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2차 산업혁명과 독일의 부상(上)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철강·전기·화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뤄진 ‘2차 산업혁명’은 독일이 주도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독일 산업의 발전상은 놀라웠다.프로이센이 유럽의 주요 경쟁국들보다 빠르게 성장하게 된 것은 1850~1860년대 이후의 일이다. 1830년대만 해도 프랑스의 국민총생산(GNP)은 1960년 미국 달러로 환산할 때 86억달러로 프로이센(72억달러)을 앞섰지만, 1880년이 되면 프랑스 174억달러, 프로이센 200억달러로 역전된다. 1913년이 되면 프로이센의 GNP는 498억달러로 프랑스(274억달러)의 두 배 규모가 된다. 유럽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30년에는 프랑스가 21%로 프로이센(5%)의 네 배를 넘었지만 1880년이 되면 프로이센은 20%로 프랑스(13%)를 크게 앞선다. 1913년엔 프로이센이 40%로 프랑스(12%)의 네 배 수준이 돼 처지가 180도 바뀐다. 1860년 비등했던 에너지 소비량도 1913년이 되면 프로이센이 프랑스의 세 배에 달한다.
산업별로 살펴봐도 독일의 성장은 가파르다. 19세기 초 프로이센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5만t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 아니라 합스부르크제국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산업지형도는 급격히 변화한다.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이 통일된 이후 독일의 철강 생산량은 1890년대만 해도 연간 410만t으로 영국(800만t)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00년이 되면 630만t으로 영국(500만t)을 추월하게 된다. 1910년대가 되면 독일(1360만t)이 오히려 영국(650만t)의 두 배를 넘는 철을 생산하게 된다.
전기, 광학, 화학 같은 20세기적 산업 분야를 개척한 것도 독일이었다. 대표적 전기 관련 기업인 지멘스와 AEG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총 14만2000명을 고용했다. 전기산업 종사자는 1890년 1만7000명에서 1900년 6만6000명으로 순식간에 급증했다. 1913년에는 종사자 수가 20만 명에 달했다. 1913년 독일의 전기 관련 상품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화학 분야에선 1913년 바이엘과 획스트, BASF 등 독일 8개 화학회사가 세계 공업용 염료의 90%를 생산했고, 생산 제품의 80%가량을 수출했다. 세계 합성연료 생산량 16만t 가운데 14만t을 독일 회사들이 만들어냈다. 같은 해 세계 화학제품 생산의 24%가 독일 몫이었다.
독일의 수출 역시 1890년과 1913년 사이에 세 배나 증가하면서 영국에 육박하는 세계적인 수출주도국이 됐다. 그 결과 제1차 대전 직전 세계 제조업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14.8%로 영국(13.6%)보다 컸고, 프랑스(6.1%)의 2.5배나 됐다.
독일 경제의 급부상으로 독일어의 위상도 높아졌다. 과거 라틴어나 불어가 했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공용어)’ 역할을 19세기 독일어가 학문 분야에서 이뤘다. 물리학과 화학, 광학, 지질학, 지리학, 생물학, 법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 등에서 독일어는 오늘날의 영어와 같은 지위를 차지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 세계 생물학 관련 학술지에 등장한 논문의 3분의 1이 독일어로 쓰였다. 1940년대까지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독일어를 읽지 못하면 최신 학문 동향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1875년 미국에서 존스홉킨스대학이 창설됐는데 초대 총장 대니얼 길먼은 이 대학을 연구 중심의 대학원 대학으로 만들면서 독일 대학의 실험 및 세미나 수업 방법을 도입했다. 존스홉킨스대의 모델은 즉시 다른 대학에 영향을 미쳐 클라크대와 시카고대가 이를 본받았다. 곧이어 하버드대의 엘리어트 총장도 길먼의 뒤를 따랐다. 1800년대 1만여 명의 미국인이 독일에서 공부했고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 명문대학 교수진은 대부분 독일 유학파로 채워지게 된다. NIE 포인트 1. 독일이 주도한 ‘2차 산업혁명’의 내용을 알아보자.
2. 독일어와 독일 학문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유는 뭘까.
3.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유럽의 경제 지형은 어떻게 변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