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1920년대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에서 가치가 하락한 지폐 더미를 불사르기 위해 모아놓은 장면.
1920년대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에서 가치가 하락한 지폐 더미를 불사르기 위해 모아놓은 장면.
역사적으로 독일은 돈이 휴지 조각이 돼버리는 것을 경험한 나라다. 그 여파로 유럽 재정위기가 몇 년째 계속되지만 독일은 여전히 물가 상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돈 풀기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 마르크화 가치는 영국 파운드나 프랑스 프랑, 이탈리아 리라화에 비해 매우 안정돼 있었다. 하지만 패전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패전에 따른 전쟁배상금 지급을 위해 대규모 재정적자가 불가피했고, 정부가 세금을 크게 올릴 것이라는 예상으로 민간자본의 해외 도피가 발생하면서 화폐가치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1파운드는 20마르크 선에서 교환됐지만 1918년 12월 파운드당 43마르크로 화폐가치가 추락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엔 파운드당 60마르크가 됐고, 그해 겨울엔 파운드당 185마르크까지 폭락했다. 이어 1923년 파운드나 프랑, 리라와 마르크화를 교환하기 위해선 외국 통화당 무려 1조 마르크가 필요했다. 전국의 133개 인쇄소에서 1783기의 인쇄기가 밤낮으로 돈을 찍어댔지만 필요한 물건을 사기에 돈은 언제나 모자랐다.

당시 달러 대비로 마르크화 가치 추이를 복기하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이마르공화국의 화폐인 파피어마르크가 종이(파피어)라는 이름처럼 휴지 조각이 돼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달러당 4.2마르크였던 마르크화 가치는 전쟁 이후 달러당 8.9마르크로 떨어졌고, 1920년 달러당 14마르크가 됐다. 불과 1년 뒤에는 달러당 64.8마르크로 하락한 뒤 1922년엔 달러당 191.8마르크로 추락했다. 1923년에는 ‘천문학’에서 쓰일 법한 단위들이 동원된다. 1923년 1월 7260마르크에서 4월 2만 마르크, 6월 35만3412마르크를 거쳐 8월 초 100만 마르크로 주저앉았다. 9월에는 달러당 1000만 마르크까지 떨어졌다. 10월 중순 달러당 10억 마르크를 돌파한 환율은 12월 15일에는 달러당 42억 마르크까지 폭락했다.

1923년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이 인플레이션의 고통에 빠졌지만 독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 기간 영국의 물가 상승률이 159%, 프랑스가 411%, 이탈리아가 582%, 미국 157%로 ‘살인적인 수준’이었지만 76만5000%의 물가 상승률을 보였던 독일은 비교를 불허했다.

마르크화의 급속한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품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1918년 107이던 물가지수는 배상금 지불이 시작된 1921년부터 빠르게 올라, 1923년에는 820만까지 치솟았다. 싸구려 옷에 5000만 마르크짜리 가격표가 붙었고, 편지 한 통을 부치는 데는 1890년대 달렘 지역 빌라 한 채값에 해당했던 돈이 필요했다.

사실상 화폐가 교환 기능을 상실하면서 독일 경제는 물물교환 상태로 돌아갔다. 담배나 보석, 예술품들이 빵을 사는 데 쓰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고, 사랑하는 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결국 1923년 말 종래의 통화 단위인 파피어마르크의 1조 배에 해당하는 렌텐마르크를 도입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렌텐마르크는 대공황 이후 다시 라이히스마르크로 대체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도 비슷했다. 전쟁이 끝났던 1945년의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마쳤던 1918년과 매우 유사했다. 1947년 잠시 경기가 좋아지는 듯했지만 곧 중동부 유럽지역은 인플레이션과 스태그네이션, 지역 궁핍화로 고통받았다. 자본은 급속도로 고갈됐고, 국가 운영은 미국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내 연합군 주둔지에서 종전 전에 발행됐던 독일의 라이히스마르크와 달러의 명목상 교환 비율은 1 대 10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미군들이 커피나 담배 같은 물품들을 암시장에 내다 팔면서 100~150%의 이익을 챙겼다. 이에 따라 라이히스마르크의 가치는 정말로 ‘똥값’이 됐다. 라이히스마르크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고 미군에서 흘러나온 담배가 교환의 확고부동한 표준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시장에선 담배가 가치의 척도가 돼버렸고 물건 가격은 담배 몇 갑이냐, 몇 상자냐는 식으로 불렸다.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독일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은?

2. 하이퍼 인플레인션이 발생하면 개인의 각종 자산가치는 어떻게 변할까.

3. 독일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어떻게 대처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