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상들 간의 상관관계는 아주 복잡하다.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동시에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같은 현상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환율과 주가의 상관관계가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신문 증권 면에 실린 다음의 두 가지 기사를 읽어 보자.첫 번째는 지난 2월2일자 시황 기사다.

'1일 코스피 지수는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달러당 960원까지 무너진 데 영향받아 전날보다 23.85포인트 급락했다.'


두 번째는 지난 5월8일자 시황 기사다.

'7일 환율 악재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지수는 11.21포인트 상승,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8년7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하며 920원대로 내려앉았다.'

환율 급락이라는 똑같은 현상에 대해 주식시장은 이렇게 정반대로 반응하고 있다.

대체 환율과 주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우선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은 대체적으로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게 일반적인 논리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1달러를 팔면 1000원 생기던 것이 이제는 920원만 받게 됐으니 수출업체들은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자 수출 주력업종인 반도체와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게 반영돼 주가도 큰 폭 조정을 받았다.

물론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선 오히려 도움이 된다.

가령 과거에는 1달러짜리 원재료를 사오는 데 1000원이 들었으나 이제는 920원만 지불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환율이 떨어질 경우 플러스 요인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크다.

그런데 위의 두 번째 기사에서처럼 환율 하락이 주식시장에 플러스 효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과거 사례를 보면 환율과 주가는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인 적이 훨씬 적었다.

환율이 떨어지면 오히려 주가는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특히 2003년 이후부터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왜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환율 하락이 증시 유동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환율이 하락하면 반대로 원화 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에 원화로 표시된 자산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국내 주식시장의 40% 이상(시가총액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은 곧 한국에 투자해 놓은 주식 가치가 그만큼 올라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원화 절상 초기에는 한국 주식을 더 사고 싶은 욕구가 높아지게 된다.

원화표시 주식을 사 놓으면 원화가치 상승분만큼 가만히 앉아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실제 환율 하락 초기에는 주가의 시세 차익에다 환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이 대거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히 한국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들의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상승세를 타게 된다.

물론 이 같은 유동성은 나중에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가령 환율이 다시 상승할 경우 단기 환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헤지펀드 자금이 한꺼번에 증시에서 빠져나가 주가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환율과 외국인 자금' 간의 상관관계다.

흔히 환율이 하락하면 외국인의 환차익을 노리는 주식매수자금이 유입된다고 하지만,반대로 주식시장이 워낙 좋아 시세 차익을 노리는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돼 결과적으로 환율이 하락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한국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달러화 자금의 대규모 원화 환전 수요가 생기므로 원화 가치는 오르고 달러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닭이 먼저냐,달걀이 먼저냐'의 논리와도 같다.

물론 환율 하락은 여러 가지 복합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 같은 단순 논리로 해석할 경우 때로는 왜곡을 낳을 수도 있다.

환율이 하락하는 데도 주가가 오르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번째 논리는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이 곧 국가 경쟁력 상승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연히 기업의 가치도 올라가고,경기도 좋아지고,주식시장도 활황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돼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논리다.

물론 여기에도 반대 논리는 있다.

환율 하락이 우리나라 경제력이 강해져 돈의 가치가 올라간 데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경제 사정으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 데 따른 상대적인 가치 절상이므로 주식시장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환율 하락=주가 상승'을 설명하는 세 번째 논리는 주식시장의 구조 변화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특히 작년 이후 수출 관련주보다는 내수 관련주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내수 관련주의 시가총액 비중이 수출 관련주의 비중을 넘어서고 있다.

내수 관련주는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덜 받는다.

이 때문에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증시 충격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환율 하락은 증시에 긍정적,부정적 요인을 모두 갖고 있다.

특정 시기에 어떤 요인이 더 크게 부각되느냐에 따라 주가 움직임은 전혀 상반되게 나타난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 환율 하락하면 달러부채 많은 기업 유리 ]

환율의 주가 영향은 개별 기업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IT(정보기술) 자동차 등 수출관련 기업의 경우 환율이 하락하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 채산성도 나빠지기 때문에 주가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대표적인 IT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0원 하락할 경우 연간 2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곡물이나 철강자재 등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해서 판매하는 기업들은 환율 하락이 오히려 주가에 도움이 된다.

수입가격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어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음식료 철강 제약업종이 여기에 해당된다.

철강 대표주인 포스코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24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도 환율 하락은 호재다.

달러를 빌려와 설비투자를 하면서 달러 빚이 많아지게 된 항공 전력업종의 경우 환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갚아야 할 빚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혜를 입게 된다.

대한항공의 경우 항공연료를 달러화로 구입하면서 달러 부채가 많은데,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경상이익이 600억원 증가한다.

여행 관련 기업은 환율 하락 시 해외여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짐에 따라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주가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