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지난해 중단한 건설사 사망사고 명단 공개를 다시 추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토부는 사망사고를 일으킨 건설사업자 명단을 공개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건설기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3월 5일 입법 예고했다. 건설업계와 노동계, 소비자 등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건설업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반면 노동계와 소비자들은 “건설사들이 안전관리에 더 힘쓰게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 인프라는 사회 안정과 발전에 필수 요소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나면 건설사 명단 공개까지 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일까. [찬성] 건설 현장에서 매년 200명 사망…명단 공개로 사회적 책임 유도해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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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가 낸 개정안은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건설사업자명, 공사명 및 사망자 수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건설사업자 명단 공개 절차 및 방법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명단 공개가 이뤄지면 건설사의 경각심을 높이고 사망사고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토부가 밝힌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매년 2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하고 있다. 특히 이 중 약 25%가 시공능력평가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메이저 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다리 붕괴 사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길이 210m의 상판 4개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상판에서 작업 중이던 10명이 함께 추락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고다. 지난달 14일 부산 반얀트리 해운대 리조트 신축 공사장 화재 사고 역시 참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6000달러의 경제 규모를 갖춘 선진국이지만 안전 인프라는 이에 걸맞지 않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와 소비자업계도 건설사 명단 공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노동단체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매년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데도 기업들은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건 문제”라며 “명단 공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건설사는 아파트, 빌라 등 국민의 거주 시설을 짓는 만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으로 공표된 건설사는 브랜드 가치 하락 등 심각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대] 개인 실수로 인한 사고까지 포함…'망신주기 아니냐' 실효 의문건설업계는 정부의 명단 공개 재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망사고는 개인 부주의나 실수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요인들을 무시하고 특정 건설사 현장 사망자를 집계해 발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명단 공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건설사 망신 주기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명단을 공개한다고 해서 정말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라며 “안전시설 투자 지원이나 제도 개선 없이 사고 책임을 건설사에 모두 떠넘기려는 처사”라고 말했다.

2022년부터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 상황에서 ‘이중 압박’이라는 말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사후 처벌 중심이어서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국내 2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 대비 오히려 12% 증가했다. 건설사들은 명단 공개 역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건설사들의 상황이 최악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방 악성 미분양 증가 등 건설 경기 침체로 중견 건설사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 판국이다. 올 들어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대저건설, 안강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잇따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까지 지방 악성 미분양 매입 등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명단 공개까지 공개하면서 건설사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고가 나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과도한 규제를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것이 건설사는 물론이고 지역 경기를 위한 길이다. √ 생각하기 - 시행 유예하거나 벌점 등 공개기준 검토해볼 만
서욱진 논설위원
서욱진 논설위원
국토부가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 공개하겠다는 것에 대해 건설사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건설사들도 명단 공개를 망신 주기라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볼멘소리만 하기엔 건설 현장 사고가 너무 자주, 너무 참혹하게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만 국토부는 최악이라는 건설 경기와 쓰러지고 있는 건설사들의 상황도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명단 공개까지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절충안으로 몇 년간 유예를 두고 명단 공개를 시행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사망자 수를 벌점으로 계산해 몇 점 이상이면 공개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와 건설사가 한마음으로 실질적 사고 예방에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