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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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근시(回詩)

정약용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새 날아갔으나
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늙기를 재촉하지만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은혜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노래 소리 더욱 좋고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소.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 모습이니
한 쌍의 표주박을 남겨 후손에게 전합시다.

* 정약용(1762~1836) : 조선 후기 학자, 시인.

다산(茶山) 정약용이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지은 시입니다. 60회 기념일은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 15세에 부인 홍 씨와 결혼한 지 딱 60년이 되는 날이죠. 하지만 회혼 잔치를 베풀려던 그날 아침,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74세의 파란만장한 삶이 잔칫상 사이로 잦아들었지요.
그 신혼 치마에 먹물 자국이 아직…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이 시는 그가 죽기 사흘 전에 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생애 마지막 작품이군요. 이로부터 2년 후에 부인은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부인의 ‘그 옛날 치마’란 조선 시대 여인들이 입던 하피(霞)를 말하지요.아내 치마폭에 한 자씩 새긴 <하피첩>다산은 유배 생활을 오래했습니다. 전남 강진에서만 17년을 지냈지요. 귀양살이 10년째가 되던 해,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인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젊은 날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남편에 대한 정을 치마에 담아 전하고 싶었을까요.

다산은 그런 뜻을 헤아려 치마를 70여 장의 서책 크기로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B5 용지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지요. 그 치마폭에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만든 다음, 먹을 찍어 한 자 한 자 정성껏 글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그 유명한 <하피첩(霞帖, 노을빛 치마로 만든 작은 책자)>이지요. <하피첩> 서문에는 다산의 심중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네.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만년의 서글픔 가눌 수 없네. 마름질해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써보았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 깊이 새겨두기를.”

신혼 때의 ‘그 옛날 치마’에서 병든 아내의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과 ‘만년의 서글픔’을 함께 느끼는 유배객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중에도 정신을 가다듬어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내려가는 아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선비의 마음가짐과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등 평생 지킬 덕목을 하나씩 일깨우는 대목이 애잔하게 다가옵니다.늘 말을 조심하고 근검하여라그는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우러나온다”며 “전체적으로 완전해도 구멍 하나만 새면 깨진 항아리이듯이 모든 말을 다 미덥게 하다가 한마디만 거짓말을 해도 도깨비처럼 되니 늘 말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을 전했지요. “흉년이 들어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굶어 죽는 사람은 대체로 게으르다. 하늘은 게으른 사람에게 벌을 내린다”는 가르침도 곁들였습니다.

이런 사연이 이 한 편의 시에 다 응축돼 있지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60년 세월을 복사꽃 무성한 봄빛의 신혼 시절과 연결한 첫 구절도 신선하지만, 오랜 유배로 떨어졌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을 ‘한 쌍의 표주박’을 합치는 것으로 표현한 마지막 비유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음미해보세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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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첩’ 서문에는 다산의 심중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네.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만년의 서글픔 가눌 수 없네. 마름질해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써보았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 깊이 새겨두기를.” 신혼 때의 ‘그 옛날 치마’에서 병든 아내의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과 ‘만년의 서글픔’을 함께 느끼는 유배객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중에도 정신을 가다듬어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내려가는 아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