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8) 훌리오 코르타사르… '드러누운 밤'](https://img.hankyung.com/photo/201710/AA.14918909.1.jpg)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8) 훌리오 코르타사르… '드러누운 밤'](https://img.hankyung.com/photo/201710/01.14947859.1.jpg)
1914년에 태어나 7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출신인 코르타사르는 생전에 “환상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재미”라고 잘라 말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해 적극 발언하고 참여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소설에서 의도나 메시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코르타사르가 ‘우리 삶이 논리와 법칙에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과 예외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해 환상소설을 썼다’고 하니 편하게 읽고 각자의 느낌대로 환상 속을 거닐면 될 터이다.
코르타사르의 탄생 100주년이던 2014년에 15편의 중단편을 담은 「드러누운 밤」이 발간되었다. 수록 작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명확하지 않아 독자가 상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허다하다.
단편 「드러누운 밤」의 주인공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친다. 눈을 뜨면 병실인데 잠이 들면 아스테카 전사들을 피해 다니던 밤처럼 은근하고 복잡한 냄새가 흐르는 곳이다. 전쟁 냄새가 나는 그곳을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뛰다가 눈을 뜨니 옆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지겠어요”라며 걱정해준다. 현실과 꿈을 오가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무시무시한 신전에 갔고, 눈을 떴지만 피범벅이 된 사제가 돌칼을 쥐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꿈이라는 무한한 거짓말’ 속의 그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여덟 식구가 살아도 넉넉한 집에 남은 두 사람을 그린 「점거당한 집」. 어느 날 둔탁한 소리가 나자 겁에 질려 집 한쪽을 막아버린다. 나머지 한쪽에서 불안한 생활을 하다가 또다시 둔탁한 소리가 나자 그곳도 포기하고 집을 떠난다. 밖에서 대문을 단단히 잠그고 열쇠를 하수구에 던져버린 그들은 과연 누구에게 점거당한 것일까.
두 페이지 남짓한 짧은 이야기인 「맞물린 공원」은 코르타사르가 말한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불쑥 들어와 독서를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그. 이내 소설적 환상에 빠져들어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게 된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행동을 목격한다. 짧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 의자에 앉아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의 머리’이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헷갈리게 된다.

모호한 만큼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코르타사르의 작품을 모티브로 올해 소설가가 된 이도 있다.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 ‘토끼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또 다른 주검을 얼른 치워야 할 테니까요’ 뒤에 또 다른 문장을 이어 붙이는 시도를 한 것이다. 소설을 읽다가 ‘물론 주검처럼 보이는 그것은 청소부가 오기 전에 슬며시 일어나 다른 세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남동 바 노웨어로 말입니다’라고 하자 나이트가운을 입은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드러누운 밤」에 실린 작품을 알레고리와 합리성에 견주어 분석하기보다 코르타사르가 말한 ‘재미’를 즐기며 환상의 세계로 날아가 보시라.
이근미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