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술분야 최고 자격증 '기술사'제도 개혁 나섰는데…

▷한국경제신문 11월11일자 A2면


그동안 문제가 돼온 일정 경력자와 학위 보유자에게 기술사와 같은 자격을 주던 제도가 내년부터 없어진다. 과학기술부는 10일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기술사 배출과 관리를 위한 각종 법령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10년 이상 경력의 건설기술 기사나 관련 전공을 이수한 3년 이상의 박사에게 기술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키로 했다. 또 공공의 안전 및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의 경우 기술사 자격을 갖춘 엔지니어를 반드시 확보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술사의 고유 업무 영역을 설정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현재 과기부와 노동부로 이원화돼 있는 기술사 선발과 관리 체계를 과기부로 일원화하고 기술사의 능력 향상과 질적 수준을 높여가기 위해 계속 교육제도도 도입키로 했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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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술분야의 최고 자격증인 기술사 제도의 개혁에 나섰다.


일정 수준의 학력과 경력만 갖추면 국가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기술사 자격이 부여되는 인정(認定)기술사제도를 내년 하반기에 폐지하고,기술사의 선발에서 관리에 이르는 모든 업무를 과학기술부로 일원화한다는 게 그 골자다.


사실 현행 제도는 기술사 제도를 일관성있게 운영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정기술사제 도입으로 자격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 출신들의 꿈인 기술사의 위상을 흔들어버림으로써 이공계 기피현상까지 촉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의 이번 기술사제도 개선방안 발표를 계기로 우리나라 기술사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기술사는 엔지니어의 최고 자격증


기술사제도는 우수 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63년에 도입됐다.


기술사 자격은 석·박사 등 연구인력뿐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을 갖춘 산업현장의 최고 전문가에게 주어진다.


대학을 졸업한 후 7년간의 현장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응시할 수 있으며,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제도 도입 후 40년이 넘었지만 현재까지 배출된 기술사는 총 2만986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기술사는 이공계대 출신들의 최고 자격증인 셈이다.


그러나 기술사제도가 최고 권위 자격증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여론의 눈총을 받아왔다.


우선 기술사 선발은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 노동부가,기술사 육성 및 활용시책 수립은 기술사법에 의해 과학기술부가,기술용역과 감리활동은 건설교통부 등 15개 부처가 각각 맡는 등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기술사의 선발 활용 관리가 체계적·유기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변리사 건축사 관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등이 배타적 업무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술사에 대해선 고유한 업무영역을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특히 기술사 자격 취득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경력 또한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았다.


국가 간 상호 인증 자격 기준을 갖춘 국제 기술사의 양성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우리 사회가 기술사를 산업현장의 최고 장인(匠人)으로 대접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유발한 인정기술사 제도


기술사가 아니더라도 기술사와 동등하게 인정해주는 인정기술사 제도는 기존의 기술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렸다.


인정기술사란 검정시험이 아닌 일정한 학력·경력만으로 기술사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부족한 기술사 대체인력의 확보 등을 위해 1973년에 도입됐으며 현재는 엔지니어링 건설 전력 정보통신 소방 등의 분야에서 실시되고 있다.


예컨대 건설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가 3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면 기술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같은 인정기술사 제도 운영으로 기술사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음은 물론 기술사 수급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학·경력기술자 가운데 기술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특급기술자의 공급 과잉으로 기술사의 고용 사정이 크게 나빠졌다.


건설분야의 경우 올 6월 말 기준으로 기술사는 1만6765명인 데 비해 특급 기술자는 기술사의 5배 수준인 8만3284명에 이르고 있다.


◆인정기술사제도 내년 하반기에 폐지키로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중급 고급 특급 기술자에 해당하는 학·경력기술자가 더 이상 배출되지 않도록 내년 하반기에 인정기술사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배출된 학·경력기술자의 경우 법적 지위는 계속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인정기술사 제도의 개선을 통해 기술사의 공급 과잉을 해소함으로써 기술사의 위상을 높이고 질적 수준을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건축사 등 다른 자격증과 마찬가지로 기술사 고유의 업무영역을 설정함으로써 기술사의 법적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공공의 안전,재산과 관련된 엔지니어링 업무에 대한 기술사의 권한을 강화하며 공사 감리,사업수행능력 평가 등에 기술사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기술시장의 개방에 대비해 국가 간 기술사 상호인증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국제적인 기술사도 본격 양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제 기준에 적합한 공학교육인증제를 활성화하고,국제 공학교육인증기관 협의체인 워싱턴협정(Washington Accord) 등에 가입한다는 방침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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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기술사=해당 기술분야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에 입각한 응용능력을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다.


국가기술자격법 제4조의 규정에 의하여 기술사의 자격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과학기술에 관한 전문적 응용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해 계획 연구 설계 분석 조사 시험 시공 감리 평가 진단 사업관리 기술판단 기술중재 또는 이에 관한 기술자문과 지도를 한다.


△인정기술사=학·경력기술자로도 불린다.


박사학위 소지자나 18년 이상 근무한 고졸 출신 기술자가 국가시험을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자격이다.


엔지니어링 건설 전력 정보통신 소방 등의 분야에 적용되고 있으며 자격증 소지자는 기술사의 7배 수준인 20만1800명에 이른다.


이 제도는 내년 하반기 폐지된다.


△워싱턴협정(Washington Accord)=미국 등 선진국 공학교육 인증기관들이 공학계열 졸업자의 학력을 상호 인정하기 위해 맺은 협정이다.


정회원으로 가입한 인증기관이 인증하는 공학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해야 기술사 상호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준회원으로 가입했으며 2009년 정회원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