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OOO' 유행...포용한다면 모두 善일까?
최근 전남 광주 북구 국립광주과학관에서 열린 ‘모두의 AI’ 배움터와 실험실, 라운지 합동개소식 모습. 뉴스1


요즘 우리 사회에 ‘모두의 OOO’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요금 서비스에도 ‘모두의 카드’(다른 말로는 K-패스)란 게 있죠. 정부 정책이든, 공공서비스든, 또는 민간의 서비스든 여기엔 ‘모든 사람(everyone 또는 all)을 위한 것’이란 뜻이 담겼습니다. 사람들 간의 평등과 형평성이란 가치를 강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대표적인 게 정부의 인공지능(AI) 정책을 상징하는 ‘모두의 AI’입니다. AI 기술이 소수의 특권 또는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겁니다. 경찰 민원 응대와 경찰관 업무 보조를 위한 치안 특화 AI 서비스 ‘모두의 경찰관’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민간에선 수요에 대응하는 대중교통 서비스 ‘모두의 셔틀’, 전국 주차장의 요금을 비교해 할인 주차권을 판매하는 주차 플랫폼 ‘모두의 주차장’, 통영국제음악재단 등이 개최하는 성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교류 축제 ‘모두의 오케스트라’, 서울역 근처 갤러리인 ‘모두미술공간’ 등이 그런 예입니다.

이는 크게 공공정책의 브랜드, 또는 공공성을 띠는 서비스, 마지막으로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어요. 국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정치의 언어’에서 소비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기업의 마케팅으로 진화하고, 공유경제 플랫폼에서도 적극 활용되면서 ‘모두의 OOO’는 거의 일상 용어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현상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묻는 논술시험 문제가 출제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할 건가요? 한번은 정리하면서 미리 준비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모두’는 구체적 ‘개인’을 지운다?
'모두의 OOO' 유행...포용한다면 모두 善일까?
‘모두의 카드’ 홍보 패널

일단, 이런 식의 조어(造語)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개성이나 형편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선 ‘모두’를 앞세우는 화법이 전체주의의 함정과 획일성의 위험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구 정치철학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논쟁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공동체 전체의 ‘일반의지’가 개인의 ‘특수의지’보다 우선한다고 봤지만, 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전체’라는 이름 아래 소수의 의견과 이익이 억압받을 위험성을 비판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성이나 자아(주체)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他者)을 이해해 온 서양 철학의 전통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대신, 타자 중심의 윤리학과 철학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모두’라는 집합명사는 개별 주체의 고유한 모습과 타자성(他者性)을 지워버린다고 봤습니다. ‘모두’는 언뜻 포용적인 말로 들리지만, 타인의 ‘다름’을 나의 틀이나 사회의 표준 속으로 흡수해 버린다는 겁니다. 개성의 말살이고 익명의 타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 같은 ‘전체성’에 저항합니다.

정치철학에서 ‘모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기는커녕 갈등 양상을 억누르기만 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모두의 이익’ ‘모두의 만족’이란 개념으로 포장된다는 겁니다.

역시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미셸 푸코는 국가나 제도가 ‘모두’라는 이름의 정상상태(Norm)를 만들고,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통제해 왔다고 비판합니다. “모두를 위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이 기준(Norm)에서 탈락한 사람은 ‘비정상’, ‘예외’ 또는 ‘배려 대상’으로 재분류된다는 얘기입니다.

경제철학과도 연결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지원금을 지급할 때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로 논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보편적 설계는 행정비용을 줄이고 혹시 생길지 모를 낙인효과를 없애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가 서로 다른 집단에 동일한 자원을 배분해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위험도 큽니다. 차등의 원칙과 역량의 법칙이 같은 주장이나 이론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용’이란 지향은 살려가면서 ‘모두’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에선 현대 ‘정의론’의 기초를 놓은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등의 원칙이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경제적 부(富)나 권력의 차이)은 사회에서 가장 처지가 곤란한 사람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갈 때만 허용될 수 있다는 철학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 평등주의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생기더라도, 그로 인해 가장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의 삶이 나아진다면 그런 불평등은 정의롭다는 겁니다. 롤스의 가치 기준으로는 ‘모두의 OOO’보다 ‘가장 필요한 이를 위한 OOO’가 정의롭습니다.

최근의 논의 중 주목되는 것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입니다. 여기서 ‘역량’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의 총합을 뜻합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주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출발선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쉽게 이해하면 ‘기회의 평등’과 비슷한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센 교수는 단순히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대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모두의 OOO’가 아닌, ‘각자의 가능성을 위한 OOO’가 낫다는 것이죠. ‘모두의 AI’에서 ‘당신의 AI’로
'모두의 OOO' 유행...포용한다면 모두 善일까?
올초 미국 CES에 참가한 삼성전자의 행사 모습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미국 CES’에 나온 삼성전자의 주제어입니다.

삼성전자는 2025년초 CES 2025에서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올초 CES 2026에선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로 슬로건을 바꿨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범용 기술이었던 AI가 이젠 개인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개인 비서’로 진화했다는 의미입니다. ‘모두의 AI’ 수준에선 사용자가 시키는 일을 잘하는 AI 정도로 족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AI’ 단계에선 AI가 사용자의 패턴을 미리 파악하고 먼저 작업을 제안하는 동반자가 됩니다.

이처럼 기술 수준도 ‘모두’나 ‘전체’보다 개별 주체의 구체성과 주체성을 살리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각자의 OOO’ ‘당신만의 OOO’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OOO’로 진화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과 정치 공간, 정부 정책 등에선 여전히 ‘모두’의 가치와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전체’에서 진일보해 시민 각자의 삶과 개별성에 가치를 더욱 두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