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몇 번으로 주문과 결제를 끝내는 키오스크. 요즘 이 기기는 동네 매장의 필수품이다. 아르바이트 직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매장 주인들이 앞다퉈 키오스크를 도입한 결과다. 국내에 보급된 기기는 2023년 기준으로 53만6602대에 이른다.
문제는 키오스크 사용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이다. 정부는 장애인의 매장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었다. 키오스크 앞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하고 기기에 점자블록과 스크린 높이 조절 장치 등도 갖추라는 게 골자다. 계도 기간은 내년 1월까지다. 그 이후에도 배리어프리 제품을 설치하지 않은 사업주에겐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찬성] 사회적 약자 배려는 국가의 의무…IT 인프라 누구나 쉽게 접근해야
Getty Images Bank키오스크 주문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다. 수십 개에 달하는 상품을 살피는 것은 기본. 주문 수량과 결제 수단, 포인트 적립 방법 등 선택해야 할 항목이 한둘이 아니다. 화면을 잘못 건드리면 주문이 초기화되기도 한다. 기계를 다루는 데 자신이 없는 중장년 소비자가 “점원이 있는 매장만 골라 다닌다”라고 토로하는 배경이다.
장애인에겐 키오스크 장벽이 훨씬 더 높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화면을 터치하기가 쉽지 않다. 터치스크린의 높이가 성인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아예 키오스크 매장을 이용할 엄두를 못 낸다. 음성이나 점자로 메뉴를 안내하는 키오스크가 흔치 않아서다.
정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음성출력, 안면 인식, 점자 기능 등이 내장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의무화한 것은 바람직하다. 구형 키오스크만으론 장애인이나 고령층의 매장 접근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턱대고 자영업자에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소상공인에게 최대 70%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계도 기간이 너무 짧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된 것은 2년여 전인 2023년 3월이다. 이미 공공기관과 극장 등에선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고려해 내년 1월 28일로 과태료 부과 시점을 1년 미룬 것도 영세사업자를 배려한 결과다. 유예기간을 더 준다고 해도, 시행 시기가 임박하면 똑같은 주장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키오스크는 시작에 불과하다. IT(정보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첨단 기기들이 일상 속으로 들어올 게 분명하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관련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반대] 자영업자에 부담만 주는 탁상행정…준비 부족으로 혼란 야기할 수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총론은 그럴듯하지만, 적용 범위와 시행 시점 등이 비현실적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면적 50㎡(약 15평) 이상인 매장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써야 한다. 테이블이 4~5개에 불과한 동네 식당도 법 적용 대상이라는 얘기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키오스크가 자영업자의 부담만 키울 것이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사회적 약자의 매장 접근성이 중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야 했는지 의문스럽다.
새 제도의 시행 시점을 내년 1월로 촉박하게 잡은 것도 문제다. 현재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일반 키오스크보다 3배 정도 가격이 비싸다.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여서다. 키오스크를 포함한 디지털 기기의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도입 계획 시기를 여유 있게 잡았다면,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물론 정부의 보조금 예산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도 많지 않다. 수십만 명의 자영업자가 한꺼번에 키오스크 구매를 요청할 경우, 수요를 맞추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무인 카페와 헬스장 등에서 많이 쓰는 자동 출입 인증시스템은 배리어프리 기능을 갖춘 제품이 아예 없다. 정책 홍보도 미흡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2월 키오스크를 도입한 식당·카페·PC방 40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85.6%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화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의무화하면 혼란만 커질 것이다. 유예기간을 넉넉히 주고 적용 대상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수정해야 한다. √ 생각하기 -경기 상황 등 감안해야…'벌금 대신 혜택' 고려해 볼 만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는 선진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 중 하나다. 몸이 불편한 이웃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자는 주장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예컨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 경기침체로 문을 닫은 매장이 줄을 잇는 요즘 같은 때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의 추가 부담을 지우는 게 적절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는 매장에 벌금을 물리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 대신, 잘 지키는 곳에 세제 혜택을 주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환경보호나 인종차별 금지 등의 이슈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논란과 양상이 비슷하다. 국가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법령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게 옳은지, 소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등을 놓고 첨예하게 의견이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