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전읽기] 테크노크라시 시대는 공동체적 가치에 둔감

다음 제시문들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리와 방법에 대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생각들을 보여준다.


제시문 (가) (나) (다)를 논의의 근거로 삼아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을 논술하시오.


(가) 나라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하게 형벌을 정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한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따라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하루 깜짝 놀라 깨달아 팔을 걷어붙이고 학문에 힘쓰시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 안에 온갖 선(善)이 갖추어지고 온갖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고루 잘 살게 할 수 있고,백성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위태로움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사람을 쓰는 일은 몸을 수양함으로써 하며,몸을 수양하는 일은 도(道)로써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이렇게 하신다면 전하를 모시는 신하들로서 사직을 보위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덕화를 베푸셔서 태평한 천하를 이루신다면,저는 마구간의 끝자리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정성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바로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전하께 올리옵니다.


- 남명 조식(南溟 曺植)의 『을묘사직상소』 중에서



(나) 자기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는 좋지 않은 짓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언제 그것이 필요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치 않은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악덕이 없이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는 그런 악덕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군주는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함께 누리기는 어려우므로,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이고 위험을 피하기에 급급하며 이익을 탐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은 전적으로 군주의 편이어서 자신의 피 재산 목숨과 자식까지도 바치겠다고 하는데,그것은 실제로는 그럴 필요성이 별로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막상 그래야만 할 때가 닥치면 그들은 배반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만 믿고 다른 준비를 해놓지 않은 군주는 몰락하게 된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얻은 우정은 매수한 것일 뿐 진정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며,따라서 위기에 몰리면 군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인간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을 해칠 때 덜 망설인다.


사랑은 의무의 사슬로 묶여 있는 것인데,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기 목적에 도움이 될 때는 언제든지 그 사슬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는데 그것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



(다) 남북전쟁 이래의 영웅인 카우보이는 기술 시대의 새로운 영웅인 엔지니어로 대체되었다.


엔지니어는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효율성이라는 도구로 무장한 엔지니어는 신(新)제국의 건설자였다.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마천루와 교각과 댐이 미국 전역에 세워졌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기술화(技術化)의 가치에 몰입한 나머지 기술 이상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미국의 사회이론가 베블렌은 상업적인 탐욕과 시장의 비합리성이 기술의 시대적 역할을 약화시킴으로써 대대적인 낭비와 비능률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를 전문 엔지니어들에게 위탁함으로써 경제를 구원하고 미국을 새로운 에덴 동산으로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엄격한 효율성의 기준에 의거하여 비능률을 뿌리뽑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를 잘 작동하는 메가톤급 기계처럼 생각하고 전문 엔지니어가 그것을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 이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 칭하는 개혁자 집단은 베블렌의 생각을 받아들여 미국의 엔지니어들에게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부여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치 경제와 관련된 철학적 개념들과 대중적 민주주의가 미 대륙의 기술 지배를 위한 설계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인간에 의한 통치보다도 과학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였다.


이들은 기술 유토피아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테크노크라트는 과학이 낭비와 실업,배고픔과 빈곤을 영원히 추방하고 궁핍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로 바꾼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연과 인간 및 기계 사용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국가의 자원을 총괄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창하였다.


-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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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현대'가 어떤 사회인지를 먼저 규정한 뒤 고전의 사고에서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관료제적이고 형식적인 지배가 특징이다.


마키아벨리적인 주장이 더 유효하다든가 아니면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전적인 덕의 지배가 더 유용하다든가 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현대 사회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다)를 통해 주어지고 (가),(나)가 동서양의 고전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동양의 정치사상은 인치(人治;덕치)와 법치(法治)의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가)는 바로 인치 혹은 덕치의 원론을 주장하는 글이다.


윗사람이 덕으로 모범을 보이면 자질구레한 형벌과 제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정치의 질서가 바로잡힌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마키아벨리의 글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공포와 두려움까지도 고려한다.


이것은 (가)와 비교한다면 법치 중심의 생각에 가까운 현실적인 사고다.


(다)는 리더십에 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현대의 정치적 메커니즘에 대한 자료로 주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지배)가 현대 사회의 정치적 특징이다.


경제가 중심이 되다 보니 합리성과 기술적 통제가 가장 중요해지고,엔지니어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갖춘 관료집단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테크노크라시의 특징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진단)에 따라 (가)와 (나)를 이용해 자신의 처방을 내놓을 수 있다.


19세기 말 막스 베버가 관료제의 장단점을 지적했다지만 테크노크라시는 이 장단점을 더욱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고 기술적인 해결 방식만을 생각하는 엔지니어식 사고방식은 정치에 대한 관점으로서는 매우 특이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은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장치와 활동을 말하는데,이것을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로만 보는 것은 현대에 등장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정치는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고 본 공자의 사고방식(공자에 따르면 정치는 가치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과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가? 또한 고전적인 시민민주주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려는 하버마스류의 비판에 따르면 테크노크라시는 정치가 기본적으로 대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기도 하다.


테크노크라시의 문제는 마키아벨리즘처럼 목적지향적인 맹목성을 지님으로써 공동체적 가치의 문제에 둔감해진다.


(가)에서 보듯이 유교 정치이념에서는 신권과 왕권의 견제와 조화를 통해 대화적 정치를 이루려고 했고,이때 왕은 공동체적 가치를 수호하는 자리였다.


다시 말해 테크노크라트(신하)들만이 있으면 안 되고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의 근본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가 말하는 왕의 리더십이란 바로 그런 가치를 내세우면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덕의 힘이다.


물론 평등한 관계에서의 수평적 리더십 등이 최근 자주 거론되는 주제이지만,이 논제의 맥락에서 "테크노크라트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리더십이 요구되는가"를 묻는다면,우리는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는 리더십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김원기 초암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closely@naver.com


[ 약력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 철학과 석사


△(현)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구술 강사


△<대중문화 속 과학읽기>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등 다수 교양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