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불황에 고물가, 미국은 고금리…한은, 금리 올려야 하나
경제가 나쁘면 정부는 다양한 사업으로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로 이런 정책에 보조를 맞춘다. 이때는 금리가 내려간다. 반대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거나 경기과열, 인플레이션이 분명할 경우 중앙은행은 돈을 거둬들인다. 금리인상이 단행되고, 자금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와중에 고물가에 직면해 있다.

전자(불황)로 보면 금리인하가 자연스럽고, 후자(고물가) 관점에선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 대처로 코로나19 때 풀었던 막대한 자금을 거둬들이면서 고금리로 가는 것도 변수다. 증권시장의 자금 이탈, 고환율을 막으려면 미국을 쫓아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운 기업과 빚 많은 가계에 고금리는 부담이다. 그래도 한은은 금리를 올려야 하나. [찬성] 저금리 유지 땐 외자이탈·고환율·고물가…풀린 돈이 야기한 부동산 거품 해소도 절실충격적인 코로나19 대책으로 각국은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가 나서 온갖 명목으로 돈을 풀었다.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돈이 돈 가치를 잃게 됐고, 미덕으로 여겨졌던 저축 심리도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19 충격기에는 돈 풀기와 저금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금융을 정상화해야 한다. 돈이 가치를 잃는 것의 다른 측면이 고물가다.

물가가 오르는 데는 억지로 끌어올린 최저임금 등 임금 요인과 국제 지정학적 변화에서 비롯한 원자재 가격 인상 요인 등이 겹친다. 그래도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하게 풀린 돈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이어지던 3년 동안 1조3000억 달러가 풀려나갔다는 추정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민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양적완화’라는 명목으로 나간 돈을 빠르게 거두어들이고 있다. Fed가 무섭게 금리를 올리는 게 그렇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집값이 과도하게 급등한 것도 저금리에 따른 현상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 부족이라는 수급 불균형 탓도 있지만, 시중에 돈이 넘치고 저금리로 대출이 쉬워지면서 집값을 자극했다. 실물자산에 낀 거품을 해소하지 않으면 건실한 경제성장이 어렵다. 금리를 올리면 단기 급등한 부동산 거품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자산 거품은 근로소득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려 근로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서도 적기 해소가 바람직하다.

미국이 앞서 금리를 올려나가는 판에 한국이 저금리를 고수하면 자본의 해외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한국은 주식시장부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주식시장의 급락은 개인투자자들 손실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금 이탈은 통상 고환율을 초래한다. 고환율은 에너지·식량 등 수입품 가격을 올려 물가상승을 초래한다. 피해는 서민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저금리를 고수하면 정부·기업·가계 모두의 빚이 더 늘어나 부채 공화국을 심화시키게 된다. [반대] 불황에 금리인상, 한계기업·서민에 부담…소비·투자 위축 불러…줄도산 땐 큰 손해경제주체들의 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금리를 많이 올리면 이자 부담으로 경제는 한층 나빠진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가뜩이나 운신의 폭이 좁은 정부부터 제한된 예산을 빚 갚는 데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일본이 논란의 와중에도 저금리를 오래 유지하는 데는 금리가 오를 경우 정부가 갚아야 할 이자가 너무 많아진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업은 더하다. 한계 산업과 부실기업이 많아 고금리가 되면 많은 회사가 줄도산하게 된다. 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도와왔는데 지금 파산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 아무리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적절한 출구전략을 마련해두지 않은 상황에서 단시일 내에 줄도산 사태가 빚어지면 막대한 처리 비용은 누가, 어떻게 조달하나. 한국의 기업부채는 2705조 원(2023년 6월 말 기준)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121.4%로, 글로벌 금융위기(99.6%)와 외환위기(113.6%) 때를 웃돈다.

고금리는 수많은 기업과 사업자에게 이자 부담을 키우면서 경제를 더 나쁘게 할 것이다. ‘빚투’ ‘영끌’에 나선 개인들의 대출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는 빚으로 미국 주식을 사들인 ‘서학개미’도 적지 않다. 은행대출을 한껏 내 집을 사들인 20~30대도 많다. 18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대출 역시 우리 경제의 심각한 뇌관이다. 이미 장기간에 걸려 경제가 좋지 않은 터에 금리가 치솟으면 개인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제때 이자를 갚지 못하는 대출자가 늘어나면 은행 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은행의 대출 자산이 부실해지면 결국 공적 자금(혈세)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면 개인들의 소비 감소와 투자 위축 등 내수도 움츠러든다. 이래저래 경제가 악순환의 덫에 빠지게 된다. 미국과 금리 차가 2%P 벌어져도 우려할 정도의 자금 유출이 빚어진 것도 아니다. 부동산 PF 등에서 줄도산은 더 큰 손해로 이어진다. √ 생각하기 - 빚투·영끌 부작용 보며 실기 않는 게 중요…한은, 본연 역할 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불황에 고물가, 미국은 고금리…한은, 금리 올려야 하나
미국은 금리를 올릴 때도 화끈하게, 내릴 때도 충격적이라 할 만큼 확실하게 내린다.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을 한껏 존중하고 활용하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각자의 행동 역시 그에 맞춰 한다. 자연히 떼법, 정서법이라는 숫자로 밀어붙이는 집단주의적 탈법·초법적 요구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종종 포퓰리즘 정책이 보이고 선거 때는 과도한 대중 정서 살피기도 보이지만, 금융과 경제가 대개 예측 가능한 대로 움직이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결정하는 문제에서 얼마나 독립적·전문적이며 그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지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형식적 자율성이 전부는 아니다. 개인들의 빚투와 영끌 실상을 보면서 그런 부채가 더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특정 계층만 의식하기보다 전체 경제가 살아나게 하는 쪽으로 금리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