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 요인 '수백가지'
수출·수입, 금리 등 핵심 변수
美, 물가잡기 위해 금리 올리면
달러 강세로 한국은 물가 상승
구한말 엽전 6000개가 1달러
경제력 세계 10위 된 대한민국
기업·일반인 환율에 울고 웃어
“6㎏ 무게인 엽전 6000개가 현재 환율로 1달러에 해당한다. 수백달러짜리 물건을 사려면 짐꾼들을 고용해 돈을 실어 날라야 한다.”수출·수입, 금리 등 핵심 변수
美, 물가잡기 위해 금리 올리면
달러 강세로 한국은 물가 상승
구한말 엽전 6000개가 1달러
경제력 세계 10위 된 대한민국
기업·일반인 환율에 울고 웃어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인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은 조선을 여행한 뒤 쓴 《조선, 1894년 여름》에서 당시 사회경제상을 이렇게 남겼다. 엽전 6000개 가치가 겨우 1달러. 조선 말기의 경제가 엉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원화의 가치는 120여 년 전 엽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력을 과시한다. 또한 글로벌 경제 체제에 깊숙이 편입돼 있다. 그런 만큼 환율에 훨씬 민감해졌다. 수출 기업도, 주식 투자자도,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와 자동차 운전자들도 환율에 울고 웃는다. 환율 변동은 고차 방정식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500가지가 넘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크게는 국제수지, 국내외 금리차, 물가로 나눠 볼 수 있다. 수출이 늘어나거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매입해 달러가 유입되면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다. 반대로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거나 해외여행이 증가한다면 달러가 유출돼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자산의 상대적 수익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가 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환율 상승을 불러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국내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 값싼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투기적 요인’까지 개입돼 환율 변동 폭을 키운다. 환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미래에 쓸 달러까지 미리 사두고, 환율이 내릴 것 같으면 미래에 들어올 달러까지 선물환으로 앞당겨 파는 것이다. 전쟁, 천재지변, 정치적 불안정 등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도 환율은 변동한다. 환율 상승→수출 증가 연결고리 약해져환율 변동은 경제에 다양하고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율 상승은 원론적으로는 수출을 늘리는 요인이다. 달러로 표시된 수출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작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2021년 11월)에 따르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에서 환율을 비롯한 금융 요인의 기여도는 2000년대 초반 국내총생산(GDP) 대비 1%가 넘었으나 2010년 이후엔 거의 0%에 수렴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20년 12월)은 환율 하락 시 중소기업 수출은 크게 감소하지만, 대기업 수출은 의미 있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환율과 수출의 상관관계가 약해진 것은 글로벌 밸류 체인의 영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환율이 올라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더라도 수입 원자재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 그 효과는 상쇄된다.
최근 환율 상승은 수출 확대에 대한 기대보다는 물가 상승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소비재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수입 원자재를 재료로 한 국산 소비재 가격도 시차를 두고 상승한다. 자국 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이것이 한국의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환율 오름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물가도 잡기 힘들다는 얘기다. 총성 없는 전쟁, ‘환율 전쟁’환율은 종종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된다. 많은 나라가 자국 화폐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무역수지를 개선하려고 한다. 미국이 대(對)일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높이도록 한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늘린다고 보고 있다.
각국 정부는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한다.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와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엔 ‘박스(box)’라고 불리는 통제구역이 있다. 이곳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경우 달러를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구매력평가설, 이자율평가설, 빅맥지수, 고정·변동환율제도 환율과 관련해 알아둬야 할 개념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