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의 병 치료하죠”몸에 생긴 병만큼 위험한 것이 마음의 병이다. 신체적인 질병은 증상이 겉으로 드러난다. 반면 마음의 병은 눈에 잘 띄지 않은 채로 시간이 가면서 깊어지기 십상이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이 있지만, 여전히 정신과라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처럼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마음의 병이 몸에 난 병보다 위험하다고 말한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배경이 된 강력 범죄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등이 종종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전문의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전문의(37)를 만나봤다. Q.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려면.
“의사가 되려면 예과 2년, 본과 4년 과정을 마쳐야 한다. 대학마다 커리큘럼이 다르지만 첫 1년은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등 의학 공부에 필요한 기초 학문을 배우고, 2학년 때는 소화기학, 신경학, 근골격학, 정신과학 등 기초 의학부터 병리현상, 진단과 치료에 대한 내용을 장기·기능별로 배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련 기간은 4년이다. 1년차부터 4년차까지 정해진 과정에 따라 수련하고, 병원에 입원한 정신분열증, 양극성 정동 장애, 우울증 등의 환자들을 맡아 치료하고 이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전공의 수련을 끝낸 뒤 전문의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Q.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어떤 직업인가.
“정형외과 의사가 근골격계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고 심장내과 의사가 심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듯 정신과 의사는 뇌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는 사람이다. 뇌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사람이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호르몬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고, 심리적인 영향도 있다.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는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 두 가지를 모두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Q.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정신과 진료실과 다른 모습이다. 영화 속 정신과엔 환자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카우치가 있던데 이 곳에는 안 보인다.
“우리 병원은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대부분의 병원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가 편안한 의자에 누워 심리 치료를 받는 곳도 있지만 그리 많진 않다. 반대로 진료를 짧게 하고, 약물 처방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식당도 패스트푸드점, 일반 식당, 오마카세 등이 있듯이 정신과 병원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우리 병원은 일반 식당에 비유할 수 있다.” Q. 환자 한 명당 진료시간은 어느 정도 되나.
“우리 병원은 보통 30~40분 상담을 한다. 아까 얘기한 카우치가 있는 병원은 정신분석 치료를 하기 때문에 좀 더 깊고 길게 진료한다.”
Q. 정신과 전문의 외에도 팟캐스트, 작가,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작년에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 유퀴즈에 출연했는데, 방송 이후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얼떨떨하다.(웃음)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연세대 의대 동기들과 2017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들어줘서 감사하게 방송하고 있다.”
“한국인 4분의 1 정신질환 겪어…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환자 인생 망친다”
Q. 팟캐스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사실 화가 나서 시작했다. 내가 만나 본 환자들 중에는 빨리 치료했으면 분명 좋아졌을 분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에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치료를 늦추다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는 사례를 많이 봤다. 굿을 해야 한다거나 기도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얘기를 해 환자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대한민국 국민 4분의 1이 살면서 한번쯤 정신질환을 겪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지만 정보가 많지 않다. 팟캐스트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Q. 왜곡된 정보로는 주로 어떤 게 있나.
“대표적으로 정신과 기록과 약물에 대한 것이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진료 기록이 남아 나중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 기록은 제3자가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과 진료를 받아도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또 진료 기록은 보관 기간이 정해져 있다. 어렸을 때 진료를 받았다면 성인이 될 무렵엔 기록이 사라진다. 정신과 병원 중엔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곳도 있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에 기대어 왜곡된 정보를 이용하는 마케팅이다. 약도 마찬가지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거나 멍해진다는 얘기가 있는데 잘못된 정보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이 200종이 넘는다. 그 중 부작용이 있는 약도 있지만 없는 약도 많다. ‘정신과 약’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다.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내과약, 정형외과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진통제, 해열제 등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Q.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나온다. 예전에 비해 정신질환 환자가 많아진 건가.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2017년 5월)으로 개정되면서 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입원 치료가 까다롭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보호자 2인과 담당 의사의 동의가 있으면 입원 치료가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입원 치료 요건이 엄격해졌다. 정신질환은 환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안타깝게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 사건도 마찬가지인데,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에게 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법 개정으로 인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줄어들어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을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정신질환 사건은 자극적인 이슈라 보도가 많이 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불안장애 증가… 운동, 취미 등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
Q.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 수가 늘었나.
“통계를 봐도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정신과를 찾는 분들이 늘었다. 대부분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분들이다. 갑자기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면서 안 좋은 생각이 드는 증상이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로 나타나는 것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다.”
Q.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이들 중에는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언제 병원에 와야 하나.
“우리가 감기나 몸살로 동네 병원을 갈 땐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간다. 몸이 조금 이상하면 병원에 가는데, 정신과에 오는 분들은 대개 참을 만큼 참았다가 온다. 때문에 병원에 왔을 땐 이미 심각한 수준인 사례가 많다. 특히 요즘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거나 갑자기 공황 증상을 겪는 분들도 있다.”
Q. 우울증, 불안장애를 미리 막는 예방법이 있나.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사람에겐 루틴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전에는 출근, 식사, 티타임, 퇴근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루틴이 있었다. 이런 게 갑자기 사라지면서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가 찾아오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보통 하강 나선을 탄다고 한다. 재택근무로 인해 활동량이 줄어들고, 광합성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하나의 변화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스스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없더라도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Q.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과정은 어떤가.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우선 의사가 돼야 한다. 의대를 졸업한 뒤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쳐야 정신과 전공의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합격하면 4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담, 진료방법 등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그 중 자신이 만난 환자의 케이스를 토대로 평가받게 된다. 어떤 증상의 환자를 어떻게 상담하고 진료했는지를 빼곡히 적어 제출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의가 될 수 있다.”
Q. 정신과 전문의가 갖춰야할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의학 전공과 다르게 정신과 의사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면 공감 능력, 감정조절 능력,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 환자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도 3년 넘게 만나 온 환자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외에도 한 분 한 분의 살아온 인생사가 다 다르고, 자신만의 심리를 가지고 있어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예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편이다.”
Q.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 것 같다. 극복 방법이 있나.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환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그렇고 진료 시 의사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환자가 많다. 감정적으론 힘들지만 금방 회복하는 편이다. 흔히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남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Q. 상담 도중 환자가 욕을 하거나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환자들이 욕을 하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다.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사람들이 떠나가는데, 의사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이런 증상을 ‘투사적 동일시’라 부른다. 레지던트 시절엔 나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환자들과 마주치면 이런 것까지 참으면서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환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분석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Q. 그런 일이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환자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라 방어기제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내 정신건강을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주로 운동을 하거나 웹툰을 본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어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다.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생각을 끊는 것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퇴근 후에도 직장 일을 떠올리다가 이곳(정신과)에 오게 된다. 스트레스는 원래 한 번 끊고 나면 그 강도가 줄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끊을 수 있는 본인만의 취미나 루틴이 필요하다.”
Q. 진료를 하면서 위험한 적은 없었나.
“아직 큰 난동으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정신과 의사들 책상에는 인근 지구대와 연결돼 있는 비상벨이 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상벨을 누르면 바로 경찰이 출동한다. 이것 말고도 민간 보안 출동 서비스도 있는데, 아직 누른 적은 없다.”
Q. 정신과 특성상 다른 의학 전공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의 상태를 머릿속으로 진단하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진단 교과서라는 가이드가 있지만 그걸 외우고 인지해 판단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의사 스스로가 진단과 치료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치료가 잘 됐을 땐 보람도 두 배가 된다. ‘당신이 내 삶을 바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정신과 의사만이 누리는 특혜다.(웃음)”
Q. 직업병이 있다면.
“예전에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앞에 나가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의사를 하면서 말수가 줄었다. 듣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병원 밖에서는 되도록 일을 안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Q.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주변에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볼 것 같다.
“맞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신기해 하면서 많이들 물어본다. 하지만 원칙 중 하나가 지인은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Q. 지인 진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상담을 하게 되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가정사부터 은밀한 성적인 이야기까지 자신만의 비밀이나 치부 등 아주 깊숙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환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는 나와 안 볼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인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 쉽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진료를 할 수가 없다.”
Q. 직업적 만족도는 어떤지 궁금하다.
“만족한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 많지 않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선생님이라 불러주시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니까.”
Q. 정신과 전문의의 비전은 어떤가.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있지만 어찌됐든 스트레스가 뇌에 영향을 미쳐 정신질환이 발생한다. 지나치게 빡빡하고 경쟁적인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정신질환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Q.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의사부터 돼야 한다는 말이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일단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그 다음엔 독서를 권하고 싶다. 책 속에는 저자들의 생각과 사람을 바라보는 흔적들이 묻어 있다. 다양한 책 속에서 사람과 심리를 알아 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
네이버 오디오클립 ‘뇌섹맘클리닉’
‘어쩌다 정신과의사’ 저자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배경이 된 강력 범죄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등이 종종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전문의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전문의(37)를 만나봤다. Q.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려면.
“의사가 되려면 예과 2년, 본과 4년 과정을 마쳐야 한다. 대학마다 커리큘럼이 다르지만 첫 1년은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등 의학 공부에 필요한 기초 학문을 배우고, 2학년 때는 소화기학, 신경학, 근골격학, 정신과학 등 기초 의학부터 병리현상, 진단과 치료에 대한 내용을 장기·기능별로 배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련 기간은 4년이다. 1년차부터 4년차까지 정해진 과정에 따라 수련하고, 병원에 입원한 정신분열증, 양극성 정동 장애, 우울증 등의 환자들을 맡아 치료하고 이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전공의 수련을 끝낸 뒤 전문의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Q.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어떤 직업인가.
“정형외과 의사가 근골격계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고 심장내과 의사가 심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듯 정신과 의사는 뇌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는 사람이다. 뇌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사람이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호르몬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고, 심리적인 영향도 있다.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는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 두 가지를 모두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Q.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정신과 진료실과 다른 모습이다. 영화 속 정신과엔 환자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카우치가 있던데 이 곳에는 안 보인다.
“우리 병원은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대부분의 병원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가 편안한 의자에 누워 심리 치료를 받는 곳도 있지만 그리 많진 않다. 반대로 진료를 짧게 하고, 약물 처방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식당도 패스트푸드점, 일반 식당, 오마카세 등이 있듯이 정신과 병원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우리 병원은 일반 식당에 비유할 수 있다.” Q. 환자 한 명당 진료시간은 어느 정도 되나.
“우리 병원은 보통 30~40분 상담을 한다. 아까 얘기한 카우치가 있는 병원은 정신분석 치료를 하기 때문에 좀 더 깊고 길게 진료한다.”
Q. 정신과 전문의 외에도 팟캐스트, 작가,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작년에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 유퀴즈에 출연했는데, 방송 이후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얼떨떨하다.(웃음)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연세대 의대 동기들과 2017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들어줘서 감사하게 방송하고 있다.”
“한국인 4분의 1 정신질환 겪어…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환자 인생 망친다”
Q. 팟캐스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사실 화가 나서 시작했다. 내가 만나 본 환자들 중에는 빨리 치료했으면 분명 좋아졌을 분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에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치료를 늦추다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는 사례를 많이 봤다. 굿을 해야 한다거나 기도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얘기를 해 환자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대한민국 국민 4분의 1이 살면서 한번쯤 정신질환을 겪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지만 정보가 많지 않다. 팟캐스트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Q. 왜곡된 정보로는 주로 어떤 게 있나.
“대표적으로 정신과 기록과 약물에 대한 것이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진료 기록이 남아 나중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 기록은 제3자가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과 진료를 받아도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또 진료 기록은 보관 기간이 정해져 있다. 어렸을 때 진료를 받았다면 성인이 될 무렵엔 기록이 사라진다. 정신과 병원 중엔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곳도 있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에 기대어 왜곡된 정보를 이용하는 마케팅이다. 약도 마찬가지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거나 멍해진다는 얘기가 있는데 잘못된 정보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이 200종이 넘는다. 그 중 부작용이 있는 약도 있지만 없는 약도 많다. ‘정신과 약’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다.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내과약, 정형외과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진통제, 해열제 등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Q.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나온다. 예전에 비해 정신질환 환자가 많아진 건가.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2017년 5월)으로 개정되면서 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입원 치료가 까다롭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보호자 2인과 담당 의사의 동의가 있으면 입원 치료가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입원 치료 요건이 엄격해졌다. 정신질환은 환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안타깝게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 사건도 마찬가지인데,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에게 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법 개정으로 인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줄어들어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을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정신질환 사건은 자극적인 이슈라 보도가 많이 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불안장애 증가… 운동, 취미 등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
Q.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 수가 늘었나.
“통계를 봐도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정신과를 찾는 분들이 늘었다. 대부분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분들이다. 갑자기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면서 안 좋은 생각이 드는 증상이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로 나타나는 것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다.”
Q.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이들 중에는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언제 병원에 와야 하나.
“우리가 감기나 몸살로 동네 병원을 갈 땐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간다. 몸이 조금 이상하면 병원에 가는데, 정신과에 오는 분들은 대개 참을 만큼 참았다가 온다. 때문에 병원에 왔을 땐 이미 심각한 수준인 사례가 많다. 특히 요즘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거나 갑자기 공황 증상을 겪는 분들도 있다.”
Q. 우울증, 불안장애를 미리 막는 예방법이 있나.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사람에겐 루틴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전에는 출근, 식사, 티타임, 퇴근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루틴이 있었다. 이런 게 갑자기 사라지면서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가 찾아오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보통 하강 나선을 탄다고 한다. 재택근무로 인해 활동량이 줄어들고, 광합성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하나의 변화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스스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없더라도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Q.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과정은 어떤가.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우선 의사가 돼야 한다. 의대를 졸업한 뒤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쳐야 정신과 전공의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합격하면 4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담, 진료방법 등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그 중 자신이 만난 환자의 케이스를 토대로 평가받게 된다. 어떤 증상의 환자를 어떻게 상담하고 진료했는지를 빼곡히 적어 제출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의가 될 수 있다.”
Q. 정신과 전문의가 갖춰야할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의학 전공과 다르게 정신과 의사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면 공감 능력, 감정조절 능력,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 환자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도 3년 넘게 만나 온 환자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외에도 한 분 한 분의 살아온 인생사가 다 다르고, 자신만의 심리를 가지고 있어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예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편이다.”
Q.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 것 같다. 극복 방법이 있나.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환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그렇고 진료 시 의사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환자가 많다. 감정적으론 힘들지만 금방 회복하는 편이다. 흔히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남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Q. 상담 도중 환자가 욕을 하거나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환자들이 욕을 하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다.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사람들이 떠나가는데, 의사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이런 증상을 ‘투사적 동일시’라 부른다. 레지던트 시절엔 나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환자들과 마주치면 이런 것까지 참으면서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환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분석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Q. 그런 일이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환자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라 방어기제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내 정신건강을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주로 운동을 하거나 웹툰을 본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어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다.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생각을 끊는 것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퇴근 후에도 직장 일을 떠올리다가 이곳(정신과)에 오게 된다. 스트레스는 원래 한 번 끊고 나면 그 강도가 줄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끊을 수 있는 본인만의 취미나 루틴이 필요하다.”
Q. 진료를 하면서 위험한 적은 없었나.
“아직 큰 난동으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정신과 의사들 책상에는 인근 지구대와 연결돼 있는 비상벨이 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상벨을 누르면 바로 경찰이 출동한다. 이것 말고도 민간 보안 출동 서비스도 있는데, 아직 누른 적은 없다.”
Q. 정신과 특성상 다른 의학 전공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의 상태를 머릿속으로 진단하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진단 교과서라는 가이드가 있지만 그걸 외우고 인지해 판단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의사 스스로가 진단과 치료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치료가 잘 됐을 땐 보람도 두 배가 된다. ‘당신이 내 삶을 바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정신과 의사만이 누리는 특혜다.(웃음)”
Q. 직업병이 있다면.
“예전에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앞에 나가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의사를 하면서 말수가 줄었다. 듣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병원 밖에서는 되도록 일을 안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Q.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주변에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볼 것 같다.
“맞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신기해 하면서 많이들 물어본다. 하지만 원칙 중 하나가 지인은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Q. 지인 진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상담을 하게 되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가정사부터 은밀한 성적인 이야기까지 자신만의 비밀이나 치부 등 아주 깊숙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환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는 나와 안 볼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인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 쉽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진료를 할 수가 없다.”
Q. 직업적 만족도는 어떤지 궁금하다.
“만족한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 많지 않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선생님이라 불러주시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니까.”
Q. 정신과 전문의의 비전은 어떤가.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있지만 어찌됐든 스트레스가 뇌에 영향을 미쳐 정신질환이 발생한다. 지나치게 빡빡하고 경쟁적인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정신질환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Q.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의사부터 돼야 한다는 말이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일단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그 다음엔 독서를 권하고 싶다. 책 속에는 저자들의 생각과 사람을 바라보는 흔적들이 묻어 있다. 다양한 책 속에서 사람과 심리를 알아 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
네이버 오디오클립 ‘뇌섹맘클리닉’
‘어쩌다 정신과의사’ 저자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