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올해 대규모 굶주림 사태가 다수 발생할 위험이 있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다면 3억 명이 기아에 직면할 수 있다.”(윤선희 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
“식량 문제 때문에 세계 빈곤율이 높아지고, 독재 정권이 더 억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베아타 야보르칙 유럽부흥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하루 세끼 먹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식량 부족과 굶주림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식량 문제가 최근 빠르게 악화한 이유는 세 가지 악재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둘째는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인한 흉작, 셋째는 곡물 보호주의에 의한 공급망 위기입니다.
첫째 이유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밀 공급망을 단번에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 1위 나라고 우크라이나는 2위입니다. 두 나라의 밀 수출량은 세계 전체 수출 물량의 3분의 1이나 된답니다. 이런 두 나라가 지난 2월부터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밀 수출이 제대로 될 리 없는 거지요. 우크라이나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남부 항구를 통해 밀을 수출해왔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곳을 점령한 뒤 수출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전쟁 중 농사조차 짓기 어려워져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농사는 물 건너갔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씨앗만 뿌리면 밀이 쑥쑥 자랄 만큼 비옥한 토지를 자랑하는 나라인데 말이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역시 밀 수출을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수출길을 막았답니다. 식량 보호주의 극성밀 시장이 얼어붙자 밀 생산 1위인 중국과 2위인 인도가 지난 5월 수출 금지 조처를 했습니다. 밀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국민을 위해 물량을 확보해놓자는 거지요. 식량 보호주의가 등장한 겁니다. 인도와 중국 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백을 메워줄 대안으로 여겨졌으나 보호주의 아래에선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보호주의는 다른 곡물로 전염됐습니다. 이집트 역시 밀과 콩 등 주요 곡물 수출을, 인도네시아는 식물성 기름인 팜유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터키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이란 파키스탄 등도 농산물 수출 금지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이런저런 이유로 식량과 관련한 수출 금지 조치를 한 국가는 27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콩과 옥수수 작황도 좋지 않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콩 생산 1위인 브라질과 2위인 미국에 불어닥친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콩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옥수수도 마찬가지 신세라고 합니다. 세계 최대 생산국 미국의 중북부 가뭄으로 생산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애그플레이션 고통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필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반 물가까지 다 오르는 게 애그플레이션인데요. AFP통신에 따르면 유로넥스트 시장에서 밀 가격은 최근 t당 438.25유로로 마감돼 지난 3월 7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 422.40유로를 깼습니다. 수출 1, 2위 국가와 생산 1, 2위 국가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데 밀 가격이 안 오르는 게 이상한 거지요. 콩값 역시 최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부셸(25.4㎏)당 17.69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최악의 가뭄으로 사상 최고가까지 치솟았던 2012년 9월 가격(17.71달러)에 근접했습니다.
밀, 콩, 옥수수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의 급등은 필연적으로 다른 물가를 끌어올립니다. 밀을 사용하는 빵, 콩으로 만드는 식용유, 옥수수를 이용하는 가축 사료 가격을 자극하고 이것들은 다시 수많은 제품 비용을 올리고, 결국 노동자 임금까지 인상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단기적으로 가격이 급등락하는 곡물 등 농산물과 석유를 제외하고 물가를 계산하는 근원인플레이션(core inflation)만으로 보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지금 단계에선 식량 대란이 매우 걱정스럽긴 합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