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직후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국제사회 핫 이슈로 떠올랐다. ‘월남 패망, 사이공 대함락’에 비교되면서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와 탄식이 이어졌다. 모순덩어리의 부실한 빈국이 통합·자립하지 못한 채 대책 없이 외세를 불러들이면서 비롯된 아프간의 혼란은 하나하나 정리해보기에도 딱하다. 당장의 문제는 탈(脫)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다. 반(反)탈레반 아프간인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국제사회로서는 이들의 처리가 보통 난제가 아니다. 전격 철군 결정을 내린 미국이 반탈레반 쪽 아프간인의 안전에 적극 나서기는 했다. 하지만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이륙하는 비행기의 바퀴에까지 매달리면서, 또 아이만이라도 피란시키기 위해 철조망 너머 미군 쪽으로 던지는 모습을 보면 상황은 짐작이 된다. 이 어려운 문제의 불똥이 한국으로도 튀었다. 미국이 해외 미군기지에 피란민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난제인데, 한국으로 들어온 난민의 한국 정착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피란민 수용 주장과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2018년 제주도로 들이닥친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사태로 온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아프간 난민 수용, 적극 나설 것인가 아니면 신중하게 유예할 것인가.
[찬성] 아프간 난민, 보편가치 인권문제 어려움 있지만 국제사회 역할 필요위기에 처한 아프간 난민을 외면한 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말하기 어렵다. 복잡한 우리 사정만 내세울 수가 없다. 미군이 철수하고 곧바로 탈레반이 국가 사회를 장악해버린 아프간에서 빚어지는 참극을 한번 보라.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고 여성들을 학대하고 어린이에게도 못할 짓을 자행하고 있다. 이것까지 저지하지는 못할망정 자유를 찾는 난민은 적극 도와야 한다. 탈레반 정부가 보편적 이성 국가로 설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야 한다. 유엔의 활동과 역할 강화도 그런 노력이 될 것이다.난민에 대한 대우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한다. 신변 안전을 위협받는 난민을 돕고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경제력 등 종합 국력으로 볼 때 한국이 그런 노력을 할 때도 됐다. 마침 미국이 해외 각지의 자국 군대 기지를 피란민 수용소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도 그 대상인 만큼 한·미 간의 협의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치밀한 업무 협조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는 난민법이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이 법을 제정했다. 이제 이 법을 활용할 상황이 됐다. 세계 10위권 경제교역 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유무형의 책무가 있고 인도적 역할도 주어져 있다. 이런 일을 잘 수행해낼 때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리더 국가로 성장할 수 있고, 국제교역 기반의 경제발전도 가능해진다. 난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 등에 대한 재정적 도움 주기나 국제 난민촌에 대한 물적 지원도 있지만, 난민 수용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해법으로 한국이 주장하고 추구해온 ‘다문화 사회’로 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문화 사회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측면은 미국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반대] 일자리·사회 적응 난제 '첩첩산중' 국론 분열된 '제주 예멘 난민' 보라국제사회에서 난민의 법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고, 이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해 나가는 것과 피란민을 대거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이슬람 사회, 극빈국의 피란민을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대거 수용할 때 한국 사회에서 빚어질 문제점들을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보라. 더구나 국민적 합의 또는 공감대도 없이 외국의 요구에 따라 난민촌이라도 만들 경우 과연 인권보호가 될 것이며, 이들의 사회적 독립이나 경제적 자활이 가능할 것인가. ‘이상’ 하나만 내세운 채 난민을 지금 곧바로 수용할 경우 빚어질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2018년 제주도로 예멘인들이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을 때 한국 사회가 어떠했나. 500여 명 들어온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벌집을 쑤신 듯 혼란스러웠고 국론은 분열됐다. 한국인 입국 브로커가 개입됐다는 의혹 속에 가짜 난민에 대한 지적부터 범죄와 테러 우려까지 나오는 등 소모적 논쟁이 전국적으로 빚어졌다. 한마디로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인권이 위협받는 난민인지, 범죄와 관련된 우범자인지 구별할 역량도 없었다. 그런 난민이 급증할 경우에 덩달아 늘어나는 치안 수요도 걱정이었다.
인권 난민을 위한 난민법과 무비자 제도를 악용하는 구체적 사례도 나왔다. 인도주의를 강조하고 국제적 역할에 목소리를 높인 수용론자 가운데 자기 집으로 난민을 한 사람이라도 받아들인 경우가 있었던가. 모두 이상에 빠진 채 입으로만 인권을 외친 게 한국 사회였다. 경우는 다소 다르지만, 서울의 조선족 밀집지역과 경기 안산 등 외국인이 많은 지역을 보면 난민이 아닌 ‘정상 입국 외국인’ 쪽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입 밖에 내기 꺼리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부터 지원을 위한 재원 등 여러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고 최소한의 준비를 한 뒤에 받아들여도 늦지 않다. √ 생각하기 - '한국으로!' 아닌 '내 옆집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됐나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SNS 등을 보면 우려와 반대 의견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우려에도 일리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서 나가면서 설익은 방안을 중구난방으로 내놓을 게 아니라, 오히려 한걸음 뒤따라가면서 차분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2018년 제주도 예멘인 난민 신청 때 혼란을 잘 복기해보면서 경계점으로 삼아야 한다. 터키 그리스 등이 바로 국경선을 높이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그렇다고 국제사회 일각의 요구나 요청을 바로 묵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런 기류는 그것대로 인정하고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한국이 어려운 것은 미국 측의 입장이다. 주한미군 기지에 난민을 수용하는 정도도 막을 수는 없다. 혈맹 미국의 요청이기도 할뿐더러, 미군기지는 외교공관 같은 치외법권 지위도 있다. 이곳으로 아프간 난민이 들어올 경우, 경유지가 될 것인지 한국이 종착지가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1000명을 잘 수용해도 1명에게서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 자칫 난민 인권유린 국가처럼 비칠 위험도 있다. 한국이 난민을 받아들이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