해야 하는 등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 NOCs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는 에너지 소비국들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 정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NOCs는 국내 판매가격을 국제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도록 정부의 강요를 받고 있다.

미래에 대비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것도 NOC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인도네시아는 국영 석유회사 페르타미나가 새로운 유전 발굴을 소홀히해 막대한 석유 매장량에도 불구,석유 순수입국이 됐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NOCs가 지구상 대부분의 석유와 천연 가스를 깔고 앉아 있으면서 세계 생산량의 절반만을 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장 비효율적인 기업은

베네수엘라의 PDVSA는 NOCs 중에서도 가장 비효율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베네수엘라는 16세기부터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년 전 이미 로열더치셸 등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베네수엘라에 진출했다.

그러다 1970년대 PDVSA가 국영 석유회사로 탄생했다.

PDVSA는 초기엔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최대 국영 석유회사였던 멕시코의 페멕스와 같은 양의 석유를 생산하면서도 인력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권좌에 올라 전문 기술자들을 몰아낸 뒤 측근들을 집어넣고 투자를 소홀히하며 이익을 과도한 사회 복지에 전용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에 비해 △자율적인 기업 경영을 보장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부패가 없는 노르웨이의 스타트오일 △정부가 석유 산업에 경쟁 원리를 적극 도입한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등이 뛰어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NOCs라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덧붙였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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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석유산업 국유화 중단

100여일 만에 재원 부족

국영 석유회사들(NOCs)의 부실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가운데 볼리비아 정부가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에 대해 국유화를 선언한 지 불과 100여일 만에 재원 부족을 이유로 국유화를 잠정 중단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남미의 좌파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지난 5월1일 에너지산업 국유화를 선언했다.

모랄레스는 외국 석유회사들에 더 이상 자국 에너지 자원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자원 민족주의'를 내세워 거침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국유화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국유화 선언 이후 브라질 페트로브라스를 비롯 프랑스 토탈,스페인·아르헨티나 합작사인 YPF,영국 BP 등 외국 석유회사의 지분 51%를 매입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해 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볼리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YPFB는 석유 생산시설 관리 등을 위해 볼리비아 중앙은행에 1억8000만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실제 지원금을 받기는 힘들 전망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대신 YPFB에 대한 구조조정과 현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애초부터 국유화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온라인 잡지 라틴페트롤리엄의 피에트로 피츠 편집장은 "볼리비아 국영 석유회사는 그동안 외국 석유회사들이 운영해 온 볼리비아 유전을 경영할 수 있는 기술적 노하우도,자본도,경험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유화 계획은 처음부터 현실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