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74)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세 친구

정유정
정유정
으르렁대기 일쑤인 같은 학교 동급생 두 소년과 한 명의 소녀, 안 그래도 반항으로 터질 것 같은 열다섯 살인데 어른들 때문에 미칠 것만 같다. 이들 셋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덩치 크고 사나운 개 한 마리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섯 조합이 운명공동체가 되어 남도를 향한다면? 개성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티격대면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나겠는가. 함께 떠난 길에서 불꽃 튀는 충돌이 일어나지만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이해가 싹트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74)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떠나 숱한 일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써먹은 형식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왜 그들이 함께 떠나는지가 중요하다. 성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은 대개 ‘고향’을 찾아가지만 청소년소설은 대개 ‘집’을 떠난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세 친구도 호기롭게 집을 나가지만 숱한 모험 끝에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준호에게 엄마는 연하의 사진작가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막걸리 공장 사장 아들인 승주는 일부러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엄마의 이상한 법칙 때문에 절에서 스님과 함께 지내며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정아는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면서도 폐인이 되다시피 한 불쌍한 엄마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74)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예측불허의 사건이 벌어지고

엄마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준호는 절친한 친구 규환으로부터 자신의 형에게 여권과 돈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갑자기 사고를 당한 규환을 대신해 수배중인 운동권 형 주환을 만나러 전라남도 신안 임자도까지 가기로 한다. 규환이 미리 짜놓은 작전에 따라 광주로 향하는 승주네 공장 트럭에 올라탄 준호는 승주와 정아, 누명을 쓰고 오랜 기간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과 사나운 개 루스벨트를 보고 기겁을 한다. 개장수 아빠가 딸을 잡으러 왔다가 딸이 트럭으로 도망치자 루스벨트도 덩달아 올라탄 것이다. 소설은 각각의 사연을 안고 있는 이들이 나흘간 겪는 험난한 여정을 담고 있다.

성인이 되어 22년 전인 1986년을 회상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열다섯 살이 집을 떠났을 때 어떤 어려움이 생기는지 잘 보여준다. 다만 10대의 가출이라고 하면 으레 펼쳐지는 뻔한 전개가 아닌, 예측불허의 사건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소설을 읽으며 세 친구가 그 과정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서 갈등을 해소하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큼 성장하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소설 속에 운동권이 활기를 띠었던 1986년의 상황과 1980년을 광주에서 보낸 노인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등장하지만 무게감은 적지 않다. 청소년소설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인만큼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일부러 강조하지도, 그렇다고 피해가지도 않는 가운데 적절하게 짚고 넘어 간다.

돌아갈 수 없을 땐 돌아보지 마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진 정유정 작가가 쓴 유일한 청소년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2007년에 제1회 청소년문학상을 받았으나 정 작가는 이후 성인소설을 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기원》 등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으며, 대개의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근미 소설가
이근미 소설가
광주기독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정 작가는 35세에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43세 때인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후 무서운 질주를 하고 있다. 정유정 작가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후기에서 “나는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소설 쓰기를 가르쳐준 사람도 없다. 세상의 작가들이 다 스승이었고 열망이 인도자였을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돌아갈 수 없을 땐 돌아보지 마. 그게 미친 짓을 완수하는 미친 자의 자세야’라는 책 속의 문구를 음미하며 열다섯 살 세 친구의 모험과 정유정 작가의 열망을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이근미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