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신(新)관치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 예금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 혹은 ‘압력’을 가하면서 비롯됐다. 두 기관은 예금 금리를 올리면 저축예금으로 시중의 자금이 몰리게 되면서 돈이 절실한 곳으로 흐르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 같은 부작용이 빚어진다고 판단해 이에 대한 대책을 편 셈이다. 하지만 예금자들은 한국은행이 힘겹게 금리를 올리는 판에 예금금리 인상을 인위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구태의연한 관치금융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금융감독당국은 각 금융그룹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모으고 사고가 터지면 회장까지 징계하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금융감독기관의 은행 이자 개입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찬성] 급등 예금 금리, 가계부담 늘리는 악순환 '돈맥경화' 막기 위한 고육책코로나 충격이 조금 가시면서 시작된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여러 가지 복합 원인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이상, 에너지·식량 가격의 급등 같은 요인은 한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이고 어떻게 대처하기도 어려운 해외 요인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인플레이션 대처로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한국은행은 울며 기준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이 심각하지만 환율 유지, 자본이탈 방지, 고물가 대처 같은 큰 문제를 막기 위해 사실상 선택의 여지도 없이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금리를 올리자 바로 파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게 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대출 금리 자체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과 저축은행의 고금리 상품 예금이 늘어나자 대출 이자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가 오르고, 이게 다시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다. ‘영끌’ ‘빚투’족을 비롯해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은 심각한 지경이어서 대출 이자 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를 재촉할 조짐도 있다. 10월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한 달 새 56조원 이상 늘었다. 카드 대금을 뺀 가계대출금만 1757조원(9월 말)에 달해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씩 늘어난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또 돈이 정기예금 등으로 쏠리면 당장 산업계의 자금 조달 길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도 심해진다.
금융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은행 채권 발행을 억제하고 예금 금리 올리기를 막는 것 모두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금융권의 비생산적인 자금 확보 경쟁을 막자는 취지도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반대] 거친 시장 개입으로 예금생활자 손해 '자유와 시장경제' 외치며 거꾸로 가금융만이 아니라 경제·산업 다부문의 복합적 위기를 맞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적절한 시장 관리와 리더십은 필요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이른 상황에서 은행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용인할 만하다. 시중 자금이 안전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해 ‘균형과 자제’를 당부하는 것에 공감되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의 이익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민감한 금융시장에 투박하고 과도하게 개입하고, 은행 등 금융회사의 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개별 금융사 인사에 관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런 게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다.
감독당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연 5%대의 예금 상품이 불과 한 주 새 자취를 감추면서 4%대로 떨어진 것은 금융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다. 저축은행에서는 오르는 금리와 반대로 1주일 새 0.5%포인트까지 떨어진 경우도 있다. 은행의 예금 유치, 자금 확보 경쟁에 개입하면서 감독당국 스스로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격이다. 예금 금리가 떨어지면 은퇴 퇴직자 등 고령층과 예금에 기대는 금리 생활자들에겐 바로 타격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노골적 관치금융이 나타난다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이나 언급한 ‘자유’와 자율은 정부의 주요 국정철학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커지는 관치 논란은 국정철학이 행정 일선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사 팔을 비트는 식의 직접적 개입·간섭을 지양해야 한다. 시장에 메시지를 주려면 좀 더 자연스럽게 금융회사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면서 시장 친화적으로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생긴다고 보이는 곳만 땜질하고 원칙도 없이 오락가락 대책을 남발하면 금융시장에서 ‘정책 내성’만 키울 수 있다. √ 생각하기 - 금융은 민감, 규제요인부터 점검해야…보신주의 금융사들, 관치 자초한 측면도 금융시장은 매우 민감한 곳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자 부담 문제뿐만 아니라 돈맥경화 현상이 우려된다면 금융의 흐름을 막는 다른 요인이 없는지 살피는 게 먼저다. 가령 규제 법규에 대한 재점검이다. 금리 상승기의 금융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만, 좀 더 정교한 정책이 아쉽다. 관치 논란은 자율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눈치보기식 ‘보신주의’에 빠진 금융권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금리 급등으로 어려워진 서민경제는 외면한 채 손쉬운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 파티’를 벌이고, 금융시장의 돈맥경화 와중에도 예금 유치 이벤트에나 적극 나서는 행태로 인해 정부의 간섭과 외풍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자금을 공급·조절하는 금융의 고유 역할을 살리고, 자기 책임을 강화해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관치의 악습을 끊을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금리를 올리자 바로 파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게 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대출 금리 자체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과 저축은행의 고금리 상품 예금이 늘어나자 대출 이자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가 오르고, 이게 다시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다. ‘영끌’ ‘빚투’족을 비롯해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은 심각한 지경이어서 대출 이자 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를 재촉할 조짐도 있다. 10월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한 달 새 56조원 이상 늘었다. 카드 대금을 뺀 가계대출금만 1757조원(9월 말)에 달해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씩 늘어난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또 돈이 정기예금 등으로 쏠리면 당장 산업계의 자금 조달 길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도 심해진다.
금융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은행 채권 발행을 억제하고 예금 금리 올리기를 막는 것 모두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금융권의 비생산적인 자금 확보 경쟁을 막자는 취지도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반대] 거친 시장 개입으로 예금생활자 손해 '자유와 시장경제' 외치며 거꾸로 가금융만이 아니라 경제·산업 다부문의 복합적 위기를 맞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적절한 시장 관리와 리더십은 필요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이른 상황에서 은행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용인할 만하다. 시중 자금이 안전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해 ‘균형과 자제’를 당부하는 것에 공감되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의 이익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민감한 금융시장에 투박하고 과도하게 개입하고, 은행 등 금융회사의 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개별 금융사 인사에 관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런 게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다.
감독당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연 5%대의 예금 상품이 불과 한 주 새 자취를 감추면서 4%대로 떨어진 것은 금융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다. 저축은행에서는 오르는 금리와 반대로 1주일 새 0.5%포인트까지 떨어진 경우도 있다. 은행의 예금 유치, 자금 확보 경쟁에 개입하면서 감독당국 스스로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격이다. 예금 금리가 떨어지면 은퇴 퇴직자 등 고령층과 예금에 기대는 금리 생활자들에겐 바로 타격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노골적 관치금융이 나타난다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이나 언급한 ‘자유’와 자율은 정부의 주요 국정철학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커지는 관치 논란은 국정철학이 행정 일선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사 팔을 비트는 식의 직접적 개입·간섭을 지양해야 한다. 시장에 메시지를 주려면 좀 더 자연스럽게 금융회사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면서 시장 친화적으로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생긴다고 보이는 곳만 땜질하고 원칙도 없이 오락가락 대책을 남발하면 금융시장에서 ‘정책 내성’만 키울 수 있다. √ 생각하기 - 금융은 민감, 규제요인부터 점검해야…보신주의 금융사들, 관치 자초한 측면도 금융시장은 매우 민감한 곳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자 부담 문제뿐만 아니라 돈맥경화 현상이 우려된다면 금융의 흐름을 막는 다른 요인이 없는지 살피는 게 먼저다. 가령 규제 법규에 대한 재점검이다. 금리 상승기의 금융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만, 좀 더 정교한 정책이 아쉽다. 관치 논란은 자율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눈치보기식 ‘보신주의’에 빠진 금융권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금리 급등으로 어려워진 서민경제는 외면한 채 손쉬운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 파티’를 벌이고, 금융시장의 돈맥경화 와중에도 예금 유치 이벤트에나 적극 나서는 행태로 인해 정부의 간섭과 외풍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자금을 공급·조절하는 금융의 고유 역할을 살리고, 자기 책임을 강화해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관치의 악습을 끊을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