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중국의'메디치가'양저우 상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소금상인들이 화가 후원…학문과 예술의 전성시대 열려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청나라의 전성기라고 하는 건륭제 시대, 당시 장쑤성(江蘇省)의 상업도시 양저우에는 상인문화가 가미된 독특한 도시문화가 형성됐다. 양저우는 신사와 문인들에게 생계수단을 모색하고 문화·사교계에서 지위 상승을 도모하기에 적합한 도시로 인식됐다. 융성하던 고증학의 대가들이 양저우를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배출됐고, 이를 기반으로 ‘양주학파’가 형성됐다.

사대부가 아니더라도 학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곳이 양저우였다. 유명한 상인이었던 마왈관과 그 가문은 장사로 번 돈으로 집에 10만 권의 장서를 모았다. 마왈관의 아들 마진백은 건륭제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할 때 다수의 귀중본을 제공했다. 마진백은 제공한 책 중 776종이나 진본으로 채택돼 건륭제로부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하사받았다. 마진백뿐 아니라 포사공, 왕계숙 등 지역 상인들도 500종 이상의 책을 기증해 《고금도서집성》을 받았다. 양저우의 염상 마유도 귀한 책을 많이 바친 기증자 명단에 포함됐다. 휘상 가문 출신 정진방은 베이징 한림원에서 옹방강(翁方綱·1733~1818)과 함께 《사고전서》의 교감과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상인 중 상당수는 학위를 가진 신사이기도 했다.

《사고전서》 편찬 당시 중국 각 성의 순무들이 제출한 4831종의 책이 《사고전서》에 수록됐는데 이 중 17.8%인 861종이 장쑤성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장쑤성 제출 저서의 대부분은 양저우에서 수집된 것이었다.

하지만 양저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화적 특색은 미술이었다. 부유한 재력을 지닌 소금상인(염상)들이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자연스럽게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18세기 말 양저우에서 활동하던 화가의 수가 500명에 달했다. 그리고 예술가 중 상당수는 과거에 실패해 예술가로 전업한 사대부였다. 유교적 전통질서가 흔들리던 시기,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했던 강남의 중심지에선 지식인들이 추구한 최선의 삶이 관직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사대부도 상업활동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고, 상인도 학문을 통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원래 신분에 관계없이 평소 연마한 기예를 직업화할 수도 있었다. 이때 예술가의 길을 택한 사람 중 자유분방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이름을 날렸던 금농, 황신, 이선, 왕사신, 고상, 정섭, 이방응, 나빙 등 8명에 대해선 중국 미술사에서 ‘양주팔괴(揚州八怪)’(사진)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양주팔괴라는 명칭 자체는 이들 화가가 활동한 때부터 100여 년이 지난 광서 연간에 왕윤이란 사람이 저술한 《양주화위로》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한다. 양주팔괴란 표현의 ‘괴’는 ‘광(狂)’이나 ‘일(逸)’처럼 기존의 생활방식과 화법을 벗어난 것을 가리킨다. 양주팔괴는 대부분 사대부 출신이었지만 직업화가로 전향하면서 신분적 허울을 벗어던졌고, 그림도 전통적인 화법을 탈피해 개성적인 작품을 그렸다.

양주팔괴 중 “큰 족자는 6냥, 반폭 족자는 4냥, 작은 것은 2냥, 족자와 대련은 한 쌍에 1냥, 부채 그림은 반 냥. 선물보다는 돈”이라며 “여섯 자짜리 그림 하나가 3000냥이니 대나무를 그리는 것이 대나무를 심어 파는 것보다 돈이 남는다”며 그림 팔기에 나섰던 정섭 역시 사대부 출신이었다. 그는 일찍이 “관아에 누워 듣는 소소한 대나무 소리, 백성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 같구나. 나 비록 일개 하급관리에 지나지 않지만, 가지 하나 잎 하나에 모두 감정이 서려 있네”라는 비장한 시구가 적힌 묵죽도(墨竹圖)를 그린 관료였다. 하지만 흉년에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상부의 허가 없이 관가의 창고를 열었다 쫓겨난 뒤론 전업화가가 됐다.

호구지책으로 사대부의 위엄을 벗어던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양저우에 그림을 수집하는 부유한 상인, 작품을 거래하는 상점, 작품을 표구하는 표구점, 전문적인 그림 거래상 등 미술시장이 활발히 유지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8세기 중국 양저우는 그처럼 열린 공간이었고, 그래서 번창한 지역이었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18세기 양저우에서 학문과 예술이 번창하게 된 배경을 알아보자.

2. 유교적 전통 속에서 사대부들은 왜 예술가로 전업한 걸까.

3. 역사적으로 경제가 좋을 때 문화 예술이 발전하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