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655호 2019년 12월 2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왜곡하는 용어 쓰다 보면 인식도 왜곡돼요

[사설] '접대' 아닌 '거래 증진', '가업' 아닌 '기업' 승계…용어부터 바로잡자

기업활동 지원과 내수활성화 차원에서 ‘기업접대비’라는 명칭을 바꾸고 세법상 손금(損金)한도도 올리자는 제안이 여당에서 나왔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이원욱 의원이 제기한 이 방안에 주목하는 것은 경기는 바닥인 데다 발전의 개념과 철학까지 뒤죽박죽인 우리 경제에 대한 성찰 차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접대비 손금한도를 기업 규모에 따라 최대 2.5배로 늘리자며 법인세법 등의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1년이 다 돼가도록 주목 받지 못한 채 경제가 계속 나빠지자 기업의 매출 증대와 내수 촉진 차원에서 재차 입법화에 나선 것이다. “기업접대비가 10%만 늘어도 1조원 이상 더 풀린다”는 김 의원 분석에 여야 의원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두기 바란다.

더 의미있는 것은 부정적 뉘앙스가 다분한 ‘접대비’라는 용어를 ‘거래증진비’로 바로잡자는 제안이다. 이 한마디에 김 의원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이 들어 있다. 경제와 정치, 정책과 법률에서 명확한 개념어를 정확하게 쓰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가업상속’보다 ‘기업승계’라는 말로 통용될 때 ‘지속 발전하는 경영체로서의 기업’의 본질적 문제와 아젠다가 담길 수 있는 게 그런 사례다. 단순히 ‘부(富)의 대물림’에 고율의 상속세로 응징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고용승계, 기술전수, 기업성장의 관점에서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더 있다. ‘재벌·사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집단·민간기업’, ‘시장지배자’보다는 ‘소비자선택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보다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더 적절한 개념 언어일 것이다. 경계도 모호한 ‘투자’와 ‘투기’, ‘과소비’ 같은 말을 정부가 앞서 오용·남용하며 실상을 가리는 일도 흔하다. 편견을 부추기고 사실을 왜곡하는 용어는 배격돼야 한다. 법률과 정책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명(正名)을 좇는 두 국회의원 제안을 계기로 공직과 학계도 올바른 경제용어 사용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1월 28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용어가 바뀌면 인식도 함께 변해
정책과 법률용어도 개념 명확해야
정치적 선동·경제 왜곡 줄어들어


적확한 글과 적절한 말을 쓰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독일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많은 식자들이 주장하고 지적해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갈 때가 많다. 정치적 선동, 경제적 왜곡도 비일비재하다. 대개 오도된 언어를 통한다.

‘기업접대비’를 ‘거래증진비’로 바꾸자는 여당 국회의원 제안은 이런 차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주장의 타당성이 이 한마디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기업 거래를 증진시켜야 하나”라는 문제 제기는 그다음 차원이다. 터널의 끝이 안 보이는 장기 불황의 초입에서 기업활동을 촉진시키고, 모두가 걱정하는 내수(수요) 위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기도 하다.

기업접대비는 정책과 법률을 비롯해 사회적 통용 언어로 자리잡아왔다. ‘접대’라는 말 자체로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적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법적으로 접대비 지출을 강하게 규제하기만 하면 투명사회로 갈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퍼지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접대비라는 말을 그대로 둔 채 비과세 항목으로 늘려주자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이유다. 그래서 아예 용어를 바꾸며 개념을 달리 보자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다.

정치와 경제의 용어는 물론 사회적 유행어에까지 이런 일이 잦다. 중소기업을 단순히 ‘가업’이라 하고 경영권이 바뀌는 것을 ‘가업 상속’이라고 하는 순간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고, ‘부의 대물림’이라는 제한된 틀에 매몰되기 쉽다. 용어(naming)가 인식의 구도(frame)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가령 ‘자본주의’도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왜곡돼 쓰일 때가 많다. ‘시장경제’가 더 적절할 때도 많다. 이미 굳어진 말이지만 ‘자유방임주의’보다 ‘상생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나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소비’도 모호한 말이다. ‘정상소비’를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보다도 소비자를 공격할 때, 경제에 주관적 개념의 윤리를 접목한 숨은 의도가 문제다. 경계가 모호한 ‘투자’와 ‘투기’는 보는 이의 관점과 판단에 따라, 학술적 접근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정책 관점에서는 종종 소비자의 특정 기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용어로 쓰인다. 본질의 호도다.

다른 경우도 보자. ‘전문경영인’이라는 표현은 따로 보면 무난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너 경영’을 문제 삼고 비난하기 위해 쓰일 때면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공기업과 비교되는 개념으로 민간기업이라 하면 좋을 것을 굳이 사기업이라거나 재벌로 표현하는 사례도 그럴 것이다. ‘낙수효과’ 역시 ‘소득창출효과’라고 하면 좀 더 쉽고 본질에도 맞다.

정치권 등에서 ‘적정 가격’ ‘부당 가격’ ‘폭리’ 같은 말도 예사로 쓴다. 하지만 적정한 가격도, 부당한 가격도 없다. 적정하지 않거나 부당하면 가격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런 것을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곳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도 있다. 대체로 ‘시장 가격’ ‘거래 가격’ 정도로 표현해도 중립적일 수 있다.

너무나 흔해진 ‘진보, 보수’도 실상은 ‘좌파, 우파’로 표현하는 게 정확할 때가 많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고, 특정 계층 계파가 용어를 선점할 때도 많다. 경제와 정치, 정책과 법률에서는 명확한 개념어를 정확하게 쓰는 게 더 중요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남용되고 오용될 때도 많다. 경계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경제뿐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의 제도를 발전시켜 격차도 해소하고 전체 경제를 살찌워나갈 것인가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