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2월7일자 A4면

KT&G가 미국의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의 표적이 되면서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이 민영화된 공기업과 은행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포스코 KT는 물론 국민은행 등 정부 지분 매각이 끝난 은행들도 지배구조가 극히 취약,외국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T&G와 포스코 KT 등 민영화가 끝난 공기업들의 단일 최대주주는 모두 외국계 펀드인 것으로 밝혀졌다. KT&G의 경우 현재 중소기업은행(지분율 5.85%)이 최대주주로 신고돼 있지만 사실상 최대주주는 지분 7.14%를 가진 미국계 프랭클린뮤추얼 펀드다. 이 펀드는 템플턴 계열로 '경영 참여' 목적을 밝힌 상태다.

아이칸의 이번 지분(6.59%) 매입에 따라 경영 참여를 노리는 외국계 펀드가 모두 1,2대 주주가 됐다. 만약 이들이 연합할 경우 지분율은 13.73%로 KT&G측 우호 지분인 15%에 육박한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적대적 M&A란 상대 회사의 동의 없이 인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M&A는 Merger & Acquisition의 머리 글에서 따온 것이며 우리말로는 인수·합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적대적 M&A란 어떤 기업이나 개인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그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국내 기업이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소버린이라는 외국계 투자회사는 SK㈜의 이사진 교체를 위해 임시 주주총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적대적 M&A를 시도하면서 무려 1조원의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적대적 M&A 성공 여부는 지분 확보에 달려 있다

적대적 M&A가 진행되면 공격자와 방어자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게 된다.

방어자(경영진)는 회사를 팔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데,공격자(상대)는 그 회사를 손에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결을 거쳐 경영진이 선임되므로 승부는 누가 지분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때문에 공격자나 방어자는 직접 주식을 사 모으거나,자기편을 들어줄 주주를 확보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대적 M&A는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까.

먼저 공격자는 적당한 대상 기업을 물색해 주식시장에서 몰래 주식을 사 모으는데 이를 '시장매집'이라고 한다.

소문이 퍼지게 되면 공격자와 방어자가 서로 경쟁적으로 주식을 사 모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주가는 일반적으로 급등하게 된다.

'위임장 대결'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자기편을 들어 줄 주주를 확보해 이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주총에서 표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공격하는 쪽이 주식시장에서 목표하는 주식 수를 특정 기간에 특정 가격으로 매입하겠다고 아예 공표해 버리는 '공개매수' 방법도 있다.

◆독약조항으로 적대적 M&A에 대항할 수도 있다

적대적 M&A가 경영권을 뺏을 목적만으로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공격자가 M&A를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사들인 주식을 더 높은 값에 해당 기업에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이를 '그린메일'이라고 한다.

달러가 초록색(green)이고,보유주식을 되팔겠다는 편지(mail)를 보낸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예컨대 지난 1999년 SK텔레콤의 3대 주주였던 외국계 헤지펀드(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금)인 타이거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하자 SK그룹이 타이거펀드 보유 지분을 고가로 매입한 것이 그러한 사례다.

당시 타이거펀드는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물론 기업들도 적대적 M&A로 경영권이 뺏기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보통 회사 거래 기업이나 대주주와 가까운 개인을 찾아가 몰래 도움을 청하는데 이러한 방어자의 우호지분을 흔히 '백기사'로 부른다.

실제로 대한해운이 외국계 펀드의 공격을 받을 조짐을 보이자 대우조선해양이 백기사로 나서기도 했다.

회사 이름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수도 있다.

자사주 매입으로 유통 주식수를 줄임으로써 공격자의 주식 확보를 방해하는 것이다.

공격을 받으면 현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하고,자동적으로 경영진이나 직원들에게 많은 상여금을 준다는 내용 등을 정관에 포함시켜 공격자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공격자가 회사를 인수할 경우 독약을 마시는 것처럼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의미에서 흔히 '독약조항(Poison pill)'이라고 한다.

◆우리기업들 대응 수단이 없다

적대적 M&A는 경쟁력 없는 기업을 퇴출시킴으로써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적대적 공격을 받는 기업들은 경영권을 지키는 데 신경을 쏟느라 연구개발 등 기업의 장기 과제를 추진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선진국 기업들이 포이즌 필을 비롯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기업들은 경영권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글로벌시대에 적대적 M&A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외국자본의 공격은 과다한 경영권 방어비용의 지출을 불가피하게 하고,이는 결국 국부유출과 투자여력 위축으로 연결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출자규제와 의결권 제한 등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의 철폐,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적대적 M&A=상대방 기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파는 측과 사는 측이 서로 동의해 이뤄지는 '우호적 M&A'와 반대 개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되지 않은 시장가격으로 주식을 사들이기 때문에 우호적 인수·합병에 비해 인수가액을 대폭 낮출 수 있다.

◆헤지펀드(Hedge fund)=국제 증권 및 외환상품에 투자해 단기 이익을 올리는 민간투자기금이다.

파생금융 기법을 교묘하게 조합해서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을 개발함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그룹이 대표적이다.

◆포이즌 필(Poison pill)=인수 자체를 어렵게 만들거나 인수 후 불이익이 크다는 판단이 들도록 인수자에게 불리한 규정을 기업의 정관에 미리 마련해 놓는 방어기법이다.

현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함으로써 인수자의 지분율을 낮추는 것을 비롯 종업원 임금인상,제품 손해배상 확대,기존 경영진의 신분보장,거액 퇴직금 지급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