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근로일수 단축은 직장인의 일상을 바꾸는 것은 물론, 여러분의 학교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수도 있는 거죠. 대선 본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되면 근로일수 단축이 국민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주 5일제는 2004년 대규모 사업장부터 시행했습니다. 주말을 온전히 이틀간 쉴 수 있게 돼 근로자의 여가 활동이 늘어나고, 소비지출 증가로 내수시장이 활성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근로일수가 줄어도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기업으로선 인건비 부담이 적잖이 커졌어요. 근로일수 단축이 근로시간 규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걱정입니다. 첨단기술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화두로 떠오른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지금은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경제이론을 통해 본 근로시간의 결정 과정, 우리나라의 주 5일제 도입의 전후, 노동생산성과의 관계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근로시간 단축, 인간다운 삶 내걸었지만
기업 부담 늘리고, 고용 질 악화 부작용도

‘소득-여가 선택’이 근로시간 좌우
먼저 근로시간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경제이론으로 살펴볼까요? 자유경쟁시장에서 근로시간은 근로자와 기업의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됩니다. 근로자는 효용(만족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노동과 쉴 수 있는 여가 사이에서 최적의 노동시간을 선택합니다. 이른바 ‘소득-여가 선택 이론’이죠. 대개 임금이 낮은 수준이면 여가 대신 노동을 선택하고, 임금이 높은 구간에선 노동보다는 여가를 택하게 됩니다.
이를 노동공급곡선으로 설명해볼게요. 만약 X축을 노동량(근로시간), Y축을 임금 수준으로 놓으면 일반적인 노동공급곡선은 오른쪽 위를 향합니다. 즉 임금이 높아지면 노동공급이 늘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근로자들은 여가를 더 선호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결정을 합니다. 이 경우 그 지점에서 곡선은 왼쪽 위로 꺾어집니다. 이를 ‘후방굴절 노동공급곡선’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 수요량, 다른 말로는 근로시간을 결정합니다. 근로시간과 생산량의 관계에선 ‘수확체감의 법칙’이 나타납니다. 노동시간이 늘수록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그 증가 폭은 점차 줄어드는 것이죠. 수확체감은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생산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수 활성화 기여, 비정규직은 늘어
근로시간 제한과 단축의 역사는 근로자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자본주의 생산 체제가 확산하기 시작한 19세기 유럽에선 공장 근로자들이 하루 13~16시간에 주 6~7일 노동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802년 영국 공장법 제정 이후 ‘12시간 노동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엔 ‘8시간 노동제’로 개선됩니다. 영국의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이란 작품에서 영국 북부 산업도시 근로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과 참혹한 주거 현실을 고발하면서 더욱 경종을 울렸습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주 6일(48시간) 근무가 법제화됐지만,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이 계속됐습니다. 이게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44시간으로 단축됐어요. 당시는 월~금요일 5일을 일하고,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는 식이었죠. 주 5일제 도입 논의는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본격화했습니다. 노동계는 삶의 질 개선을, 경영계는 생산성 하락과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3년간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주 5일제는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고, 2004년 7월부터 1000인 이상 사업장과 금융·공공 부문에서 먼저 시행됐습니다.
주 5일제 도입으로 법정 근로시간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준 것뿐 아니라, 실제로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시간~6시간 30분 단축됐습니다. 이를 통해 근로자의 건강, 노동생산성 등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1인당 노동생산성이 약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분석 자료도 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에서 ‘월화수목금, 토일 휴식’으로 바뀌며 가족 중심 여가 문화가 생겼고, 자기 계발과 여행·외식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 내수 활성화에도 기여했죠. 도입 당시 우려와 달리, 2003년 3.1%이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이후 4년간 4.3~5.8%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당시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인건비가 상승한 효과 때문에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 게 대표적입니다. 이로 인해 기업이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 활용을 늘리면서 자연히 고용의 질은 악화하는 문제도 생겨났습니다.NIE 포인트1.노동공급곡선을 ‘후방 굴절’ 현상까지 고려해 한번 그려보자.
2.법정 근로시간과 실제 근로시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3. 주 5일제 도입의 효과를 정리한 후 자신의 주장을 담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보자.생산성 낮은데 근로일수 줄여도 될까?
일자리 감소하는 AI시대 대비할 필요도

생산성 향상 노력 기울여야
노동생산성은 한 나라의 소득수준, 국제경쟁력, 그리고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일정한 기간의 노동 투입(근로시간 또는 근로자 수)에 비해 얼마만큼의 산출물(생산량, 부가가치 등)이 만들어졌는지를 따져서 구합니다. 대개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총산출량/총근로시간)을 비교 잣대로 삼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약 44.4~53.3달러대입니다. 이는 아일랜드(154.9달러), 미국(77.9~87.6달러), 프랑스(65.6달러), 일본(53.2~56.8달러) 등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4.7달러와 비교해 4분의 3 수준이죠.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여러 문제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임금이나 고용안정성이 큰 차이를 보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가로막습니다. 기업엔 아직도 상명하복식 의사결정이나 변화에 둔감한 조직 문화가 많이 남아 있죠. 제품이나 산업 전체에 대한 정부 규제가 선진국에 비해 많다는 점도 문제이지요. 이런 요인들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단번에 눈에 띄게 끌어올리기 어렵습니다. 점진적으로 개선해갈 수밖에 없어요.
다음으로 노동시간과 생산성은 어떤 관계인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많습니다. 이런 장시간 노동 관행을 없애면 근로자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줄고, 업무 집중도는 높아져 시간당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효과일 뿐,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요. 자동화·디지털화 등 업무 방식의 혁신 또는 성과 중심 조직문화로의 변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거죠. 결국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 조건으로서 근로시간 단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면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근로일수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유연근무제 등 대안 검토를
시야를 넓혀보면 선진국들은 스타트업 등에 근로시간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지 않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은 회사에 야전침대를 두고 밤낮없이 첨단 기술과 제품 개발에 열중합니다. 반도체뿐 아니라, 범용 인공지능(AGI)·휴머노이드 로봇·자율주행차 등에서 개발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이들에겐 일반적인 근로시간 규제가 오히려 국가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미국 연방법은 컴퓨터시스템 분석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IT(정보기술) 직군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연합은 근로시간 지침을 통해 근로시간, 휴식 시간 등 규제를 엄격히 하고 있지만, IT 기업 등 특정한 산업과 직종,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선 예외를 허용합니다.
또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예전만큼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다가옵니다.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는 판국에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을 걱정해야 하느냐는 주장이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인간의 근로시간은 줄이되, 소득이 감소하는 부분을 로봇세 등을 거둬 보전해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근로시간과 근로일수가 줄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NIE 포인트1.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의 관계에 대해 다시 정리해보자.
2.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이유와 개선 방안에 대해 공부해보자.
3. 유연근무제나 탄력근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나라 제도를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