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한치 앞 못 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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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경제는 장밋빛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체제로 운영되던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내수 소비가 급증했다. 1920년대 미국 공업생산은 약 90% 증가했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같은 내구 소비재 소비가 늘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난 반면 물가는 안정됐다.

1920년대에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는 범용제품이 됐다. 1914년 자동차 생산은 126만 대 수준이었지만 1929년이 되자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560만 대를 생산해냈다. 1927년 포드자동차의 히트 모델 ‘모델T’는 1500만 대나 판매된 뒤 단종됐다. 1918년 30만 대의 자동차가 등록됐던 캐나다에선 1929년까지 190만 대의 자동차가 보급됐다. 자동차산업은 철강, 고속도로, 모텔, 중고차 시장 등 다양한 2차시장을 창출했다. 정유, 유리, 철강, 고무산업은 덩달아 발전했다. 1925~1929년 미국의 제조업체 수는 18만3877개에서 20만6663개로 늘었다. 이들 업체의 생산액은 약 6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커졌다.

이 시기 라디오도 보급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라디오를 가진 가정은 흔치 않았지만 1929년에는 미국 내에서 1000만 가구 이상이 라디오를 보유했다. 유성영화는 무성영화를 대체했다. 화학산업도 정점을 이뤘다. 대형 백화점들은 지점을 계속 늘렸고, 통신판매 같은 새로운 유통 방법이 개발됐다. 개인 소득 증가에 따라 당시 하이테크 전자산업이던 냉장고와 세탁기 등 전자제품 소비도 급증했다. 백화점의 고가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월가는 1923년 발생한 순간적인 조정기를 빼곤 1922~1929년까지 초호황을 누렸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전비 마련을 위해 공모한 ‘자유채권’에 참여해 짭짤한 재미를 봤던 투자자들은 금융의 맛을 알았다. 그들은 다음 수순으로 증권 투자에 열을 올렸다. 증권시장에 몰려든 투자자들은 차입(빚) 투자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전화 사용률은 기록적으로 증가했고, 사람들이 자주 전화를 거는 곳에는 주식중개소가 있었다. 덕분에 증시도 급성장했다. 다우존스지수는 1920년대 연평균 25%의 상승세를 보였다. 뉴욕증시는 1920년대 초 주당 평균 가격이 70달러 선이었지만 1929년 대공황 직전에는 250달러에 육박했다. 미국 경제가 50% 성장하는 동안 다우존스지수는 4배 이상 치솟았다. 신종 사업에 돈이 쏠려 승객을 한 명도 수송해본 실적이 없는 린드버그 항공사가 주식 공모로 엄청난 선풍을 일으키자 월가에는 하루아침에 항공 테마주가 형성되기도 했다.

미국 증시가 끝없이 오르면서 유럽 등지에서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한 자금과 금이 계속 유입됐다. 남아메리카와 쿠바에서도 투자자들이 뉴욕으로 몰렸다. 1929년 9월 3일 다우존스지수는 381.17을 기록했는데 이는 이후 25년간 비교 불가능한 최고치 기록으로 남았다.

미래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 속에 소비자들은 차입을 늘렸고, 기업은 투자를 확대했다.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제 환경이 왔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부동산 투기도 기승을 부렸다. 따뜻한 플로리다가 추운 뉴욕보다 겨울을 보내기 좋을 것이란 기대로 ‘플로리다 토지 붐’이 일었다. 바다에서 10~15마일 떨어져 있는 토지들도 약간의 ‘상상력’이 동원돼 해변에 있는 것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10% 계약금을 걸어놓고 두 배 이상의 차익을 얻으려고 했다.

이때의 낙관적인 경기 전망이 투영된 집합체가 오늘날 뉴욕의 상징이 된 102층짜리 초고층 건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다. 이 빌딩의 설계에는 1920년대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낙관적 전망이 그대로 투사됐다. 하지만 1930년 1월 22일 첫 삽을 뜬 이 빌딩이 1931년 5월 1일 개관을 했을 때는 모든 환경이 달라져 있었다. 빌딩이 완공돼 문을 열었을 때는 대공황이 한참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대공황 직후 완공된 탓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한동안 높은 공실률이란 고난을 피하지 못했다. 높은 공실률은 1950년까지 이어졌다. 첫선을 보일 당시부터 기구한 운명을 겪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NIE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1920년대 미국이 경제호황을 맞은 이유는 뭘까.

2. 당시 어떤 산업들이 발전했는지 확인해보자.

3. 미국에 대공황이 찾아온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