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경제대공황의 원인
1929년 미국 대공황 당시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인파들 모습. /한경DB
1929년 미국 대공황 당시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인파들 모습. /한경DB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은?’과 같은 질문에 답하기 힘든 것은 아마도 인류사를 뒤흔든 대사건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꼽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29년 세계 경제대공황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설명이 엇갈린다.

경기불황이 그처럼 광범위하고 장기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은 실물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화폐 요인 때문인지를 놓고 대립했다. 기원이 미국에 있는지 유럽에 있는지를 놓고도 논박을 거듭했다. 1920년대 기술 발전에 따른 대량생산 체제 도입과 대규모 실업 간 상관관계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글로벌 경제가 동시에 대혼돈에 빠지게 된 치명적 약점이 국제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에 있는지, 단순히 운영상 실수였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대공황의 원인을 짚은 경제학자들의 면면만 봐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급 거장들의 집합소라 할 만하다. 미국 금융정책 원인설(밀턴 프리드먼), 금본위제 오용설(라이어널 로빈스), 디플레이션 실책설(존 메이너드 케인스), 장기 정체설(앨빈 한센), 구조적 불균형설(잉바르 스베닐손) 등 ‘한가락’ 한다는 경제학자들은 한마디씩 경제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설명은 찰스 P 킨들버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주장이다. 킨들버거 교수는 경제대공황 발생 당시 글로벌 지도력 부재를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1929년 불황이 그처럼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장기적이었던 이유로 국제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불안정의 배경에는 글로벌 정치 리더십의 상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제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책무와 관련해 영국은 능력을 상실했고, 미국은 그 같은 책무를 맡을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29년 대공황 이전에 발생한 여러 경기불황의 충격은 큰 타격 없이 흡수됐다. 1920년 주식시장 붕괴나 1927년 경기 후퇴의 충격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1927년 미국의 금리 인하 충격이나 1928년 독일에 대한 대부 정지 충격 등이 1929년 주식시장 붕괴에 비해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이처럼 1929년 이전의 충격이 어느 정도 수습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글로벌 최강국이던 영국이 지도력을 발휘해 불안한 세계경제 시스템을 어느 정도 안정시켜줬기 때문이라는 게 킨들버거 교수의 판단이다.

하지만 1929년 이후 쇠퇴한 영국은 세계경제를 안정시킬 능력을 상실했고,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신감을 갖추지 못한 데다 경험도 일천한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 대선을 앞둔 미국의 어수선한 정치 일정도 글로벌 리더십 부재에 한몫했다. 금본위제 복귀 및 국제공조 강화를 골자로 하는 국제연맹 제안을 다루기 위한 세계경제회의가 당초 1932년 열릴 예정이었지만, 미국 대선 일정과 후버 및 루스벨트 두 대선 후보의 미온적 태도로 1933년으로 연기됐다.

이보다 앞선 시기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 각국은 공조는커녕 저마다 따로 노는 모습을 보였다. 근본적으로 ‘세계경제의 엔진’ 미국의 생산력이 떨어진 시점에 선진국들은 과도한 긴축정책을 고수했다.

1920년대 미국은 증권 투기 억제 등을 목표로 긴축정책을 고수했고, 프랑스는 법적·정치적 요인 때문에 긴축을 단행했다. 미국, 프랑스 같은 흑자국이 긴축을 하면서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호주, 캐나다, 폴란드 등 적자국은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타격을 입었다. 이들 국가가 연쇄 침체에 빠지면서 미국의 수출시장이 약화되고, 여기에 주식시장 붕괴라는 심리적 우려가 더해지면서 공황으로 사태가 커지게 됐다.

이처럼 위기가 심화되면서 모든 나라는 자국의 개별적인 국익만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영국은 1933년 세계경제회의를 기점으로 영연방 내부에 ‘스털링 블록’을 쌓고 파운드화 세계 안에만 안주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은 ‘금블록’에 안주했다. 또 나치 독일은 독일대로 독자 생존을 외치며 유럽은 자기만의 ‘요새’를 구축하며 각자 살길을 찾았다. 동유럽과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조를 포기한 채 위기 탈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각국의 개별적 이익도 사라졌다”는 게 킨들버거 교수가 전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NIE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경제공황 발생에 관한 다양한 학설을 정리해보자.

2. 경제공황은 어떤 정책들을 통해 극복되었을까.

3. 1920년대 초 경제선진국들이 긴축정책을 펼친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