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
교양 기타
(78) 훌리오 코르타사르… '드러누운 밤'
삶은 우연과 예외의 연속이다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건 책을 덮은 후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환상소설이라면 알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가 생각의 끈을 길게 늘어뜨리며 재미있고 신비로운 상상에 빠지기 딱 좋은 장르이다. 낯선 이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단편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모호한 내용 속에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섞여 있는 코르타사르의 소설을 갸웃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1914년에 태어나 7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출신인 코르타사르는 생전에 “환상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재미”라고 잘라 말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해 적극 발언하고 참여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소설에서 의도나 메시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코르타사르가 ‘우리 삶이 논리와 법칙에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과 예외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해 환상소설을 썼다’고 하니 편하게 읽고 각자의 느낌대로 환상 속을 거닐면 될 터이다.코르타사르의 탄생 100주년이던 2014년에 15편의 중단편을 담은 「드러누운 밤」이 발간되었다. 수록 작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명확하지 않아 독자가 상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허다하다.단편 「드러누운 밤」의 주인공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친다. 눈을 뜨면 병실인데 잠이 들면 아스테카 전사들을 피해 다니던 밤처럼 은근하고 복잡한 냄새가 흐르는 곳이다. 전쟁 냄새
-
교양 기타
(77)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세계를 감동시킨 제제『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언제 읽어도 깊은 감동과 깨끗한 마음을 안겨주는 성장소설의 고전이다. 성장소설은 어린 주인공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아에 눈뜨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화자의 영악하지만 순수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도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질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여섯 살이 채 안 된 제제, 우리나라 셈으로 따지면 일곱 살쯤 된 아이일 것이다. 1968년에 브라질 작가가 발표한 작품 속의 제제와 50년이 지난 지금의 어린이는 얼마나 다를까. 환경은 차이가 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발표 당시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19개국 32개 언어로 번역돼 미국을 비롯, 유럽과 공산권에까지 소개됐으며 파리 소르본대에서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1978년에 소개돼 지금까지 3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제제처럼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어린 시절을 친척집에서 보내야 했다. 작가의 유년시절 체험을 눈에 보일 듯 재미있고 진솔하게 그린 것이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도를 넘은 악동 기질로 주변 사람을 종종 위험에 빠뜨리는 제제는 반대로 너무도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동생 루이스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단단한 제제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구두닦이로 나설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아이다.
-
교양 기타
(76)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와 톰과 데이지의 무모한 선택《위대한 개츠비》는 대단한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다. 미국 뉴욕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20세기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을 선정했을 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가 두 번째로 꼽혔다. ‘옵저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등 명작을 선정할 때 《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이다. 그와 함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포크너,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미국소설의 삼총사로,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위치를 굳혔다.《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일명 ‘재즈시대’로 불리던 시절이다. 당시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전쟁의 승리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다. 상류계층은 재산을 늘릴 최적의 기회를 맞아 도덕적 타락과 부패를 일삼으며 개인의 욕망을 채웠고, 비정상적인 팽창으로 1929년에 증권시장이 몰락하면서 미국 사회는 대공황을 맞게 된다.192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쟁의 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청년들 가운데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위대한 개츠비》는 ‘잃어버린 세대’로 지칭하는 젊은이들과 당시 사회상을 실감 나게 묘사하면서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1896년에 태어난 피츠제럴드가 자신이 온몸으로 겪은 시대를 작품에 반영해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소설을 읽으면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어리석은 개츠비’로 바꿔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역시 개츠비 앞에
-
교양 기타
(75)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톨스토이가 네 번이나 읽었다안톤 체호프는 모파상과 함께 현대 단편소설의 형식을 확립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한국 유명 작가 가운데 “체호프는 단편의 재능이 없어 오래 고심해온 내게 중요한 스승이 돼준 작가”라고 공공연하게 말한 이들이 있다. 체호프가 ‘귀여운 여인’을 발표했을 때 톨스토이는 네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잡지 편집자와 평론가를 눈물을 흘리게 한 ‘골짜기’에 대해 러시아 대문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갈채를 받는 체호프는 의대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유머 단편을 쓰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860년 러시아 남부 아조프해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난 체호프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 잡화점이 파산하자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1886년에 처음으로 ‘추도회’라는 작품을 본명으로 발표했으며 2년 뒤 단편집 황혼으로 푸시킨상을 수상하면서 눈에 띄었다.인간의 속물성과 허위를 배격하고 진실한 인간성을 반추하는 단편소설을 여러 편 남긴 체호프는 희곡에도 관심을 기울여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과 같은 세계 희곡사의 걸작들을 써냈다.현대 단편소설의 길을 가르치다체호프의 여러 작품 가운데 ‘귀여운 여인’ ‘약혼자’ ‘골짜기’를 중심으로 얘기를 나눠보자. 왜 톨스토이가 네 번이나 읽었을까? 네 번의 사랑을 각각 음미하느라 그랬을까? ‘귀여운 여인’을 읽으면 대문호 톨스토이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자기주장이 강한 시대인 만큼 자기 색깔이 없는 올렌카의 삶에 고개를 갸웃거
-
교양 기타
(74)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세 친구으르렁대기 일쑤인 같은 학교 동급생 두 소년과 한 명의 소녀, 안 그래도 반항으로 터질 것 같은 열다섯 살인데 어른들 때문에 미칠 것만 같다. 이들 셋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덩치 크고 사나운 개 한 마리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섯 조합이 운명공동체가 되어 남도를 향한다면? 개성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티격대면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나겠는가. 함께 떠난 길에서 불꽃 튀는 충돌이 일어나지만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이해가 싹트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떠나 숱한 일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써먹은 형식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왜 그들이 함께 떠나는지가 중요하다. 성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은 대개 ‘고향’을 찾아가지만 청소년소설은 대개 ‘집’을 떠난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세 친구도 호기롭게 집을 나가지만 숱한 모험 끝에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준호에게 엄마는 연하의 사진작가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막걸리 공장 사장 아들인 승주는 일부러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엄마의 이상한 법칙 때문에 절에서 스님과 함께 지내며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정아는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면서도 폐인이 되다시피 한 불쌍한 엄마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예측불허의 사건이 벌어지고엄마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준호는 절친한 친구 규환으로부터 자신의 형에게 여권과 돈을 전달해 달라는 부
-
교양 기타
(7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세계인을 매혹시키다.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단순히 ‘점심에 뭘 먹을 것인가’에서부터 ‘신은 있다 혹은 없다’라는 어마어마한 명제에 이르기까지. 그 선택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상관없지만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라면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내가 없다고 확신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안이 있다는 게 인생의 난제다. 나의 확신으로 완결되는 것과 확신으로 완결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립한 뒤 《그리스인 조르바》를 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니코스 카잔차키스는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그리스 작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마치 종교 서적처럼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 명사들도 가장 감명받은 책으로 스스럼없이 꼽는 소설이다. 매혹적인 질문과 답변, 함께하고 싶은 공간과 음미하고 싶은 말들이 책 갈피갈피에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무방비로 끌려가기보다 나만의 답변을 생각하며 책을 대하면 좋을 듯하다.이 책의 화자는 35세 남자로 방안에서 원고를 쓰고 책 읽는 데 빠져 산다. 방안에서 자판만 두드리거나 모바일로 천하를 주유하지만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요즘 사람을 닮았다. 책벌레라는 놀림을 받던 나는 크레타 해안의 갈탄 광산을 개척하러 떠나기로 결정한다. 우연히 만난 65세의 알렉시스 조르바가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세 살 난 아들을 잃은 뒤 방랑자로 살아가는 조르바가 툭툭 내뱉는 말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여행과 경험, 만남과 부딪침에서 비롯된 생생함에 책만 읽던 나는 곧바로 매혹당한
-
교양 기타
(72) 김유정 '동백꽃'
1930년대 17세 처녀의 사랑그 시대 풍경을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익히면서 감동까지 받을 수 있는 장르로는 소설이 가장 적합하다. 2017년 대한민국 17세는 대학입시 준비로 많은 것을 절제하며 지낸다. 1930년대 17세는 어떤 압박을 받았을까.<동백꽃>의 17세 점순이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너 얼른 시집 가야지?”라는 얘기를 듣는다. 남자는 스무 살만 넘어도 노총각이라고 불렸으니 1930년대 17세의 관심은 온통 결혼이었을 듯하다.일제가 조선을 일본화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던 때, 학교에서 우리말도 배울 수 없고, 우리말로 문화 활동도 하기가 쉽지 않을 때 썼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동백꽃>을 읽기 바란다. <동백꽃>을 실은 <조광>이라는 잡지는 194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일본어로 글을 싣다가 끝내 종간되었다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서울로 이주해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더 이상 공부할 게 없다’고 선언한 뒤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4년 동안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야학과 간이학교를 운영하다가 방랑생활을 하거나 금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2년 남짓만에 쓴 단편들그러다 소설가 안회남의 권유로 소설 습작을 시작했고 1935년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로부터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2년 동안 30여 편의 주옥같은 단편과 10여 편의 에세이를 남겼다. 나라 잃은 설움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김유정이 쓴 소설에는 작가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그 시대 사람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lsquo
-
교양 기타
(71)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종신형'
덴마크 작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라고 하면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로도 만들어진 《정복자 펠레》의 작가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넥쇠는 덴마크가 자랑하는 최고의 소설가다. 1869년에 코펜하겐 빈민가에서 가난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본홀름섬에서 목동, 양화점 직공 등으로 일하면서 여름과 겨울 일이 없을 때 국민고등학교에 다니며 꿈을 키웠다.<종신형>의 주인공 마티스 로우는 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불만이었다. 어머니는 사십대였고 아버지는 그보다도 열 살이나 위였다. 마티스가 장난치고 노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무엇이든 하지 못하게 했다. 어려서부터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했던 마티스는 아버지나 어머니 곁에 있으면 그저 짜증이 났다.작가 넥쇠와 <종신형>의 마티스, 그리고 우리들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작가 넥쇠는 가난한 데다 11남매가 북적이는 집에서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11남매 가운데 넷째여서 일찌감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 투입되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쉬지 않아 청년 시절 교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고 29세 때 단편집 《그림자》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발표한 《정복자 펠레》가 성공하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85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평생 글쓰기를 계속하여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넥쇠는 다양한 직업을 거치는 가운데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