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엄마가 될 안느를 싫어한 세실
'아빠가 외도한다'는 음모 꾸미고
안느가 오해해 교통사고로 죽자 죄책감에 오열
소녀서 숙녀로 가는길 섬세하게 표현
철없는 부녀를 찾아온 안느'아빠가 외도한다'는 음모 꾸미고
안느가 오해해 교통사고로 죽자 죄책감에 오열
소녀서 숙녀로 가는길 섬세하게 표현
프랑스 작가라고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듯하다. 20~30년 전에는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프랑수아즈 사강의 천재성에 매혹되어 프랑스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강이 1954년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은 18세 소녀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삶을 보는 눈과 그 속에서 꺼낸 통찰의 깊이가 크다.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은 혼자 사는 사람과 한 부모 가정이 흔해진 요즘 훨씬 더 공감을 줄 듯하다.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따분한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2년째 아빠와 함께 지내는 17세 소녀 세실이다. 두 살 때 엄마가 사망했고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떨어졌지만 슬픔이라곤 모른 채 살아온 세실은 자유분방함에 취해 인생이 온통 보랏빛이다.
딸에게 대범한 옷을 입혀 사교장에 데려가고, 자주 바뀌는 여자 친구 문제를 스스럼없이 상의하는 쿨한 아빠가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 세실과 아빠의 여자친구 엘자는 바닷가 멋진 별장에서 여름을 즐기게 됐고 세실은 해변에서 대학생인 시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반전은 별장으로 차갑고 이지적인 안느가 찾아오는 데서 시작된다. 세실은 가끔 죽은 엄마의 친구였던 안느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세련되고 침착한 안느 앞에서 스물아홉 살의 예쁜 엘자는 빛을 잃고 만다. 아빠의 눈길이 안느에게 계속 꽂히는 모습을 세실은 불안하게 바라본다. 안느는 휴가지에서도 마치 엄마처럼 세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가 하면, 시릴과 키스하다 들키자 남자친구를 사귈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속박이 싫다던 아빠가 안느와의 결혼을 선언한다.
엄격한 통제가 싫은 세실은 ‘나는 자연스럽게 행복과 친절 그리고 태평스러움을 위해서 태어났지만, 그녀로 인해서 비난과 양심이 거리끼는 세계로 들어간다’며 절망한다. 아울러 ‘권태와 평온’이 두려운 자신과 아빠에게 ‘외적 소요’가 필요하지만 안느가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슬픔에 인사하는 어른이 되다
세실은 엘자와 시릴을 만나 아빠가 안느와 멀어지게 할 작전을 짠다. 엘자와 시릴을 연인처럼 위장시켜 아빠가 움직이는 동선과 자주 마주치게 한다. 질투심을 자극해 아빠를 엘자와 재회하게 했고, 이를 목격한 안느가 충격을 받아 자동차를 몰고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다.
깜찍한 세실의 계획은 끔찍한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과연 세실만 나빴을까. 세실이 ‘커다란 어린애’라고 생각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아빠, 휴가지에서도 “베르그송을 읽어라, 시험 준비를 해라, 남자친구와 헤어져라”며 끊임없이 압박하는 안느, 그리 생소한 모습이 아니다. 옛 애인을 찾고 싶은 욕심에 가득 찬 엘자, 세실과 헤어질 게 두려운 시릴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실은 엘자, 시릴과 모의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등한다. 마흔 살의 아빠도 방황을 끝내고 정착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달래는가 하면, 안느 아줌마가 자신을 생각해서 잔소리한다는 것도 알지만 멈추지 못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실컷 운다. 한 달 동안 두 사람은 외출도 하지 않고 ‘홀아비와 고아처럼’ 살며 안느를 회상한다. 평상심을 되찾은 뒤 다시 일상을 시작하고 새로운 애인을 만나지만 세실은 가끔 안느를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를 때면 ‘슬픔이여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안녕은 작별(bye)이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 ‘봉주르(bonjour)’를 뜻한다.
천재작가 사강
사강이 소르본대 1학년 때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 개월 만에 25만 권이나 팔렸다. 곧바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고 천재 소녀라는 칭송 속에서 사강은 문학비평대상을 받았다.
‘반짝 재능, 운 좋은 아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사강은 소설과 희곡을 계속 발표하여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소녀에서 숙녀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을 섬세하면서도 예민하게, 세련되면서도 깊이 있게 그린 이 책을 읽으면 성큼 자란 자신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