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5월 6일 A3면

볼리비아의 자원 국유화 선언으로 촉발된 남미 국가 간 자원 전쟁이 사흘 만에 일단 봉합됐다.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4개국 대통령은 4일 아르헨티나 북부 푸에르토 이과수에서 긴급 정상회담을 갖고 "볼리비아의 천연가스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볼리비아가 요구하고 있는 천연가스 가격 인상에 대해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볼리비아가 지난 1일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외국 에너지회사들에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6개월 동안 가격 문제를 둘러싼 볼리비아 대(對)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 간 줄다리기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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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석유 천연가스,광물자원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자원민족주의란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편재돼 있는 자원에 대해 이를 소유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개도국을 비롯한 산출국들이 석유 등 천연자원에 대해 항구적 주권을 확립하고 이를 자주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자원국유화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중남미에서는 1930년대와 1970년대에 이미 국유화 파고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빈곤층의 지지를 업고 집권한 포퓰리스트가 지출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고수익 산업의 국유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여건이 변하면서 국영기업의 수지가 맞지 않거나 급전이 필요할 경우 이를 다시 매각해왔다.

뿐만 아니라 중동 산유국들은 국제 석유자본에 대항,1957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창설한 데 이어 1968년에는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를 결성하는 등 석유 무기화에 힘을 쏟아왔다.

1,2차 석유파동이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전략으로 인해 일어났음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남미발(發) '자원민족주의' 세계로 확산 조짐

볼리비아 정부는 최근 석유와 가스산업시설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광물,삼림자원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보유한 자원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권을 볼리비아 국영 에너지기업(YPFB)으로 넘기든지,아니면 6개월 내에 떠나라고 요구한 데 이은 조치다.

물론 볼리비아의 원유매장량이 대단한 수준이 아닌 데다 천연가스 역시 남미 2위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큰 손에는 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남미쪽 움직임이 '국유화 도미노'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랄레스의 이번 발표는 지난번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조치와 빼닮았다.

차베스는 지난 3월 말 외국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32개 유전개발사업의 지분 60%를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DVSA)에 넘기도록 하는 내용의 자원국유화를 선언했다.

그 뿐만 아니다.

에콰도르가 외국 석유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이는 로열티를 인상할 방안을 검토하는가 하면,아프리카 차드는 세계은행이 차관 동결을 해제하지 않으면 석유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페루와 멕시코에서도 석유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건 좌파 후보들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까지 자원민족주의에 가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유럽에 집중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선을 아시아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도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원국유화 조치 성공 여부 불투명

자원부국들의 이 같은 국유화조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까.

남미의 포퓰리스트 정권들은 국유화로 당장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 석유 판매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주력산업을 비롯 외자 규모,축적 자본,개발인프라 기술,마케팅 능력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국유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형편이다.

실제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권은 국유화를 선언해 놓고도 정작 외국기업들이 모두 떠나버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원민족주의 추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원민족주의로 인한 자원통제가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유발함으로써 세계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고 보면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외국에서 제약 없이 가져다 쓸 수 있는 석유와 가스가 수요량 대비 4% 수준에 그치고 있는 우리로서는 자원 무기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들처럼 해외 자원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전체 석유 도입량 중 80%를 중동산이 차지할 정도로 지나치게 편중된 수입지역을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동북아 지역에서 에너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시베리아산 LNG(액화천연가스)를 끌어다 쓸 수 있도록 러시아 일본 북한 등과의 외교적 협력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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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천연자원에 대한 항구주권에 관한 결의'

국제연합(UN)이 지난 1962년에 채택한 것으로,천연자원은 그 보유국에 속하며 자원보유국의 발전과 국민의 복지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석유파동

1973년 10월 발생한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정치무기로 사용되면서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으며,1979년에 당시 세계 두 번째 석유 수출국인 이란의 혁명으로 제2차 파동이 발생했다.

◆포퓰리즘(Populism)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대중영합주의로 불린다.

소수의 지배집단이 통치하는 엘리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OAPEC(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자원관리와 유가조절 등을 위해 1968년에 설립한 것으로 '아랍석유수출국기구'로 불린다.

따라서 원유의 공시가격 유지·회복을 목적으로 설립된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석유수출국기구)와 차이가 있다.

◆CIPEC(Council of Copper Exporting Countries)

구리 수출을 위해 생산국들이 1968년에 설립한 국제기구로 '구리수출국 정부간협의회'로 불린다.

구리의 생산·판매와 관련한 생산국 간 정책조정을 위한 자원카르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