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경력... 김현아 KBS1 라디오 작가캐나다 출신 발명가 레지널드 페센든은 1906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자신이 개발한 발전기와 마이크를 이용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부른 노래를 대서양으로 무선 송출했다. 대서양에 떠 있는 선박의 무선 전신원들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을 듣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라디오의 시초다. 이후 라디오는 인류의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TV가 나오고, 인터넷이 나왔지만 나지막하게 흘러나와 우리 귀를 간지럽히는 라디오 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없어선 안 되는 직업, 라디오 작가를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에서 만나봤다. 단 몇 마디의 오프닝 멘트로 청취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김현아 라디오 작가(50)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세월이 지나도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라디오 작가의 역할을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라디오 작가는 출연자를 섭외하고 대본을 쓰는 일을 해요. 프로그램 시간과 콘셉트에 따라 기획을 하고, 대본을 작성하고, 패널을 섭외해요. 보통 메인 작가가 오프닝부터 코너 운영까지 업무 분장을 하죠.”
▶한 프로그램에는 몇 명의 작가가 필요한가요.
“메인 작가 혼자서 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2~3명이 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3명이 있으면 메인-서브-막내 작가로 구성되죠. 메인 작가가 모두 다 관여하기도 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코너를 나눠 맡기기도 해요. 프로그램마다 다 다른 게 라디오 작가의 세계죠.(웃음)”
▶작가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뤄지겠네요. 특히 생방송이 많으니 규율도 강할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그랬죠. 물론 개인 또는 팀에 따라 지금도 그런 곳이 있고요. 서브나 막내 작가들은 어떤 아이템을 구상하는지 메인 작가에게 승인을 받아야 해요. 선배를 설득하는 과정이죠. 그 코너에 어떤 출연자를 섭외할지, 어떻게 구성할지가 중요해요. 일을 잘하는 작가들이야 믿고 맡기는데, 그게 안 되면 옆에 끼고 가르쳐야죠.(웃음)”
▶작가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되나요.
“일반적으로 메인, 서브, 막내 작가로 구분됩니다. 막내 작가로 시작해 서브, 메인으로 올라가죠. 프로그램마다 다른데 같은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에도 작가가 한 명 있을 수도 있고, 메인과 서브 작가 두 명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일반 회사처럼 몇 년 일하면 승진이 되는 건 아니고 일을 잘하면 막내에서 바로 서브로 올라갈 수도 있어요.” ▶작가가 많은 곳과 적은 곳의 차이는 뭔가요.
“급여의 차이겠죠.(웃음) 프로그램 제작 예산은 늘 정해져 있잖아요. 작가에게 주어질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PD의 역할이죠. 혼자서 하면 일은 많겠지만 아무래도 페이는 조금 높을테고, 인원이 많으면 그 반대겠죠.”1996년 TV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입문... 2002년 라디오 작가로 전향▶라디오에선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단 몇 줄로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매일 새로운 멘트를 써야 하는 부담이 클 것 같아요.
“매일 오프닝 멘트 소재를 찾아야 해요. 날씨 얘기나 유명인의 얘기도 매일 쓸 순 없어서 어떤 소재를 찾을까 늘 고민이죠. 저는 다음날 오프닝을 정해 놓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자는 성격이라 평소에 책에서 본 좋은 글귀는 그때그때 다이어리에 옮겨놓는 편이에요.”
▶오프닝 멘트가 잘 된 날에는 청취자들의 반응도 다른가요.
“가끔 ‘오프닝 너무 좋아요’라고 문자가 올 때도 있어요. 꼭 오프닝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상식을 배워요’라는 청취자 문자가 힘이 되곤 하죠. 요즘 시사 프로그램은 오프닝이 없어지는 추세예요. 기자나 전문가가 진행을 맡기 때문에 본인이 쓰든지 아니면 그 날의 코너를 요약해 소개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죠.”
▶라디오 작가를 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작가를 시작한 건 1996년부터였어요. TV 시사 프로그램 작가가 시작이었죠. 주로 탐사보도를 많이 했는데, 카메라를 숨기고 잠입 취재를 밥 먹듯 했어요. 그러다 2002년 라디오로 전향했어요.” ▶TV에서 라디오로 옮긴 계기가 있었나요.
“남편이 KBS PD인데, 남편의 동료와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라디오를 시작하게 됐어요.(웃음) 사실 탐사보도가 제 적성엔 맞았어요.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돼 있지 않던 시절이라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죠. 성매매 현장이나 짝퉁시장 같은 곳을 카메라 하나 들고 취재하면서 가슴 뛰는 경험을 했죠.”
▶그동안 맡았던 프로그램은요.
“딱히 이유는 없지만 거의 KBS1 라디오만 했었어요. 라디오24, 뉴스와이드, 정관용의 지금 이사람, 김태훈의 프리웨이, 김기자의 눈 등을 했었죠. 지금은 ‘라디오 전국일주’를 하고 있어요.”
▶시사 프로그램을 오래 하셨어요. 시사 프로의 특징이 있다면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질문을 던지는 방송이라고 생각해요.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고요.”"청취자가 궁금해 할 질문 대신 던져주는 직업... 글쓰기, 아이템 발굴, 전문가 섭외 능력 필요"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는 건 곧 어떤 아이템으로 청취자들에게 접근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언제나 청취자가 뭘 궁금해 할 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작가의 일이에요. 사회 이슈나 시기에 따라 제기되는 이슈들이 있잖아요. 비슷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른 방송과 차별성을 두면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거죠. 예를 들어 코로나19나 오미크론에 관해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방송은 아주 많아요. 그 중에서 어떤 질문이 청취자들이 궁금해 하는 포인트일지를 고민하고 방송을 만드는 거죠.” ▶그런 면에선 라디오 작가는 청취자를 대신해 질문을 만들고 던지는 직업이군요.
“그렇죠. 인터뷰도 마찬가지예요. 청취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과 인터뷰이가 가진 정보를 빠짐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틀을 만들어 줘야 하죠. 그래서 코너 구성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10개의 질문이 있다고 한다면 질문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1번의 질문은 2번을 위해, 2번은 3번을 위해 존재하는 질문을 만들어요. 질문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면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방송을 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요.
“아이템만큼이나 어떤 출연자를 섭외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어도 출연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획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에요. 간혹 전문가로 방송에 나오는 분들 중에 확실한 콘텐츠가 없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제가 만드는 방송에는 못 나오죠. 콘텐츠로 똘똘 뭉쳐있는 분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아이템과 출연자는 함께 가야 하는군요.
“그렇죠. 아이템을 먼저 생각하고 출연자를 찾을 수도 있지만 좋은 전문가를 보면 아이템이 떠오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신인 발굴도 작가들이 많이 합니다. 방송 경험이 없는 분을 섭외해 어떻게 보면 데뷔를 시키는 건데요. 그런 분들이 꾸준히 방송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 좋죠.”
▶숨겨져 있는 방송인을 발굴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군요.
“맞아요. 저는 능력이 있는 분들을 보면 그 사람이 방송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편이에요. 제가 만드는 방송 외에도 이 사람이 잘 어울릴 만한 방송으로 연결시켜 주는 거죠. 오지랖이 좀 넓어요.(웃음)”
▶방송을 잘한다는 기준은 뭔가요.
“우선 콘텐츠가 있어야겠죠. 방송에 적합한지도 중요하고요. 작가들은 입을 떼는 순간 이 사람이 방송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어요.(웃음)” ▶라디오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궁금해 할 부분인데요. 작가가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나요.
“우선 글은 좀 써야겠죠. 음악 프로그램 작가는 감성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시사는 통찰력이 있는 글과 구성력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책도 많이 읽고, 사회 문제에 관심도 가져야 해요. 검색을 잘하는 것도 작가의 조건이에요. 어떤 주제라도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지를 파악해 정보를 습득하는 거죠. 하나 더 꼽자면, 섭외도 잘 해야 합니다. 라디오는 매일 방송하기 때문에 그만큼 섭외 대상이 많죠. 출연자의 연락처 섭외부터 방송에 꼭 필요한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도 작가의 능력에서부터 시작되죠.”
▶음악 프로그램과 시사 프로그램을 병행할 수도 있나요.
“장르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저도 음악 쪽은 잘 몰라요. 주변에서는 작가가 음악을 모르냐고 신기해 하죠.(웃음)”
▶작가들의 연봉은 어떻게 되나요.
“방송사마다 달라요. 보통 주급으로 받는데, 월급으로 받는 곳도 있어요. 작가들의 페이는 구성료예요. 예를 들어 한 시간짜리 방송을 하면 앞뒤 광고를 뺀 시간이 40분 정도 돼요. 그럼 그 시간에 대한 구성료를 받는 거죠. 시간이 늘어나면 써야 할 원고가 늘어나기 때문에 비용도 자연히 늘어나고요. 일주일에 책정된 작가 페이가 100만원이면 그 안에서 나눠 책정하게 됩니다.” ▶작가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몇 년 전 새벽 5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지구의 날이라 슈퍼 태풍에 관한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그 분이 펑크를 낸 거예요. 지방 출장을 갔다가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도저히 연결하기 어려운 상태였죠. 방송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그때 문득 방송을 안 하기로 유명한 기자가 있었어요. 그 분야엔 전문가인데 방송은 안 하는 분이었죠. 다른 방법이 없어 새벽에 전화를 드려 상황 설명을 했더니 ‘제가 할게요’ 하시더군요. 그날 방송도 아주 잘 나왔어요. 아직 얼굴을 뵙진 못했지만 그날의 감사함은 잊지 않고 있어요.”유튜브 기획, 제작 요청... 정치권에서도 '러브콜' "작가의 창작 활동, 인공지능이 대체 못할 것"▶요즘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로 인해 라디오를 듣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라디오 작가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작가는 프리랜서잖아요. 라디오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저에게도 대학병원이나 기관에서 팟캐스트, 유튜브를 기획·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요즘엔 정치인들이 라디오 시사 작가를 선호하는 분위기예요. 연설문을 쓴다거나 페이스북 등 SNS 관리를 맡을 수 있는 보좌관으로 채용하기도 하죠. 개인적으론 제 이야기로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브런치에 제 얘기를 연재했는데, 영화사에서 그걸 보고 연락이 왔어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요. 아이 다섯인 엄마이자 라디오 작가의 이야기예요.(웃음)”
▶최근엔 AI(인공지능)나 로봇이 많은 직업을 대체하기도 합니다. 라디오 작가는 앞으로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갈 수 있을까요.
“지금도 AI가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해요. 사람의 목소리를 입력시키면 학습해 다른 내용까지 읽는 방식이죠. 그런 부분은 가능하지만 작가의 영역은 달라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은 아직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아마 사람의 영역으로 계속 남지 않을까요.”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TV가 나오고, 인터넷이 나왔지만 나지막하게 흘러나와 우리 귀를 간지럽히는 라디오 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없어선 안 되는 직업, 라디오 작가를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에서 만나봤다. 단 몇 마디의 오프닝 멘트로 청취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김현아 라디오 작가(50)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세월이 지나도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라디오 작가의 역할을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라디오 작가는 출연자를 섭외하고 대본을 쓰는 일을 해요. 프로그램 시간과 콘셉트에 따라 기획을 하고, 대본을 작성하고, 패널을 섭외해요. 보통 메인 작가가 오프닝부터 코너 운영까지 업무 분장을 하죠.”
▶한 프로그램에는 몇 명의 작가가 필요한가요.
“메인 작가 혼자서 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2~3명이 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3명이 있으면 메인-서브-막내 작가로 구성되죠. 메인 작가가 모두 다 관여하기도 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코너를 나눠 맡기기도 해요. 프로그램마다 다 다른 게 라디오 작가의 세계죠.(웃음)”
▶작가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뤄지겠네요. 특히 생방송이 많으니 규율도 강할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그랬죠. 물론 개인 또는 팀에 따라 지금도 그런 곳이 있고요. 서브나 막내 작가들은 어떤 아이템을 구상하는지 메인 작가에게 승인을 받아야 해요. 선배를 설득하는 과정이죠. 그 코너에 어떤 출연자를 섭외할지, 어떻게 구성할지가 중요해요. 일을 잘하는 작가들이야 믿고 맡기는데, 그게 안 되면 옆에 끼고 가르쳐야죠.(웃음)”
▶작가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되나요.
“일반적으로 메인, 서브, 막내 작가로 구분됩니다. 막내 작가로 시작해 서브, 메인으로 올라가죠. 프로그램마다 다른데 같은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에도 작가가 한 명 있을 수도 있고, 메인과 서브 작가 두 명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일반 회사처럼 몇 년 일하면 승진이 되는 건 아니고 일을 잘하면 막내에서 바로 서브로 올라갈 수도 있어요.” ▶작가가 많은 곳과 적은 곳의 차이는 뭔가요.
“급여의 차이겠죠.(웃음) 프로그램 제작 예산은 늘 정해져 있잖아요. 작가에게 주어질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PD의 역할이죠. 혼자서 하면 일은 많겠지만 아무래도 페이는 조금 높을테고, 인원이 많으면 그 반대겠죠.”1996년 TV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입문... 2002년 라디오 작가로 전향▶라디오에선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단 몇 줄로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매일 새로운 멘트를 써야 하는 부담이 클 것 같아요.
“매일 오프닝 멘트 소재를 찾아야 해요. 날씨 얘기나 유명인의 얘기도 매일 쓸 순 없어서 어떤 소재를 찾을까 늘 고민이죠. 저는 다음날 오프닝을 정해 놓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자는 성격이라 평소에 책에서 본 좋은 글귀는 그때그때 다이어리에 옮겨놓는 편이에요.”
▶오프닝 멘트가 잘 된 날에는 청취자들의 반응도 다른가요.
“가끔 ‘오프닝 너무 좋아요’라고 문자가 올 때도 있어요. 꼭 오프닝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상식을 배워요’라는 청취자 문자가 힘이 되곤 하죠. 요즘 시사 프로그램은 오프닝이 없어지는 추세예요. 기자나 전문가가 진행을 맡기 때문에 본인이 쓰든지 아니면 그 날의 코너를 요약해 소개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죠.”
▶라디오 작가를 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작가를 시작한 건 1996년부터였어요. TV 시사 프로그램 작가가 시작이었죠. 주로 탐사보도를 많이 했는데, 카메라를 숨기고 잠입 취재를 밥 먹듯 했어요. 그러다 2002년 라디오로 전향했어요.” ▶TV에서 라디오로 옮긴 계기가 있었나요.
“남편이 KBS PD인데, 남편의 동료와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라디오를 시작하게 됐어요.(웃음) 사실 탐사보도가 제 적성엔 맞았어요.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돼 있지 않던 시절이라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죠. 성매매 현장이나 짝퉁시장 같은 곳을 카메라 하나 들고 취재하면서 가슴 뛰는 경험을 했죠.”
▶그동안 맡았던 프로그램은요.
“딱히 이유는 없지만 거의 KBS1 라디오만 했었어요. 라디오24, 뉴스와이드, 정관용의 지금 이사람, 김태훈의 프리웨이, 김기자의 눈 등을 했었죠. 지금은 ‘라디오 전국일주’를 하고 있어요.”
▶시사 프로그램을 오래 하셨어요. 시사 프로의 특징이 있다면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질문을 던지는 방송이라고 생각해요.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고요.”"청취자가 궁금해 할 질문 대신 던져주는 직업... 글쓰기, 아이템 발굴, 전문가 섭외 능력 필요"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는 건 곧 어떤 아이템으로 청취자들에게 접근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언제나 청취자가 뭘 궁금해 할 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작가의 일이에요. 사회 이슈나 시기에 따라 제기되는 이슈들이 있잖아요. 비슷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른 방송과 차별성을 두면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거죠. 예를 들어 코로나19나 오미크론에 관해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방송은 아주 많아요. 그 중에서 어떤 질문이 청취자들이 궁금해 하는 포인트일지를 고민하고 방송을 만드는 거죠.” ▶그런 면에선 라디오 작가는 청취자를 대신해 질문을 만들고 던지는 직업이군요.
“그렇죠. 인터뷰도 마찬가지예요. 청취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과 인터뷰이가 가진 정보를 빠짐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틀을 만들어 줘야 하죠. 그래서 코너 구성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10개의 질문이 있다고 한다면 질문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1번의 질문은 2번을 위해, 2번은 3번을 위해 존재하는 질문을 만들어요. 질문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면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방송을 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요.
“아이템만큼이나 어떤 출연자를 섭외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어도 출연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획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에요. 간혹 전문가로 방송에 나오는 분들 중에 확실한 콘텐츠가 없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제가 만드는 방송에는 못 나오죠. 콘텐츠로 똘똘 뭉쳐있는 분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아이템과 출연자는 함께 가야 하는군요.
“그렇죠. 아이템을 먼저 생각하고 출연자를 찾을 수도 있지만 좋은 전문가를 보면 아이템이 떠오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신인 발굴도 작가들이 많이 합니다. 방송 경험이 없는 분을 섭외해 어떻게 보면 데뷔를 시키는 건데요. 그런 분들이 꾸준히 방송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 좋죠.”
▶숨겨져 있는 방송인을 발굴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군요.
“맞아요. 저는 능력이 있는 분들을 보면 그 사람이 방송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편이에요. 제가 만드는 방송 외에도 이 사람이 잘 어울릴 만한 방송으로 연결시켜 주는 거죠. 오지랖이 좀 넓어요.(웃음)”
▶방송을 잘한다는 기준은 뭔가요.
“우선 콘텐츠가 있어야겠죠. 방송에 적합한지도 중요하고요. 작가들은 입을 떼는 순간 이 사람이 방송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어요.(웃음)” ▶라디오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궁금해 할 부분인데요. 작가가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나요.
“우선 글은 좀 써야겠죠. 음악 프로그램 작가는 감성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시사는 통찰력이 있는 글과 구성력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책도 많이 읽고, 사회 문제에 관심도 가져야 해요. 검색을 잘하는 것도 작가의 조건이에요. 어떤 주제라도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지를 파악해 정보를 습득하는 거죠. 하나 더 꼽자면, 섭외도 잘 해야 합니다. 라디오는 매일 방송하기 때문에 그만큼 섭외 대상이 많죠. 출연자의 연락처 섭외부터 방송에 꼭 필요한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도 작가의 능력에서부터 시작되죠.”
▶음악 프로그램과 시사 프로그램을 병행할 수도 있나요.
“장르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저도 음악 쪽은 잘 몰라요. 주변에서는 작가가 음악을 모르냐고 신기해 하죠.(웃음)”
▶작가들의 연봉은 어떻게 되나요.
“방송사마다 달라요. 보통 주급으로 받는데, 월급으로 받는 곳도 있어요. 작가들의 페이는 구성료예요. 예를 들어 한 시간짜리 방송을 하면 앞뒤 광고를 뺀 시간이 40분 정도 돼요. 그럼 그 시간에 대한 구성료를 받는 거죠. 시간이 늘어나면 써야 할 원고가 늘어나기 때문에 비용도 자연히 늘어나고요. 일주일에 책정된 작가 페이가 100만원이면 그 안에서 나눠 책정하게 됩니다.” ▶작가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몇 년 전 새벽 5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지구의 날이라 슈퍼 태풍에 관한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그 분이 펑크를 낸 거예요. 지방 출장을 갔다가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도저히 연결하기 어려운 상태였죠. 방송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그때 문득 방송을 안 하기로 유명한 기자가 있었어요. 그 분야엔 전문가인데 방송은 안 하는 분이었죠. 다른 방법이 없어 새벽에 전화를 드려 상황 설명을 했더니 ‘제가 할게요’ 하시더군요. 그날 방송도 아주 잘 나왔어요. 아직 얼굴을 뵙진 못했지만 그날의 감사함은 잊지 않고 있어요.”유튜브 기획, 제작 요청... 정치권에서도 '러브콜' "작가의 창작 활동, 인공지능이 대체 못할 것"▶요즘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로 인해 라디오를 듣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라디오 작가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작가는 프리랜서잖아요. 라디오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저에게도 대학병원이나 기관에서 팟캐스트, 유튜브를 기획·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요즘엔 정치인들이 라디오 시사 작가를 선호하는 분위기예요. 연설문을 쓴다거나 페이스북 등 SNS 관리를 맡을 수 있는 보좌관으로 채용하기도 하죠. 개인적으론 제 이야기로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브런치에 제 얘기를 연재했는데, 영화사에서 그걸 보고 연락이 왔어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요. 아이 다섯인 엄마이자 라디오 작가의 이야기예요.(웃음)”
▶최근엔 AI(인공지능)나 로봇이 많은 직업을 대체하기도 합니다. 라디오 작가는 앞으로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갈 수 있을까요.
“지금도 AI가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해요. 사람의 목소리를 입력시키면 학습해 다른 내용까지 읽는 방식이죠. 그런 부분은 가능하지만 작가의 영역은 달라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은 아직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아마 사람의 영역으로 계속 남지 않을까요.”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