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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44호 2019년 9월 9일

생글기자코너

[생글기자 코너] 대규모 집회와 ''프랙토피아''

교통·통신 수단의 발전과 인구 과밀화 현상으로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며, 동일한 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집회를 열어 진행하는 결사 행위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공통된 주장을 표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헌법에서는 집회·결사를 통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자연적인 행동 양식이기 때문에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가 왜곡된 일부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는 집회의 경우, 집회 시 발생하는 물리적 충돌과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일방적 비난은 시민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전달해 공감을 받기보다 단순히 격앙된 감정이 분출되는 현장으로 보인다. 집회 현장이 참여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은 공간이 되고, 집회 규모의 거대화는 오히려 소수의 의견 표현을 가로막고 있다. 더 이상 소수라고 할 수 없는 거대화된 집단이 사회의 중요 위계와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특정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이들과 대립적인 이념이나 사상을 지닌 소수 집단은 집회를 할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

집회에 자유를 부여하고, 대규모 집회와 소규모 집회가 공존하게 하려면 문제가 되는 집회를 어떻게 조치해야 할까? 앨빈 토플러는 저서 『제3물결』에서 미래의 유토피아가 소통과 상생의 문화를 바탕으로 개인차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문명으로, 소통을 중시하는 정신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프랙토피아’라고 말한다. 집회는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회집단과 다르고 서로 같은 의견을 가진 집단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의견을 표현하는 단위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오로지 공통된 주장 하나를 가지고 집단을 이뤄 의견을 관철하는 것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랙토피아의 원리에 위반된다.

집회가 오랜 기간 계속되며 사회집단으로 변질돼 집회 내에서 권력관계가 생기고 구성원 개인의 활동이 오로지 집단을 위한 행동으로 인식된다면 이는 전체주의와 다를 게 없다. 집회·결사에서 프랙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선 이런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집회가 오랜 기간 계속되더라도 집회 구성원들을 집회에서 구분지어 개개인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소규모와 대규모 집회가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집회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문화포용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유찬 생글기자(전주상산고 1년) ycz1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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