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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66호 2020년 6월 1일

역사 산책

요동반도·대동강 주변서 유물 대거 출토되는 원조선…환황해 해륙 교통로 확보하고 말·호피 등 중계 무역


내가 가끔 부르는 독립군가에는 ‘부평초 신세’라는 가사가 들어 있다. 조국을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감, 허무감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인간에게 뿌리를 확신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가 중국을 넘보거나, 일본보다 우월감을 느낄 때 하는 말이 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고조선(왕검조선)’ 부분 말미에 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한 시기를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 되는 경인년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역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고, 그래서 올해는 단기 4353년이다.

BC 7세기 중국 기록에 처음 등장한 원조선

역사와 연관된 정확한 연대(年代)는 알 수 없지만, 조선이 실재한 사실은 다양하게 증명할 수 있다. ‘조선’이 국명으로 처음 나온 것은 기원전 7세기경에 쓰였다는 <관자>라는 책에서다. 또 멸망 후에 쓰인 <후한서>의 ‘예전’에도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다 조선의 땅이다’라고 했다. 우리 기록들은 대부분 후대에 쓰였다.

그런데 기록의 유무와는 관련 없이 한때는 원조선(고조선)의 중심부 또는 근처였을 가능성이 높은 요서지방에서 발전한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 등을 고려하고, 요동반도와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수천 기의 고인돌과 토기 등 유물 연대를 보면 늦어도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해서는 중국의 ‘하(夏)’나 ‘은(殷)’처럼 도시국가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원조선은 소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의 몇 단계를 거쳐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와 벌인 전면전에서 패배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원조선 중심지로 거론되는 안시성·요동성·평양성

원조선의 흥망성쇠는 해양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핵심 영역인 요동반도 남쪽의 대장산 군도, 압록강 하구인 단둥 근처에서는 5000여 년 전의 해양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 이 후시대의 유물인 수백 기의 고인돌과 적석총은 다롄의 강상무덤, 누상무덤 등처럼 해안가나 또는 강가 언덕 등에 많이 있다. 평양 일대에는 수천 개의 고분이 있는데, 고인돌은 황주천 유역에만 1100여 기가 있다.

또 고조선의 중심지 또는 수도의 위치도 연관 있다. ‘요동설’의 핵심인 해성(고구려 안시성)은 그 시대에는 바다와 만나는 해항도시였고, 요양(고구려 요동성)은 요하로 발해와 이어지는 강해(강과 바다가 만나는 접점)도시다. ‘평양설’의 평양은 대동강 수로로 서해와 이어진 내륙 항구도시로서, 고구려가 사용한 부두시설도 있다. 심지어 1866년에는 미국의 증기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 시내에 도착했을 정도다.

원조선 영토내에 명도전 등 중국 화폐 무수히 발견

원조선이 발해와 황해 북부를 공유했다면 해양활동이 활발했어야만 했다. 말, 모피 등 다양한 종류의 무역을 했는데, 기원전 7세기경에는 발해를 건너 산둥반도의 제나라에 문피(文皮·호랑이와 표범의 가죽) 등을 수출하는 해양무역을 했다. 증거물인 많은 유물과 명도전, 오수전 등 중국의 화폐들이 원조선의 영토에서 무수히 발견됐다.

한편 주민들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발해만과 황해의 중국 쪽에는 용산문화 시대를 이어 은나라 때에는 ‘이(夷)’, 주나라 때부터는 ‘동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이 해양문화의 담당자였다는 물증과 기록은 무수히 많다. <삼국지>에 따르면 진시황 때 세상이 혼란스러워 사람들이 준왕에게 도망오자, 서쪽 지역을 줘 살게 했다. 훗날 준왕은 (위)만에게 왕 자리를 빼앗기는데, 지지세력들과 바다를 이용해 충남 해안에 도착해 한왕이 됐다. 이런 상황을 보면 동이인들은 발해와 황해를 건너 원조선의 영역으로 이주했고, 해양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환황해 무역권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 기억해주세요

원조선(고조선)의 중심부 또는 근처였을 가능성이 높은 요서지방에서 발전한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 등을 고려하고, 요동반도와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수천 기의 고인돌과 토기 등 유물 연대를 보면 늦어도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해서는 중국의 ‘하(夏)’나 ‘은(殷)’처럼 도시국가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원조선은 소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의 몇 단계를 거쳐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와 벌인 전면전에서 패배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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