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비대면 약 배송, 전면 확대가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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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개정 의료법 시행에 따른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앞두고 의약품 배송 확대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당초 약 배송은 도서·벽지 거주자, 장기요양수급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에 한해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로 대상을 확대하는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쟁이 촉발됐다.

“환자 편의성과 의료 접근성을 높일 것”이란 찬성론과 “약물 오남용으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을 것”이란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의료 접근성 확보와 국민 건강권 보호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찬반 양측의 논리를 짚어본다. [찬성] 비대면 진료 환자, 편리해져 … "의료 접근성 높아질 것"비대면 진료 후 약 배송은 의료 서비스의 완결성과 국민의 편의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았는데 약 수령을 위해 오프라인 약국을 찾아야 한다면 비대면 진료 자체의 효용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반쪽짜리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약 배송은 지리적·시간적 한계에 부딪힌 의료 소외계층과 바쁜 현대인들의 삶의 질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지방 의료 취약지 거주자,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 및 노인,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 시간을 내기 힘든 1인 자영업자 등에게 약 배송은 필수적인 보건의료 장치다. 단순히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을 넘어 약 수령이 어려워 치료를 포기하던 상황을 막고 생계와 일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은 이미 비대면 진료와 연계된 의약품 배송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한국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백만 건의 약 배송을 성공적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본인 인증, 전자처방전 시스템, 안전 운송 가이드라인을 도입한다면 오배송이나 변질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특정 대형 약국으로의 쏠림이나 플랫폼 종속은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두면 통제가 가능하다.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비대면 약 배송의 상당수는 환자의 거주지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약국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엄격히 감독하고 환자의 약국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령이 갖춰진다면 약 배송은 보건의료 서비스 혁신과 환자 후생 증진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반대] 약물 오남용에 국민 건강 위협 … 건보 재정 악화, 플랫폼 종속은 어쩌나의약품 전달은 단순한 물류 배송이 아니라 약사의 복약지도와 확인이 동반돼야 하는 보건의료 행위다. 약 배송을 전면 확대할 경우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겨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 지금도 일부 비대면 플랫폼을 통해 탈모약, 여드름약, 인공눈물 등 비급여·미용성 의약품의 사재기성 처방이나 약값 최저가 비교 등 상업적 호객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손쉬운 약 배송까지 결합할 경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약물 쇼핑과 오남용이 급증할 위험이 크다. 이는 곧 과다 진료로 이어져 가뜩이나 악화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배송 과정에서의 안전성 미확보와 책임 소재의 모호함도 간과할 수 없다. 배송 중 약품의 변질, 오배송, 타인 수령 등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명확한 배상 및 책임 체계가 미비한 상황이다. 대면을 통한 정확한 복약지도가 생략될 경우 환자가 올바른 복용법을 숙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부작용 위험 역시 온전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민간 영리 플랫폼에 보건의료 체계가 종속될 위험성도 있다. 거대 플랫폼이 진료부터 처방, 약국 지정, 배송까지 독점하게 되면 동네 거점 약국들이 고사하고 보건의료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 또한 플랫폼 서버에 축적되는 진료 내역, 상병 코드 등 민감한 개인 건강정보가 유출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영리 플랫폼이 방대한 개인정보를 독점한 뒤 빅데이터 가공 등을 통해 보험사 및 제약사의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 상업적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충분한 사회적 검증과 공적 인프라 없이 추진되는 약 배송 전면 확대는 철회돼야 한다. [생각해보기] 제도·시스템 우선 보완 … 허용 범위 넓혀가야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비대면 진료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의약품이 국민의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환자의 편의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민 건강권이라는 보건의료의 근본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 플랫폼의 지배력 강화나 동네 약국의 고사, 건강보험 재정 악화 등 반대 측의 우려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산업 혁신과 보건의료 생태계의 상생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 역시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오남용을 막을 의약품 관리제도, 배송 안전성 확보, 비대면 복약지도 등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게 많다. 법률에 따른 제한적 배송은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제도와 시스템을 보완해 단계적으로 허용 범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양준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