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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공무원 증원·전체 국민 무상의료·연금 인상….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벌어진 파업 시위 행진 도중 한 참가자가 플래카드를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정부에 임금과 연금을 올릴 것을 촉구하며 의회까지 행진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벌어진 파업 시위 행진 도중 한 참가자가 플래카드를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정부에 임금과 연금을 올릴 것을 촉구하며 의회까지 행진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을 분명한 원칙없이 함부로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이다. 한 나라의 재정 파탄은 경제 위기, 국가 위기로 치닫게 된다. 대표적인 나라가 그리스였다.

“국민이 원하면 다 주라”는 포퓰리즘 정부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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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그리스 총리가 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취임 직후 각료들에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지시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 계층 무상 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총 11년이나 장기 집권했던 배경이다. ‘퍼주기’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다른 정당도 비슷한 공약을 내걸었다. 이후 30여 년간 여러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퍼주기 경쟁을 하는 동안 그리스 재정은 악화했다.

‘포퓰리즘 청구서’는 30년 뒤 공교롭게도 안드레아스의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총리로 집권할 때 돌아왔다. 2010년 그리스 정부는 늘어난 복지 혜택을 감당할 수 없어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서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국내총생산(GDP)이 쪼그라들면서 실업자가 대량으로 생겨나는 등 고통이 국민에게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면 그 부담은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그리스의 교훈을 한국 정치권도 깊이 새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80년대 초 그리스는 재정 견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 주요 국가 중 재정이 견실한 편에 속했다. 그리스 국가부채비율은 20%대로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1974년 집권한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이 재정의 ‘황금률(golden rule)’을 세워 엄격하게 지킨 덕분이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적자를 최대한 피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1981년 총선에서 사회당 소속 파판드레우 총리가 취임하며 황금률이 폐기됐다. 그는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줘야 한다”는 구호 아래 재정을 ‘통 크게’ 풀었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 증원이다. 취임 1년 만인 1982년 정부가 공공부문 종사자에게 주는 보수 지급액은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소득과 상관없이 전 계층에게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시행했다.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1980년 9.9%에서 5년 뒤 15.4%까지 뛰었다.

탄탄했던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치솟은 것도 이 시기다. 1980년 22.5%였던 GDP 대비 부채비율은 불과 4년 뒤인 1984년 40.1%로 급상승했다. 그로부터 9년 만인 1993년 100.3%로 100%를 돌파했다. 1년 동안 그리스에서 생산된 물건과 서비스를 고스란히 쏟아부어도 빚을 다 못 갚게 됐다는 얘기다.

기업 탈출로 경제 기초체력 추락

파판드레우 총리가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엔 조선, 석유화학, 석유정제, 자동차산업 등 경쟁력을 갖춘 탄탄한 기업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가 집권한 뒤 그리스 경제를 떠받치던 제조업마저 빠르게 쇠퇴했다.

이 같은 현상도 포퓰리즘 정책과 관련이 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최저임금을 취임 1년 만에 전년 대비 45.9% 올리고 해고를 어렵게 하는 정책을 내놨다. 근로자 표를 긁어모으기 위해서였다. 생산비용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외국으로 탈출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어야 했다. 1973년 그리스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던 남코는 1982년 노조가 3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에 들어가자 공장을 폐쇄했다.

포퓰리즘 빠진 국민들 “복지 유지하라”

재정이 거덜난 상황에서도 국민은 복지 축소에 반대했다. 2009년 복지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던 신민당은 선거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총리에 오른 건 파판드레우 총리의 아들 게오르기오스였다. 게오르기오스는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돈을 더 풀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는 되레 심화했다. 2010년 5월 IMF와 EU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게오르기오스는 취임 2년 만인 2011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스는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2600억유로를 지원받았다.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이었다.

■NIE 포인트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과도한 국가부채로 위기에 처했거나 경험한 나라들을 정리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리스 사례에서 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