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최초의 인플레이션 충격(上)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신대륙 남미에서 은이 대규모로 유입…16세기 유럽 물가는 4배 가까이 상승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서 먹기를 원한다.”

남미 대륙 상부페르(볼리비아)에 있는 포토시 은광에서 대규모 은이 유입된 이후 스페인 경제는 대격변을 맞이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외교관이었던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가 ‘몸을 누일 여인숙도 찾기 힘들고,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던 빈 땅’으로 묘사했던 이베리아반도의 풍경은 100년 사이 급격히 변했다. 역사학자들이 최초의 ‘가격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501년부터 1600년까지 16세기 한 세기 동안 유럽의 물가는 4배 가까이 올랐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1.4% 정도니 현대인의 시선에선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당대인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페인 전체적으로는 1500년대 전반기에 두 배 넘게 올랐다. 1510년대와 1530년대, 1550년대에 특히 많이 뛰었다. 1560년대부터는 물가가 꾸준히 상승했다. 다만 1551~1556년, 1562~1569년, 1584~1596년이 상대적으로 안정기였다. 1596년부터는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해 1601년에는 1571~1580년에 비해 143.55% 상승했다. 결론적으로 1600년이 되면 1501년에 비해 4배나 오른 셈이다. 이후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1637~1642년에는 신대륙 은 유입 급감 여파로 오히려 일부 물가가 떨어진다. 하지만 16세기 급등한 상태를 기반으로 물가는 과거처럼 싸지지 않게 된다.

구체적으로 물가혁명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유럽 대륙의 물가가 본격적으로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1535년께부터다. 일반적으로 서인도제도 무역 독점권을 쥐고 있어서 은의 유입 1번지로 꼽혔던 안달루시아의 물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그 뒤를 신 카스티야, 구 카스티야, 레온, 발렌시아 순으로 따랐다.

서인도제도와 남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금은 아프리카 수단(금)과 중부 유럽의 독일(은)지역 광산에서 공급되던 과거의 귀금속 공급망을 순식간에 대체해버렸다. 피에르 쇼뉘의 표현을 빌리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여 년간 축적한 금이 2~3년 만에 모두 유출될 정도”로 신대륙의 금과 은이 흡수됐다.

특히 인디오 노예 노동이라는 초저가로 생산된 은의 공급이 압도적이었다. 초반에는 노천 광맥에서 은을 캐다가 나중에는 인디오 한 명당 250m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하루 12시간씩 50㎏ 포대 25개를 운반할 정도로 착취가 이뤄졌다.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은의 총량은 1만7000t으로 추정되며 이는 연평균 170t에 해당한다. 17세기에도 연평균 420t, 총 4만2000t이 채굴됐다. 이 중 3만1000t이 유럽 대륙에서 들어왔고, 그중 국고로 들어간 것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애덤 스미스는 훗날 영국이 스페인의 선례를 따라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금과 은을 캐기 위해 저가의 현지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지 않은 이유로 “그러길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 같은 규모의 금과 대규모 원주민 노동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

은의 유입은 1530년대 가장 활발했고, 1550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1580년대까지 스페인 겔리온 선을 통해 유럽 대륙에 엄청난 양의 은이 유입되면서 유럽의 가격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다. 스페인이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본격적으로 귀금속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였는데, 특히 포토시 은광 개발 이후 세비야를 통해 들어오는 은의 규모는 엄청나게 늘었다.

1560년대 후반 연간 83t에 달했던 은 수입량은 1590년대 전반기에 274t까지 늘었다. 특히 독일에서 개발된 수은아말감법으로 은 추출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1557년 바르톨로메데 메디나에 의해 스페인 식민지에 전해졌고, 1571년에는 포토시 은광에도 본격 적용됐다. 신대륙에서 은의 수출은 스페인 전성기인 1580~1630년 꾸준히 늘었다. 은의 유입이 늘면서 은 가격을 금으로 환산하면 16세기 중반 11분의 1 수준에서 17세기 말에는 15분의 1까지 하락했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16세기 유럽에 은이 대규모로 유입되게 된 요인들을 알아보자.

2. 수요발 인플레이션과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다른지 학습해보자.

3.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어떤 경제적 파급효과를 불러오는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