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을 보면 '아이비(IB)'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IB가 뭘까.

Internet Banking의 약자인가,아니면 Intelligent Building의 약자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IB는 '국제공통대학입학 자격'을 뜻하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로 나와 있다.

금융 증권 용어로 IB는 Investment Bank의 약자로 '투자은행'을 말한다.

그렇다면 투자은행이란 무엇일까.

최근 증권가를 취재하다 보면 너도나도 IB를 외친다.

모든 증권사가 하나같이 'IB만이 우리의 갈 길'이라며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정부조차 '앞으로 증권사들은 선진국형 IB로 거듭나야 한다'며 증권산업 개편 방안을 짜고 있다.

실제 최근 재정경제부가 입법예고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정안은 국내에서도 IB가 탄생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IB가 자본시장의 '화두(話頭)'처럼 등장한 것이다.


◆IB는 고수익,고위험 투자

IB는 주식을 중개하는 것이 주 업무인 기존 증권사나,예금을 받고 돈을 대출해 주는 게 주 업무인 전통적 은행(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달리 주로 기업의 구조조정에 관여해 투자수익을 얻는다든지,주식이나 채권 등을 인수(Underwriting)해 가치를 높인 후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것이 주 업무다.

기업 간 인수·합병(M&A) 과정에 뛰어들어 인수자나 매도자 측의 자문 업무를 한다든지,단순히 자문 업무 차원을 뛰어넘어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해 나중에 비싼 값에 되파는 것도 넓게 보면 IB의 일종이다. 비상장 기업을 증시에 상장시키는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 주간업무나 부동산 개발 등의 과정에 자금을 투입한 후 나중에 개발수익을 나눠갖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도 IB에 속한다.

다시 말해 IB는 고위험(High Risk)을 지면서 고수익(High Return)을 노리는 투자업무로,자본시장에서는 가장 첨단화된 형태의 금융 조직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은 대부분 투자은행이다.

그렇다면 국내 증권사들은 왜 너도나도 IB를 꿈꾸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취약한 수익 구조를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증권사들의 수익 원천은 대부분 브로커리지(주식중개) 수수료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의 변동성이 심하다. 다시 말해 증시가 활황이어서 거래량이 늘어나면 수익성이 좋아지지만,증시가 침체돼 거래량이 줄면 수익성이 곧바로 나빠진다.

이에 비해 IB는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꾸준이 돈을 벌 수 있다. 더구나 주식중개의 경우 푼돈 정도의 수수료를 챙기는 데 반해 IB에서는 단 한 건으로 많게는 수십억원,수백억원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한국형 IB 가능할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증권사들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IB부문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면서 너도나도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사실 국내 증권산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5년 증권사(43개)의 총 영업수익 가운데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9.8%에 달했다. 10년 뒤인 2005년에는 오히려 이보다 소폭 증가한 50.5%로 나타났다. 10년간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내로라 하는 대형 증권사의 경우도 IB부문 수익이 전체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도 안 되는 상황이다.

물론 최근 들어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IB 업무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어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IB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PI(Principal Investment;직접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많다. 무엇보다 자기자본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외국계 투자은행들에 맞서기는 아직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것이다. 예컨대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25조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은 고작 1조3000억∼2조원 선에 불과하다. 전문인력 육성이나 투자기법 다양화 등 인프라 보강도 시급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국내에서 대형 IB 업무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수십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에다 우수한 인력집단,세계적인 투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 증권사들도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 돈 될만한 데 자기 돈으로 직접투자 ]

◆ PI란 무엇인가

IB의 핵심으로 불리는 PI는 위에 언급했던 대로 Principal Investment의 약자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기자본을 동원한 직접투자를 의미한다.

IB 업무 중에서도 가장 고수익-고위험에 속하는 것으로 '선진국형 IB의 전형'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들이 해온 초보적인 IB는 주로 IPO(기업공개) 대행이나 채권 발행 주선,M&A 주간 업무 등이 대부분이었다.

가령 비상장기업의 상장 과정을 자문해주면서 도와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나,기업이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발행할 경우 이를 인수할 국내외 투자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얻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비해 PI는 돈이 되는 것이 있으면 아예 직접 자기자본을 투입해 인수해 버리는 것이다.

한단계 더 진화된 IB라 할 수 있다.

예컨대 M&A 물건이 나올 경우 단순히 인수후보의 자문업무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스스로 자본을 투입해 인수한 후 가치를 높여 나중에 비싼 값에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식이다.

물론 거래가 실패할 경우 대규모 자금 투입에 따른 리스크도 있지만,반대로 성공했을 경우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PI 사례는 나오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얼마전 N상장사의 CB 발행을 주선하면서 아예 자기돈으로 전액을 인수했다.

우량 회사채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면 이자소득에다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는 투자목적에서였다.

대우증권도 지난해 K상장사가 발행한 EB(교환사채) 1000만달러어치를 통째로 거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