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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

    옆집 누나를 사랑하는 소년열에 들떠서 ‘옆집 누나, 교회 오빠’를 사랑하지 않고 10대를 지나버리면 그만큼 심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순수했던 시절 그 누나와 오빠를 떠올리며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창고를 꼭 간직하길 바란다.「애러비」의 주인공 ‘나’는 어느 순간 친구 맹간의 누나를 좋아하게 된다. 맹간이 누나를 괴롭힐 때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나풀거렸고, 부드럽게 땋아 내린 머리채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아침마다 맹간의 집을 훔쳐보다가 그녀가 현관 앞으로 나오면 바로 책가방을 쥐고 달려 나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갈림길 지점에 오면 ‘나’는 일부러 걸음을 빨리하여 그녀를 앞지른다.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괜히 그 앞에서 서성이는 일, 소년의 마음이 「애러비」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SNS가 발달되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확인하고 바로 만남을 갖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나’가 답답할지 모르지만 사랑 앞에서 가슴이 뛰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듯하다.‘20세기 문학에 변혁을 일으킨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은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T S 엘리엇은 조이스의 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라. 그것이 이 위대한 작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보면 좋을 것이다.『더블린 사람들』은 15편의 단편소설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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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구로야나기 테츠코 '창가의 토토'

    제비에게 말을 거는 토토···수업 방해초등학교 1학년 때 퇴학당한 토토. 수업 시간에 신기한 책상을 수없이 여닫고,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집을 짓는 제비에게 말을 걸어 도대체 선생님이 수업을 할 수 없게 한 아이다. 어머니는 가장 빠르게 퇴학당한 딸을 전교생이 채 50명이 안 되는 도모에 학원으로 데려간다. 전철 6량을 교실로 사용하는 작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토토는 “와!”하고 함성을 지른다.첫날 토토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준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마음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무슨 일을 하든 제지하지 않고 “끝나면 전부 원래대로 해놓거라”라고 말할 뿐이다. 아이들이 가장 배우고 싶은 과목으로 수업을 시작하니 시간표가 따로 없다. 새로운 전철 한 량이 더 들어오는 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재웠다가 보게 해주는 학교다.토토의 첫 번째 친구 야스아키는 소아마비 장애가 있다. 몸이 불편한 친구가 여럿 있지만 선생님은 다같이 옷을 벗고 수영하도록 해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공부하고, 운동회 때 상으로 채소를 주는 학교가 바로 도모에 학원이다.천편일률적인 학교61개의 짧은 이야기로 이어지는 《창가의 토토》는 수필 같기도 하지만 잔잔하나마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형식을 띠고 있다. 출간 첫해에 5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세계 34여 개국에 소개돼 독자들이 ‘토토짱앓이’를 할 정도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한국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창가의 토토》가 사랑받는 이유는 문제아로 찍혀 전학 온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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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추리소설 개척자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프랑스의 기 드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힌다. 포는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로 활동했는데 SF, 팬터지, 추리, 공포 문학의 원조를 따질 때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대단한 작가이다. 현대화된 소설의 틀을 마련한 독창적인 이론가면서 추리소설 개척자인 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현대 단편소설이 체계화되었다.포의 추리는 소설 앞부분에 단서를 제공하고, 특정한 인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지금까지 모든 추리 형식의 소설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정석이다. 사건을 시간 경과에 따르는 평이한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매듭을 동시다발적으로 풀어나가는 새로운 서술법으로 문학을 풍부하게 만든 것이다.<어셔가의 몰락>은 단편의 요체를 환상과 추리에서 찾은 포의 문학론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환상과 현실의 연결 속에서 단서가 계속 제시되는 어셔가의 몰락 과정을 따라가 보자.‘음산하고 어둡고도 조용하던 가을 어느 날, 구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낮게 하늘을 내리누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요즘처럼 더울 때 딱 읽기 좋은 내용이다. ‘나’는 음침한 저택의 주인 로데릭 어셔와 몇 주일을 함께 지내기로 한다. 어렸을 적 유쾌한 친구였던 로데릭이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정신이상으로 괴롭다’는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음산하고 곰팡이 낀 풍경 묘사 ‘탁월’음산한 주변 풍경, 곰팡이와 거미줄이 뒤덮은 저택, 부서진 석조물 등 포는 소설 앞부분을 온통 저택과 주변 분위기 묘사에 할애하며 사건을 예고한다. ‘눈에 띌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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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최인훈 '광장'

    남북 이데올로기 동시 비판6·25전쟁 67주년이 다가왔다. 1950년 6월25일에 발발해 1953년 7월27일에 휴전한 상태일 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 무수히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많은 논쟁을 낳았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작품은 바로 《광장》이다.《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남에서 북으로 가지만 작가 최인훈은 북에서 남으로 왔다.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원산고등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다. 그해 12월 해군함정 LST 편으로 전 가족이 월남하였다.그의 나이 24세이던 1960년 《광장》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이 주목받은 이유는 과연 뭘까. 이전에 나온 6·25전쟁 소설과 다르게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하는 가운데 주인공이 남북을 오가는 절묘하면서도 파격적인 스토리 속에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향하는 배 안에서 회상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철학과 3학년인 이명준은 친구 태식의 집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8·15 광복 때 월북했고 얼마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친구였던 은행가의 집에 살게 된 것이다. 명준은 사람에게 밀실과 광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명준에게 밀실도 그리 안온하진 않지만 광장은 불만 그 자체이다. ‘정치는 추악한 밤의 광장이자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경제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도는 광장, 문화는 헛소리의 꽃이 만발하는 광장’일 뿐이다.어느 날 명준은 느닷없이 형사에게 끌려간다. 북으로 간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오자 형사는 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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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톨스토이 단편선'

    교훈과 진리를 담은 단편소설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다. 소설, 희곡, 수필, 평론, 종교론, 인생론 등 방대한 저서를 남긴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로 불린다. 세계 100개가 넘는 다국어로 번역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같은 걸작을 쓴 톨스토이에게 ‘인류의 스승, 고귀한 거장’ 같은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장편소설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톨스토이가 남긴 50여 편의 중편과 단편 가운데 여러 작품은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된 필독서가 됐다. 러시아 민화에 기반을 둔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진정한 교훈을 주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보편적이지만 중요한 진리를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에서 구전된 전설이나 민담에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소박한 진리를 더해 작품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촘촘한 구조와 난해한 스토리, 수식이 과한 문장으로 독서를 방해하는 일단의 단편소설과 달리 톨스토이의 작품은 편하게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톨스토이의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단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꼽을 수 있다. ‘OO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식으로 계속 패러디되는 데다 진중한 질문을 담고 있어 제목만으로도 생명력이 있다 하겠다. 제목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해 작가들이 마지막까지 고심하는 부분이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툴툴거리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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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철없는 부녀를 찾아온 안느프랑스 작가라고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듯하다. 20~30년 전에는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프랑수아즈 사강의 천재성에 매혹되어 프랑스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사강이 1954년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은 18세 소녀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삶을 보는 눈과 그 속에서 꺼낸 통찰의 깊이가 크다.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은 혼자 사는 사람과 한 부모 가정이 흔해진 요즘 훨씬 더 공감을 줄 듯하다.《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따분한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2년째 아빠와 함께 지내는 17세 소녀 세실이다. 두 살 때 엄마가 사망했고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떨어졌지만 슬픔이라곤 모른 채 살아온 세실은 자유분방함에 취해 인생이 온통 보랏빛이다.딸에게 대범한 옷을 입혀 사교장에 데려가고, 자주 바뀌는 여자 친구 문제를 스스럼없이 상의하는 쿨한 아빠가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 세실과 아빠의 여자친구 엘자는 바닷가 멋진 별장에서 여름을 즐기게 됐고 세실은 해변에서 대학생인 시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반전은 별장으로 차갑고 이지적인 안느가 찾아오는 데서 시작된다. 세실은 가끔 죽은 엄마의 친구였던 안느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세련되고 침착한 안느 앞에서 스물아홉 살의 예쁜 엘자는 빛을 잃고 만다. 아빠의 눈길이 안느에게 계속 꽂히는 모습을 세실은 불안하게 바라본다. 안느는 휴가지에서도 마치 엄마처럼 세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가 하면, 시릴과 키스하다 들키자 남자친구를 사귈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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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싱클레어 루이스 '늙은 소년 액슬브롯'

    우연히 만난 소설에 마음 빼앗긴 주인공‘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나이에 할 일을 하며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게 행복하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스칸디나비아에서 이민 와 미국인이 된 크누트 액슬브롯. 60대가 되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18세에 결혼하여 58세까지 열심히 일해 빚을 갚고 농장도 하나 마련했다. 아내는 죽고 말았지만 자녀들은 장성하여 제 몫을 하며 산다. 크누트는 농장을 딸 내외에게 맡기고 오두막을 지어 고양이와 함께 유유자적 지낸다.크누트의 어릴 적 ‘꿈은 유명한 학자가 되어 여러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고, 역사에 능통하고 지혜로운 책들 속의 아름다운 세계를 마음껏 즐겨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상황에다 일찌감치 결혼했으니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 허전함을 달래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그런 크누프가 선택한 길은? 놀랍게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다가 예일대 생활을 화려하게 그린 내용에 매료되어 대학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는 들어가기 몹시 힘든 곳이다. 좌절도 하고 잠깐 포기도 했지만 하루 18시간 일하던 뚝심으로 12시간씩 공부하여 기어이 합격한다.65세 신입생에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할아버지뻘인 크누트를 동기생들은 친절하게 대할까? ‘화려하고 세련된 문학의 맛을 보려는’ 크누트의 소망을 안 기숙사 룸메이트 레이는 “당신처럼 늙은 사람은 그따위 쓸모없는 공부보다는 영혼 구제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할 거요”라며 무시한다. 모두들 크누트를 괴물 취급하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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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북한작가 반디 '고발'

    북한작가, 세계를 울리다우리가 북한문학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문학’이 생산되기 힘든 풍토다. 모든 자유가 봉쇄된 곳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야 하는 창작은 결코 시도될 수 없는 영역이다. 북한에도 작가들이 있고 많은 작품이 양산되지만 일방적으로 체제를 찬양하거나 의도를 갖고 선동하는 것은 창작으로 볼 수 없다.그간 탈북자나 그들을 취재한 이들이 쓴 북한 관련 책이 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창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북한 사람이 쓴 소설이 세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디라는 필명의 작가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의 현역 작가로 1950년생이라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1989년부터 1995년까지 쓴 7편의 단편소설은 각각 뛰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반디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체험과 그 속에서 삶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반디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개인이 철저히 무시되는 닫힌 사회, 극한 가난과 고통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 엄청난 울림과 충격을 준다.《고발》은 스토리에 동화돼 함께 달리지만 작가와 함께 벼랑 끝에 서서 침묵하게 되는 작품이다. 한참 생각해도 작가에게 건넬 말이 없다는 점에서, 한 올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가슴이 콱 막히고 만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그 안에서도 효도하고 정을 느끼며 살아내려는 그들의 안간힘에 눈물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7편의 작품은 가난과 억압의 최극단에 닿아 있다. 출신 성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