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800조원대 나라 살림
성장률 높이고, 양극화 해소에 쓴다지만
반도체 꺾이고 물가 자극할 가능성
기업 옥죄는 규제 푸는 게 더 중요
821조원 ‘슈퍼 예산’, 여러분의 미래가 달렸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맨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예산안은 이후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정부 안이 골간을 이루기 때문에 매년 큰 관심을 끕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긴 약 821조원 규모로, 이른바 ‘슈퍼 예산’이라 불리고 있어 관심을 끕니다. 올해보다 무려 12.8% 증액된 규모입니다.

‘한 해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느냐’는 청소년과 같은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을 바꾸는 중요 계기입니다. 정부 재정이 꼭 필요한 분야와 성장 동력에 예산이 알뜰살뜰 쓰인다면 나라 경제는 물론, 개인의 경제생활도 풍요로워질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너무 낙관하고 재정을 방만하게 쓴다면 그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됩니다. 우리가 딱딱한 경제 분야인 예산 편성을 굳이 생글생글에서 살펴보는 이유입니다. 예산 제약과 수지 균형나라 살림은 개인 경제생활 또는 가계 운용과 기본적인 원리에서 똑같습니다. 가정이 수입이라는 제약 속에 지출 계획을 세우듯, 국가도 세금 수입(稅收, 세수)을 예상하고 예산을 짭니다. 이를 경제학에선 예산 제약(budget constraint)라 부릅니다.

개인이 빚이 너무 많으면 파산하는 것처럼 국가도 부채 규모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수지의 균형, 즉 밸런스(balance)를 맞추는 것이 가계와 국가 재정 운용의 기본입니다. 최근 경기도의 재정 고갈 위험이 커졌다는 뉴스를 들어보셨죠? 재정 건전성 유지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항상 유의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나’이지만, 국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바뀌는 정부가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임기가 정해진 정부의 속성상,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역점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다음 선거에서도 이겨 정권을 유지하려면 예산을 짤 때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 재정 악화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적극 재정’에도 한계는 있어지금 정부는 과거와 달리 ‘적극 재정’을 강조합니다. 기업 등 민간의 경제활동이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이란 점은 부인하지 않지만, 경제성장의 마중물을 붓고 국가의 중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재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재정의 수지 균형’ 또는 ‘재정건전성 유지’를 잠시 포기할 각오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됐지만, 경제성장률이 0%대에서 허우적댄다면 정부가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서라도(빚을 크게 내서라도) 재정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쓰고자 합니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저성장이 고착된다면 건전 재정을 유지해 봐야 무엇하겠느냐는 거죠.

하지만 건전 재정의 둑이 무너질 정도로 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가 재정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재정위기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재정의 건전성’과 ‘적극 재정’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탈이 나게 돼 있습니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거죠. 초과 세수 적극 활용하기
821조원 ‘슈퍼 예산’, 여러분의 미래가 달렸다
내년도 슈퍼 예산을 보면 이런 정부의 고민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한편으론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론 우려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초과 세수라는 호기(好機)를 놓치지 않으려는 선순환(善巡還) 전략”이라는 게 대표적인 긍정 평가입니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분이 국세 기준으로 무려 194조원에 이릅니다. 내년 정부의 총수입은 880조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를 인공지능(AI)과 같은 미래산업과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한 투자의 마중물로 쓰고, 취업과 비싼 주택 가격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지원하는 데 크게 할애하더라도 지출은 821조원이니 괜찮다는 겁니다.

또한 반도체 호황과 수출 신장으로 국내총생산(GDP)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슈퍼 예산을 짜더라도 국가부채비율은 오히려 낮아진다(51.6→48.3%)고 정부는 설명합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 지출에도 나라 살림은 개선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정부가 또 하나 강조하는 부분은 고착되는 저성장 기조를 깨고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가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모두 맞는 말이고, 이런 나라 살림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슈퍼 예산과 5가지 의문점그런데 동시에 의문도 생깁니다. 이 글은 마칠 때까지 이 의문점에 집중해 봅니다.

첫째, 정부의 설명은 이전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아 저성장이 고착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재정 지출 확대는 나라의 총수요를 늘리고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에 힘을 보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금리 상승과 민간 투자감소라는 구축효과를 몰고 옵니다. 이 때문에 재정 지출 확대가 GDP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재정 승수 효과’가 1에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쉽게 말해, 재정 지출을 100억원을 늘려도 GDP가 100억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까지 낮아진 것은 재정의 역할이 부족했다기보다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며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가도록 기업 활동의 여러 애로와 규제를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방향의 성장 정책은 구축효과에 대한 걱정 없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친시장 처방입니다. 의욕만 앞세운 정부가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오히려 교란하고 마는 ‘정부 실패’는 이런 처방에선 확률적으로 적게 나타납니다.

둘째, 슈퍼 예산 편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반도체 산업은 20세기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원유 채굴 산업에 비견됩니다. 관련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공급망을 주도하는 나라는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초과이윤을 올릴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는 봅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슈퍼 예산은 이런 초과이윤과 거기서 파생되는 초과세수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어요.

그런데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일반적인 산업 사이클과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경기가 ‘호황-침체-불황-회복’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것처럼 과잉생산 등 여러 요인으로 반도체 산업도 일정한 사이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자산시장에 버블이 끼면 끝도 없이 가격 급등세가 지속될 것 같은 환각상태(illusion)에 빠지듯, 지금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어떤 이유로든 하강 쪽으로, 그것도 단기적으로 방향을 잡아도 그 충격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데, 자꾸만 초호황이 지속된다는 전제로 슈퍼 예산을 짜는 것은 경제정책을 책임진 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겁니다.

셋째, 슈퍼 예산 집행으로 과도한 유동성이 시중에 풀리면 물가 상승세는 어떻게 진정시킬까 걱정됩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급등한 집값의 근저에는 정부 지출 확대, 즉 확장적 재정정책의 영향, 그로 인한 시중 유동성의 과도한 공급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800조원 넘는 예산으로 청년 등의 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그런 유동성이 집값을 다시 밀어 올리는 결과를 낳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같은 국가기관 간에 이렇게 엇박자가 나면 나라 경제가 순탄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
821조원 ‘슈퍼 예산’, 여러분의 미래가 달렸다
넷째, 초과세수로 걷히는 돈은 3분의 1만 쓰고, 나머지는 미래의 투자와 재정수지의 안전판으로 남겨두는 ‘미래대응기금’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기금의 주요 사업비를 국회의 통제(의결)를 받지 않고 30%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견제받지 않고 쓰는 쌈짓돈이 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내년 미래대응기금 수입 규모는 162조원대로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국가부채를 먼저 갚는 데 이 돈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뉴욕 월가의 투자 구루들은 AI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2000년 닷컴버블, 심지어는 1929년의 대공황 직전만큼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합니다.

자산운용사 GMO의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현 상황을 ‘버블 속의 버블’이라고 표현합니다. 2021년 위험한 고평가 국면을 맞았다가 다행히 지나갔는데, 챗GPT 등장 이후 불어닥친 AI 열풍이 문제를 더 키우며 위기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AI 버블이 만약 붕괴하면 이는 단순한 금융 사건이 아니라 약 80년 주기로 반복되는 거대 사이클의 종료를 알리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80년 만의 경기 사이클이 꺾인다면 다시 경기가 회복되는 데 80년이 걸린다는 암울한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 예산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미래대응기금이라고 한다면, 이런 금융 불안의 안개가 걷힐 때까지 예비 차원에서 남겨둘 재정의 여력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슈퍼 예산으로 ‘K자 양극화 해소’ ‘격차 메우기’ 등에 쓴다지만, 불안한 세계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재정의 저수지’를 키우고 경제체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

위에서는 통상적인 생글생글 커버스토리와 달리, 슈퍼 예산이라는 뉴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한번 조명해 봤습니다. 정부 예산의 기능과 재정정책의 효과,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 등 경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다음 기회에 다시 다뤄볼 것을 약속드립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