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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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지원 아래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던 곳이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소설의 첫대목은 엄청난 암시를 담고 있다. 클레어 키건은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끝까지 읽은 뒤 첫 장으로 돌아왔을 때, 도입부가 전체 서사의 일부로 새롭게 읽히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이후 전개될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독자가 두 번 되풀이해 읽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1968년생인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은 지금까지 단 네 권의 소설을 발간했다. 첫 단편집 <남극>,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로 주요 문학상을 받았고, 2009년 <맡겨진 소녀>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2022년 오웰상을 수상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딸 다섯을 둔 가장 펄롱
"눈감아 버리면 그만인데…" 위험한 진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BOOK STORY]
소설의 주인공 펄롱은 열여섯 살 미혼모의 아들이다. 엄마는 미시즈 윌슨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지내며 펄롱을 키웠다. 학교에서 비웃음과 놀림을 당하며 힘들게 자란 펄롱은 이제 딸 다섯을 둔 가장이 되었다. 성실하게 석탄과 장작 파는 일을 해서 빚 없이 살지만 ‘캄캄할 때 일어나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캄캄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회의에 빠져 있다.

펄롱은 가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엄마도 미시즈 윌슨도 이미 돌아가셔서 더 이상 물을 수 없다. 소망이 있다면 딸들을 세인트마거릿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위풍당당한 수녀원 건물에 장작과 석탄을 배달하러 간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와 직업 여학교에 “타락한 여자들이 끌려와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미혼모들이 낳은 아기를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입양 보낸다”는 얘기들이 떠돌고 있다.

그런 말을 믿지 않는 펄롱에게 한 소녀가 다가와 자기를 나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수녀가 들어오자 소녀가 일하는 척을 하며 대화는 끊어진다. 펄롱은 마룻바닥을 걸레로 닦으며 윤을 내던 아이들, 석탄 대금을 치르러 잠깐 나오면서도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던 수녀가 계속 떠오른다.

마음이 무거운 펄롱이 아내에게 낮에 겪은 일을 얘기하자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우리 딸들이 겪을 일은 없어”라며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르는 척해야 하는 일도 있다”고 일축한다.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펄롱이 다시 수녀원에 배달하러 갔을 때 석탄광에 갇혀 있는 소녀를 보게 된다. 소녀는 자신의 아기가 사라졌다고 얘기한다. 펄롱이 소녀를 데려가자 수녀는 “대체 어디 있었니?”라며 앞뒤 분간을 못 하는 애여서 그렇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아기를 빼앗긴 미혼모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자 펄롱은 그 소녀를 집에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수녀원 눈밖에 나서 딸들이 세인트마거릿 학교에 못 갈 수도 있고, 아내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한다.

소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읊조린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펄롱은 소녀의 모습에서 미시즈 윌슨의 도움을 받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앞으로 고통이 시작되겠지만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그는 용기를 낸다. 펄롱의 모습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