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 오영석 씨

보증서 없어도 표면촉감·글씨체 등으로
정품과 가품의 미묘한 차이 구분해내죠

한 건이라도 실수하면 치명타
새 제품 나올때마다 정·가품 비교

사람들 손목을 먼저 보는 습관 있어요
[직업의 세계] "짝퉁이요? 제 눈은 못 피합니다"
몇 해 전부터 2030세대 사이에서 명품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중고 명품 거래시장도 급속도로 확산됐다. 희귀 아이템의 경우 웃돈을 주고 살 만큼 중고 명품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가운데 정품·가품을 판별해내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는 고가 브랜드 시계의 정품·가품을 구별하는 직업이다. 십수 년간 시계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로 변신한 오영석 바이버 진단검수팀장을 만났다.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고객이 판매를 원하는 시계의 정품 여부부터 상태 등을 확인하는 직업입니다. 요즘엔 가품도 워낙 정교하게 출시되기 때문에 외관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확인해 가품을 가려내는 역할이죠.”

▷정품을 확인하는 절차가 따로 있나요.

“구성품과 보증서를 먼저 확인합니다. 보증서와 시계에 각인된 시리얼 넘버가 일치하는지, 해당 제품에 맞는 구성품인지 꼼꼼하게 확인하죠. 간혹 보증서가 없을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시계 외관만으로 정품·가품을 확인해야 해요. 소재부터 마감, 컬러 등 미묘한 차이를 육안과 촉감으로 판별하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이얼의 프린팅, 표면 상태, 글씨 간격, 글씨체, 내부 각인 등을 보고 파악할 수 있어요.”

▷요즘엔 가품도 워낙 정교하게 제작돼 구분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새로운 제품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정품·가품을 비교하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정품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품도 있고, 고객 입맛대로 바꾼 커스텀 제품도 있어요. 이를테면, 정품이긴 하나 수리나 튜닝 과정에서 제품 컬러를 바꾸거나 시계의 테두리 부분인 베젤을 바꾸기도 하는데, 그런 제품은 공식 서비스를 받지 못해요. 저희 매장에서도 정품으로 분류되기 어렵죠.”

▷정품·가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요.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정품을 많이 보고, 만져보는 게 중요해요. 소재의 촉감과 미세한 클릭 감도가 있거든요. 정품을 많이 느껴봐야 가품을 알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엔 가품을 사서 분해를 많이 해봤어요. 정품도 그렇지만 가품의 특징도 있거든요. 등급별로 구입해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나요.

“시계라는 아주 정밀한 기계를 감정하는 과정은 결국 경험과 시간의 영역입니다. 물론 시계 관련 학과 같은 정규 교육과정이나 전문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서도 전문가가 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시계 전문 회사에 입사해 경험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이러한 경험과 경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건 시계에 대한 관심이죠. 시계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니까요.”

▷입고된 제품을 정확히 감정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네요.

“그렇죠. 만약 감정을 했을 때 가품을 정품으로 판단하면 저뿐만 아니라 회사의 리스크도 크거든요. 그래서 늘 긴장 속에서 감정을 합니다. 목표 역시 오류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죠. 아직까진 단 한 건도 없습니다.(웃음)”

▷하루에 진단해야 할 제품은 대략 몇 건 정도 되나요.

“많을 땐 하루에 20~30개를 진단한 적도 있고, 적게는 4~5개 정도 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계속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요.

“요즘 억대 연봉을 기준으로 많이들 얘기하는데, 아직 억대엔 못 미치지만 수년 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론 지금의 업무 환경이나 연봉에도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웃음)”

▷직업의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시계라는 게 굉장히 마이크로한 제품이라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업무 환경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제 모토가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일하자는 건데, 그런 면에선 만족도가 큽니다. 예전 매장에서 일할 때보다 연봉도 높고 회사에서도 제 능력을 높이 평가해줘서 단점보단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굳이 단점을 꼽자면 실수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가품을 정품으로 판단하게 되면 치명적 오점을 남기는 거라 작은 실수도 용납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늘 스트레스를 안고 살죠.”

▷직업병도 있을 것 같아요.

“어딜 가나 사람들 손목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어요. 시계를 차고 있으면 어디 브랜드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언제 출시된 어떤 모델인지 혼자 머릿속으로 견적을 내곤 하죠.(웃음) 얼마 전엔 지하철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1억 원대의 시계를 차고 있는 걸 목격했어요. 그래서 왜 저 시계를 차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웃음)”

강홍민 한국경제매거진·한경잡앤조이 기자
강홍민 한국경제매거진·한경잡앤조이 기자
▷시계 감정 진단 전문가의 향후 비전은 어떤가요.

“희소성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앞으로 바이버와 같은 플랫폼 서비스가 많아질 것 같아요. 스마트워치가 처음 나왔을 때 기계식 시계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기계식 시계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있죠. 중고 시장에선 프리미엄이 붙어 고가에 판매되는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중고 명품 시계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