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내년 '슈퍼 예산' 편성
내년 예산 470조원…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 증가
정부는 470조5000억원 규모로 내년 예산안을 짰다. 작년보다 7.1% 늘어나 ‘팽창 예산’이라는 말을 들었던 올해보다 41조7000억원(9.7%) 증가한 ‘초팽창 예산’이다. 민간에 돈을 적극 공급해 경기 회복을 이끌겠다는 정책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정부가 예산 지출을 늘리면 돈이 민간으로 흘러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예산으로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어 임금을 지급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돈 보따리’를 푸는 게 지속 가능할지, 재정을 확대한 만큼 효과를 거둘지 등과 관련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세금이 예상보다 더 많이 걷히는 ‘세수 호황’ 덕에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기업실적 악화 등으로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 회복 위해 초팽창 예산 필요하다지만…

정부가 초팽창 예산을 편성한 이유는 경제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상위 30대 기업 중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매출은 0.7% 증가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16%, 투자는 20% 이상 감소했다.

경기지표도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건설투자, 설비투자 등은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 신규 취업자 수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2.7%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2.7~2.8%)을 밑도는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보다 낮은 2.6%, LG경제연구원은 2.5%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2.3% 후 가장 낮다.

분배지표도 좋지 않다. 올해 2분기 ‘소득 5분위 배율’은 5.23배로 나타났다. 2분기 기준으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 배율은 최상위 20% 가구(5분위)의 월평균 소득을 최하위 20%(1분위)의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균형이 크다는 의미다.
내년 예산 470조원…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 증가
일자리·복지에 예산 집중 투입

이 같은 문제의식은 내년 예산안에 그대로 담겼다. 정부는 내년 일자리 예산을 역대 가장 큰 폭(22%)으로 늘렸다. 총 23조5000억원 규모다.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만 전체 예산의 35%에 달하는 162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최저임금 급등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등으로 제조업과 자영업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설명이다.

정부는 늘린 예산으로 노인일자리(51만 개→61만 개), 아이·노인돌봄서비스 등 여성일자리(12만 개→13만6000개), 장애인일자리(1만7000개→2만 개) 등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 어린이집 보조교사(1만5000명)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9만4000개를 창출하고,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을 합쳐 3만6000명 늘릴 방침이다.

소득분배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도 크게 늘렸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지급(51조원), 기초연금 인상 등 노인 지원(14조원), 기초생활보장 강화(12조7000억원), 건강보험 지원(9조원), 아동수당 등 보육 지원(7조9000억원) 등이다. 이 외에도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산업·중소기업·에너지(14.3%), 일반·지방행정(12.9%), 교육(10.5%), 문화·체육·관광(10.1%) 등 분야의 예산도 대폭 확대 편성했다.

재정확대는 세수 증가 덕…“불황 대비해야” 지적도

적극적 재정 집행은 세금이 많이 걷힌 덕분에 가능했다. 올해 상반기 정부 국세수입은 전년보다 22조8000억원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7조1000억원 더 걷힌 법인세가 세수 증가를 견인했다. 올해 법인세는 작년 기업 실적을 바탕으로 걷는데,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 이들이 내는 세금이 많이 늘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 실적 개선과 소비 증가 등이 겹쳐 세수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불황에 대비하기 위한 예산 편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효율적 예산 집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 정책보다 근본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는 혁신성장 정책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NIE 포인트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이 확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예산은 나라 살림살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경기가 부진할 때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는 게 국가 발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토론해보자.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