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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오남용 늘고 있는 어미 '-다면'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대비 만 65세 이상의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도 눈앞에 다가왔다. 이에 따라 고령 빈곤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덩달아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한 보도가 부쩍 늘었다. “이미 중장년층이 된 사람들은 퇴직연금을 운용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소극적으로 운용한다면(①) 젊은 세대는 상품 투자나 IRP 계좌 가입 등이 더 활발하다. 퇴직 이후에 본인의 연금 소득이 궁금하다면(②) 금융감독원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는데’로 써야 할 곳도 ‘-다면’으로 써주목해야 할 부분은 2개의 ‘-다면’이다. 똑같은 말인데, 쓰임새는 서로 다르다. ①에선 앞·뒷절이 의미상 대등절로, 앞절과 뒷절에서 각각 실제로 일어난 2개의 정보를 대비하고 있다. 이에 비해 ②에선 앞·뒷절이 ‘조건절-주절’ 구조다. 의미도 앞절에서 어떤 사실을 가정해 조건으로 삼는 뜻을 담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②가 원래의 제대로 된 용법이다. ①은 최근 많이 보이는 쓰임새인데, 아직 에는 올라 있지 않다. 온전한 용법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려대 에는 이 용법이 있다. “뒷절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도입함을 나타내는 말(-ㄴ다면)”로 풀이했다. 연결어미 ‘-다면’은 우리말에서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기에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그 연원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말 어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다면’은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간)에서 ‘-다 하면’의 준말(‘제가 힘이 세다면 얼마나 세랴?’)로 나온다. 이는 1987년 (삼성출판사)을 거쳐 1991년 금성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인과관계 구문 '-어서다' 바로쓰기

    인과관계 구문은 엄격하게 써야 한다. 논리성을 드러내는 말이라 잘 쓰면 글의 합리성과 타당성,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글에 탄력성과 짜임새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잘못 쓰면 글의 흐름이 어색해지고, 글을 오히려 허술해 보이게 한다. 다음 뉴스 문장도 그런 점에서 주의 깊게 들여다볼 만하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새삼 부각되고 있는 정보기술(IT) 업종에서의 인력 빼가기 실태를 지적한 대목이다.이유나 근거 나타내는 서술어로 쓰여“IT업계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전문가 등 개발자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중소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고액 연봉,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등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개발자를 싹쓸이하면서 중소기업의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어서다’는 ‘-기 때문이다’를 대체하는 표현이다. 의미가 거의 같다. 요즘 구어체가 뉴스 문장에도 늘어나면서 예전에 ‘때문이다’를 쓰던 곳에 ‘-어서다’가 많이 나타난다. 이 역시 남발되다 보니 잘못 쓰는 경우가 꽤 있다. ‘때문이다’ 구문의 틀에 맞춰 예문을 분석해보자. ‘①개발자 구인난이 심해져 중소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결과문) ②대기업이 개발자를 싹쓸이해 중기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원인문)’ 이게 골자다. 이를 한 문장으로 묶으면 ‘②…중기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에(원인) ①중소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결과)’라는 이상한 문장이 된다.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①과 ②는 같은 의미다.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서다’로 연결할 구문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인과관계 아닌데 '때문이다' 남용 곤란

    연초부터 화제가 된 챗GPT는 기존 인공지능(AI)이 한 단계 진화한 버전이다. 그동안 AI는 이런저런 실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진왜란이 언제 일어났어?” “임진왜란아~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난 거야.” AI의 실수 또는 한계 사례로 이런 게 꽤 많이 유포됐다. 대화의 맥락을 알아채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대입하고 해석하는 데서 오는 오류다. 뉘앙스 차이로 어색한 문장 많아글쓰기에서도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알아채지 못해 자칫 어색한 문장을 만들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앞뒤 연결이 안 되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면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가져온다. 그중 하나가 인과관계 구문의 잘못된 사용이다. 이 오류는 의외로 오류인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맥락을 이해하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1. 전기요금이 당분간 인상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인상이 쉽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냉방기기 사용이 많은 여름철을 앞둔 데다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만큼 공공요금 추가 인상은 여당에도 부담되는 일이다. #2.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스스로를 또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법적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안으로 프랑스 노조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 건과 ‘연금개혁안’은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 각각 뜨거운 이슈였다. 이를 전한 두 사례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서술어가 모두 ‘때문이다’로 끝났다. 그러니 이들은 인과관계 구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본 것이다. 이들의 진짜 공통점은 그 인과관계 구문을 잘못 썼다는 데 있다. ‘때문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처리수 vs 오염수', 과학은 왜 괴담에 밀리나

    지금 우리는 ‘언어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개의 말을 지켜보고 있다. ‘처리수 대(對) 오염수’가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세력싸움을 하는 중이다. 어느 쪽이 살아남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두 말에는 이미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져 있기에 ‘언어의 순수성’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 하지만 적어도 말을 들여다보고 판단할 잣대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과학의 언어’와 ‘시적 언어’의 구별이다.‘과학’보다 ‘정치’에 휩쓸리기 쉬워언어에도 스펙트럼이 있다. 말과 글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과학의 언어’에서 ‘시적 언어’까지 광범위한 표현 방식이 존재한다. 가령 ‘눈(雪)’을 설명하면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結晶體)’라고 한다면 그는 과학의 언어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눈은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도 하고 ‘서글픈 옛 자취’이며 ‘추억의 조각’인가 하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이기도 할 것이다(김광균의 시 ‘설야’). 이는 ‘시적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과학의 언어는 엄격하고 정교하며 객관적인 쓰임새를 요구한다. 그에 비해 시적 언어는 수사적 표현이 풍부하고 개인적이며 주관적, 감상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똑같은 대상을 두고 ‘언어의 스펙트럼’에 따라 서로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국어사전은 어디쯤에 있을까? 은 ‘과학의 언어’로 말한다. 앞서 살핀 ‘눈’에 대한 풀이가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어사전이 언제나 과학의 언어를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정치적 언어’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과했을 때는 '사과했다'라고 쓰자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평등을 가장한 역차별’ 등 법안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 “손해배상 조항을 포함하면서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차별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2021년 이즈음 당시 여권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입법화를 추진했다. 이 문구는 그 법안을 설명하는 대목 중 하나다. ‘사과의 뜻을 표했다’는 비틀어 쓰는 말그런데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문장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근로자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기업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부분이다. 이는 글쓰기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관형어 남발’의 한 유형이다. 원래 우리 어법은 이런 경우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이~’처럼 쓴다.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인용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술동사가 뒤를 받치게 돼 문장에 운율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관형어화해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식으로 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일탈적 어법은 정치적 표현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라는 입장을 밝히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국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입장’을 이상하게 풀어낸 형태인데, 이 역시 자주 나오는 오류다. 그렇다고 새삼 일본에서 건너온 말 ‘입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관형어 남발이 가져온 일탈적 문장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타계한 뒤 상속세와 관련한 쟁점 몇 가지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그가 남긴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는지였다. 이 회장은 생전에 수집한 국보급 미술품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하고 떠났다. 하지만 우리 세법에서 미술품이나 골동품으론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다. 현금이나 부동산, 유가증권만 가능하다. “정부는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비교할 때 미술품은 객관적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했다.”‘~라는 설명을 하다’와 ‘~라고 설명하다’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도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같이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기도 했다. 우리 관심은 이를 전한 한 언론보도문에 쓰인 ‘~어렵다는 설명을 했다’ 부분이다. 이 서술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부사어를 써야 할 때 습관적으로 관형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 ‘각별히 신경 쓰다’ ‘톡톡히 재미 봤다’라고 할 것을 ‘각별한 신경을 쓰다’ ‘톡톡한 재미를 봤다’라고 하는 식이다. 부사어를 써야 서술어가 살아나 문장에 리듬이 생기고 글이 탄탄해지는데, 무심코 관형어로 연결하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부사어의 관형어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고 설명하다’ 문구를 ‘~다는 설명을 하다’로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우선 ‘~다고 설명하다’의 문법 구조를 알아보자.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 인용되는 말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다. 이 용법은 글쓰기에서 아주 흔히 쓰이므로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직도 네가 잘했다고 생각해?” 같은 데 쓰인 ‘-고’가 그것이다. 이때 앞말이 직접 인용되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OO를 출범합니다"는 우리말일까?

    글쓰기에 앞서 ‘무엇을 담을까’를 궁리한다면 그것은 글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면 이는 글의 ‘형식’을 헤아리는 것이다. 글의 내용과 형식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 가운데 우리가 다루는 것은 주로 ‘형식’에 관한 얘기다. 형식이란 곧 어법을 뜻한다. 어느 정도 내용(글에 담을 자료)을 얽었다면 이후에는 말을 다듬어야 한다. 즉 ‘형식’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글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동사-타동사 구별 못한 非文 많아좋은 글은 어법을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어법은 (모국어 화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의 표현 방식’이다. 어법을 벗어나면 어색해지고 이는 곧 세련되지 않은, 격을 갖추지 못한 표현이 되고 만다. 그중 한 가지, 오늘 우리가 공략할 대상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이다. 너무 기초적인 문법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의외로 틀리는 이가 많다. “제4기 전자정부추진위원회를 출범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전자정부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전자정부 발전 유공자를 포상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에 정책뉴스로 이를 알렸는데, 공교롭게도 문법 오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범하다’는 자동사다. ‘날 출(出), 돛 범(帆)’이 어울렸다. 돛을 달고 나아가다, 즉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비유적으로 어떤 단체가 새로 조직돼 일을 시작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무역선 두 척이 아침 일찍 출범했다” “그 회사는 자본금 50억원으로 출범했다”처럼 쓴다. “~위원회를 출범합니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사각지대에서 건져올린 '알(R)'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기업 경영의 성패를 가를 필수적 개념으로 떠올랐다. CSR은 이윤 추구 활동을 넘어 기업이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윤리적 책임의식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마다 앞다퉈 CSR 경영을 펼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보도도 늘어났다. 영문자 R을 ‘아르’로 적을 근거 없어“CSR이란 흔히 사회공헌으로도 불린다.” “OOO 임직원이 주거환경개선 후원금을 전달하며 CSR를 실천했다.” “CSR가 사회적 안전장치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흔히 접하는 문구라 얼핏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예문에는 미세한 표기상 차이가 있다. 전문(前文)에 있는 것부터 보면, ‘CSR은… CSR이란… CSR를… CSR가…’로 돼 있다. 토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SR은’과 ‘CSR이란’에서는 R을 ‘알’로 읽었다. 이에 비해 ‘CSR를’과 ‘CSR가’에선 R을 ‘아르’로 읽은 것이다. 앞말에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말 조사가 ‘-은/는, -이란/란, -을/를, -이/가’로 달라진다. 이런 부분은 글쓰기에서 의미가 달라질 만큼 중요 사항이 아니라고 치부돼 자칫 간과해왔지만, 실은 늘 눈에 거슬리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영문자 R을 ‘아르’로 읽고 써왔을까? 오랫동안 ‘아르/알’은 우리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알’로 읽는데, 규범은 ‘아르’였다는 점에서다. 더구나 그 ‘아르’가 이론적·문헌적 근거 없이 잘못 읽고 표기한 데서 출발해 관행적으로 우리말 표기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22년 국립국어원은 이 표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