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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 좋지만 법 조항 애매하고 "직장내 소통 단절" 우려도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퇴근길에 나선 한 대기업 직원들.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퇴근길에 나선 한 대기업 직원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된다. 직장인들끼리 ‘왕따’를 만들어 괴롭히는 것을 법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이 법은 ‘태움’이라 불리는 간호사 간 괴롭힘, 웹하드 업체의 직원 폭행 등으로 사회적 이슈가 커진 뒤 생겼다.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근로자가 5명 이상인 기업은 이 법을 준수해야 한다. 근로자가 10명 이상인 기업은 회사 ‘취업규칙’(학교로 따지면 ‘교칙’)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법 적용 대상 회사는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에게 징계나 근무지 변경 등 조처를 해야 한다. 취지가 좋은 만큼 ‘환영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법 조항이 모호하다’ ‘구성원 간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카톡 답장 없다고 욕하면 안돼

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왕따 만들면 징계"…'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6일부터 시행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어떤 행위가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괴롭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을 내놨다. 욕설이나 폭력 같은 행위는 당연히 괴롭힘에 해당한다. ‘여러 직원들 앞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 강요’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특정 근로자가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만을 지나치게 감시’ ‘전화기나 PC 같은 회사 비품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급하지 않는 행위’ 등이 예시로 나와 있다.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해 봤다. 우선 부장이 퇴근 후 지속적으로 업무 관련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뒤 반응이 없자 “부장이 얘기하는데 씹냐”고 답변을 독촉했다면 괴롭힘이 맞다.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에게 일을 주지 않고 다른 직원에게 해당 직원의 일을 맡기는 것’도 괴롭힘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직원이 업무 처리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전환 배치 등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신고자에게 보복해도 처벌

"왕따 만들면 징계"…'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6일부터 시행
괴롭힘을 당했다면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당사자가 해도 되고, 가족이나 제3자가 할 수도 있다. 이메일과 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신고가 가능하다. 신고 대상은 원칙적으론 ‘사업주’다.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담당 부서 또는 직원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신고해도 된다. 사업주 또는 담당 부서 직원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조사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우선 신고인 및 피해자를 만나 상담하고 사건 개요, 피해자 요구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회사 차원의 조사를 요구하면 정식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신체적·정신적 고통 유발 행위)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 징계에 착수해야 한다. 징계는 학교의 교칙 역할을 하는 ‘취업규칙’에 마련한 징계 규정에 따라야 한다. 회사에서 나가거나 다른 부서로 강제 이동되거나 월급이 깎일 수 있다. 회사가 만약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보복하면 사장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조직 활성화 방해 지적도 나와

대체로 ‘직장 내 괴롭힘’을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기업 한 팀장급 직원은 “직장 내 왕따는 은밀하게 소문을 내거나 채팅방에서 몰래 따돌리는 것”이라며 “법까지 생겼으니 괴롭힘이 근절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 내 혼란이 커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일을 못하는 사람을 혼내며 가르치는 것까지 ‘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팀장은 “업무 능력이 떨어져 중요한 일을 안 시키는 것에 대해 일을 못하는 직원이 ‘괴롭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사무실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말을 잘못했다가 법 때문에 징계를 받을 수 있어 아예 소통이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인간적인 관계보다 업무적인 관계로만 소통하게 되는 것이 걱정”이라며 “조직 활성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NIE 포인트

‘직장인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배경을 정리해보자. 법상 ‘괴롭힘’의 정의에 따라 직장 상사의 어떤 행동이 괴롭힘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괴롭힘 금지법의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토론해보자.

황정수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