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혁깃발 올렸다] 일본은 공무원 줄이고 한국은 늘리고

어떤 조직이든 비대해지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면 상황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어렵고 방만한 경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힘과 능력이 커질수록 시장에 간섭하려는 경향은 강해지며 그 결과 각종 규제가 늘어나 민간 부문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선진국은 공무원 감축과 정부예산 절감 등 작은 정부 만들기를 국정 운영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의 '개혁노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큰 정부'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사회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압력이 더 강한 데다 시장을 신뢰하기 보다는 '시장의 실패 가능성'을 더 크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의 개혁노선 차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일본,10년 내 정부 규모 절반으로 축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최근 '작은 정부'를 향한 구조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어 국내외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우정공사 민영화로 상징되는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했다고 판단한 고이즈미 내각은 '10년 내 정부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목표로 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의 정부 개혁은 '시장 원리 도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7일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어 공무원 감축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개혁의 밑그림을 발표했다.


이날 논의된 정부 개혁은 △정부기구 축소 △공무원 정수 및 인건비 감축 △정부 기능의 민간 이양 등으로 요약된다. 고이즈미 정부는 우정 개혁을 시작으로 국영기업과 산하 기관을 대폭 정리하는 한편 지방 선출직 공무원 숫자도 줄일 계획이다.


또 5년 안에 현재 공무원 정원의 10%인 3만3230명을 감축하고,국내총생산(GDP) 대비 공무원 인건비 비율을 10년 내에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공무원 숫자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능 자체를 민간에 대폭 이양한다는 것도 고이즈미 내각의 기본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공공 서비스 사업에 민.관 경쟁입찰을 도입하는 한편 800여개 공공사업 분야를 선정,순차적으로 민간에 이양하기로 했다.


◆한국,'효율적으로 일하면 큰 정부도 좋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행정자치부 중앙인사위원회 국회예산처 등의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올해 7월까지 2년반 동안 공무원수가 2만3000여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총 1조2700억원의 공무원 인건비가 당초 예산안보다 초과 지출됐다.


현 정부의 장.차관 수는 건국 이래 가장 많다. 정부 부처 내 장.차관급은 모두 합쳐 148명에 달한다. 장.차관급이 가장 많았던 노태우 정부 시절의 1992년 139명과 비교해도 9명이 더 많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던 2002년 127명보다는 무려 21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참여정부가 각종 목적으로 설치한 위원회도 예산지출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총 23개로 참여정부 이후 12개나 늘어났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위원회도 48개로 20개가 새롭게 생겨났다.


늘어난 공무원수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올해 9조8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데 이어 내년에도 9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지경에 빠진 데는 공무원 수 증가도 큰몫을 하고 있다.


조직의 생리는 '늘리는 것은 매우 쉬운 반면 줄이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공공부문을 늘릴 당시에는 '시대의 필요'에 따른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한번 비대해진 조직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확장하면서 계속 팽창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절 반(反)나치 운동으로 해직교수 1호가 된 경제학자 빌헬름 뢰프케는 "복지국가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지국가의 원칙과 예외에 관한 기준이 무엇이고,그 기준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편차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하고도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결코 섣불리 실행에 옮겨서는 안된다."


유영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