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는 채 일거수일투족을
관찰당했던 트루먼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감시 권력에 의해 검열받고 통제받는
우리 자신과 결코 멀지 않다.
[생글기자 코너] 인생은 모험의 연속…'울타리' 밖으로 나와야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어린 시절엔 탐구심이 강하여 여행가가 꿈이었고 섬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그에게 더 이상 탐험할 지역이 없다고 가르치고, 비행기 사고에 대한 공포를 심고, 자기가 사는 곳이 최고의 관광지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보여주고, 심지어 아버지(물론 배우)가 폭풍우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연출해 그에게 물 공포증을 심어주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욕구를 억제했다. 이 모든 것은 쇼 프로그램 프로듀서 크리스토프의 아이디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한 인간의 일생을 각본 없이 수천 개의 정밀한 감시 카메라로 붙잡아 생중계하려 했고, 이를 위해서 ‘시헤이븐’이라는 섬 하나를 통째 세트로 만들었다. 가히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다. 그리고 때맞추어 태어난 트루먼의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모든 성장 과정이 낱낱이 카메라에 의해 논스톱으로 생중계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트루먼은 어느 순간 자신을 둘러싼 음모를 꿰뚫어 보게 되고, 결국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생명을 위협하는 인공 폭풍우마저 이겨내고 세트장과 만들어진 인생에 작별을 고한다. 30년 평생 자신의 생활이 가짜였고, 만들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음모를 눈치챈 트루먼은 진실을 찾아 나선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유목민이라고 칭한 자들은 붙박이 문화 안에서 정형화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확정된 코드에 길들여진 정착민들에게는 지극히 불온하고 위험한 힘으로 비칠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에게 삶이란 모험이자 도전이고 새로운 경험이자 끝없는 해방 과정이다. 자신도 모르는 채 일거수일투족을 관찰당했던 트루먼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감시 권력에 의해 검열받고 통제받는 우리 자신과 결코 멀지 않다.

무심히 켠 컴퓨터, 한번 누른 마우스, 메신저를 통한 우연한 대화, 친구에게 보낸 짧은 휴대폰 메시지, 슈퍼에서 물건 사고 긁은 신용카드 등은 감시 권력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트루먼을 감시하던 시헤이븐 세트 안의 카메라로 전환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 트루먼과 결코 다르지 않고, 트루먼처럼 이 카메라 세트장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한다.

김재환 생글기자(경희고 2년) ktkk224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