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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711호 2021년 6월 14일

경제사 이야기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인간은 그가 먹는 것들의 총합 뼈 속에는 그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인간은 그가 먹는 것들이다.”

먹고 마시는 내용은 허다한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은 분야지만 사실 ‘먹는다’는 것은 인간 행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식품이 단순한 일화에 불과한 것도 아니었다. 페르낭 브로델의 주장처럼 설탕과 커피, 차, 알코올 같은 먹거리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역사시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마셔왔는지는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 인간의 식문화를 파악해볼 수 있는 단서가 바로 뼈다. 인간의 뼈 속에는 삶의 이력이 담겨 있다. 자연스럽게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선사시대 삶의 모습을 유추하는 데 있어 고대인의 인골은 중요한 정보원이자 단서가 된다.
치아나 뼈에 나이테처럼 영양 공급 상태가 남아
인골의 평균 신장을 통해 당시의 영양 섭취 수준을 추정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러 방법을 통해 고대인의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치아로 판독한 나이에 비해 다른 뼈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거나 두께가 얇을 경우, 인골의 주인공은 살아서 단백질 성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두개골의 두개관 부분의 밀도를 측정하거나 눈을 감싸는 부분의 다공성 여부를 통해 빈혈 여부를 알 수 있다. 비타민D 결핍은 구루병의 흔적으로 남게 되고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골막하 출혈 흔적이나 손실된 이빨 개수를 통해 괴혈병(비타민C 부족) 여부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치아나 뼈에 남은 흔적을 통해 생애주기 중 언제 잘 먹었고 언제 고생했는지를 유추할 수도 있다. 치아나 뼈에 나이테처럼 영양 공급 상태를 남기는 ‘해리스 라인’을 분석하면 배고픔과 기아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흔적을 근거로 한 폴 A 젠슨스라는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원시시대 크로마뇽인 인골의 88.2%는 사망 시 연령이 40세 이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61.7%는 30세 이하에 죽었다. 네안데르탈 인골은 40세 이하 사망 비율이 95%, 30세 이하 사망률은 80%에 달했다.
인도 하라파 문명 쇠락 원인을 인골 분석에서 찾아
인골 유적을 통해 역사 속 미스터리의 해법을 찾은 사례도 있다. 기원전 5000년께부터 도시화를 시작했던 인도 인더스강 유역 하라파 문명의 쇠락 원인을 인골 분석을 통해 추론해본 것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2000년께 모헨조다로 시로 유명한 하라파 문명이 건설한 도시 면적은 50만㎢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했지만 기원전 1700년께가 되면 도시화의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리고 소규모 촌락만이 인더스강 유역에 남게 된다.

이처럼 급속한 하라파 문명의 쇠퇴 이유를 찾기 위해 모헨조다로 유적에 남아있던 인골에 대한 대대적인 분석 작업이 진행됐다. 그 결과 재미있는 결론이 도출됐다.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영양 공급에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잘 먹은 자와 못 먹은 자, 즉 초기 단계의 계급 분화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 비교적 먹는 데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영양실조나 면역력 저하에 따른 대규모 전염병과 문명 쇠퇴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골들에선 무기에 의해 살해된 자국 같은 외부 충격도 발견되지 않았다. 외침에 의한 멸망 가능성도 줄어든 것이다.

결국 하라파 문명의 쇠퇴는 서남아시아 지역 몬순(계절풍) 패턴이 변하면서 인더스강 유량이 줄고,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기존 대도시를 지탱하던 농업문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힘을 얻게 됐다. 유량 감소와 강의 범람, 흐름의 변화 탓에 대도시를 지탱할 농업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고 소규모 자연촌락 정도만 존속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옛 인골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통해 사회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셈이다. 인간의 삶을 묵묵하게 기록한 뼈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선사시대 수렵·채집을 하며 이동하던 집단과 농사를 지으며 한자리에 정착한 집단 간 영양상태는 어떻게 다를까.

② 고대문명이 대부분 강, 특히 상류보다 하류 주변에서 발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③ ACB저널에 실린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16~18세기 조선시대 인골의 39.4%에서 해리스 라인이 발견되는데, 현대에 와서 그 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왜일까.
한걸음 더 - 해리스 라인(Harris Lines)
해리스 라인은 뼈 성장이 억제되면서 성장판이 있었던 자리에 새겨진 선이다. 성장억제선(Growth Arrest Lines)이라고도 하는데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의 결핍이나 천연두 폐렴 등 질병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양이나 병리학적인 이유보다는 정상적인 성장과 급증의 결과로 선이 나타났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해리스 라인은 주로 청소년기 영양상태가 부실할 경우 발생하는데, 수렵채집을 하는 집단보다 농경을 주로 하는 집단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해부학 교수인 헨리 앨버트 해리스(1886~1968)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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