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59) 어느 가족 (下)
빈곤 해결 최선책은 돈 풀기 아닌 자립환경 조성
영화 ‘어느 가족’(2018)은 일본 도시 빈민층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일본 도쿄의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릴리 프랭키 역할)와 함께 좀도둑질을 하는 아들 쇼타(죠 가이리), 세탁 공장에서 쥐꼬리 월급을 받는 오사무의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쇼타의 누나 아키(마쓰오카 마유), 낡은 판잣집을 갖고 있는 연금 수급자 할머니 하츠에(기키 기린) 등은 피가 섞인 진짜 가족이 아니다. 제각기 사회에서 만나 우연히 ‘가족의 형태’를 갖춘 이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느날 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란 꼬마 유리(사사키 미유)를 길에서 발견한 이들은 유리를 거둬들여 자식처럼 키우게 된다. 하지만 오사무는 다리를 다쳐 건설 현장 일을 못하게 되고 노부요는 공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가족이 추억을 쌓기 위해 바다로 여행을 다녀온 뒤, 하츠에마저 눈을 감는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 연금이 끊길까봐 이들은 하츠에를 집 앞마당에 묻는다. 꼬마인 유리에게까지 도둑질을 가르치는 오사무에 회의를 느낀 쇼타는 일부러 티나게 물건을 훔치다 다쳐 입원하고, 경찰이 보호자 확인을 위해 출동하면서 이들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사회에 드러난다. 노부요는 죄를 모두 뒤집어 쓴 채 체포된다. 선진국인 일본에서 어째 이런 일이?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 영화를 제작했다. 가난한 가족이 연금을 계속 받으려고 할머니를 직접 암매장한 ‘유령 연금’ 사건이다.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시네마노믹스 (59) 어느 가족 (下)
빈곤 해결 최선책은 돈 풀기 아닌 자립환경 조성
일본은 경제 수준에 비해 빈부 격차 문제가 적지 않은 편이다. 국가별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분석할 때 보는 지표 중 하나가 <그림1>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다. X축은 지니계수로, 이탈리아 인구통계학자 지니가 개발한 소득 분배 지수다. 0과 1 사이에서 값이 커질수록 분배가 불균등하게 이뤄진 것으로 본다. Y축인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은 부모와 자녀의 소득이 얼마나 비슷하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숫자가 작을수록 계층 이등이 비교적 활발하고 높으면 소득이 대물림되는 경향이 크다.
이 그림에서 일본을 보면 지니계수는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소득의 세대탄력성은 전체 곡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즉 빈부차는 비교적 작지만 계층 이동은 그에 비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랫세대가 부모 세대의 소득 수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빈곤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문제에 대해 공공의 역할보다 개인의 책임을 더 중시하는 문화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난한 가족에겐 불행도 대물림됐을까. 모든 죄를 덮어쓰고 수감된 노부요는 면회를 온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만한 실마리를 건넨다. 유리는 학대받던 집으로 돌려 보내진다. 쇼타는 오사무를 뒤로 하고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지막이 ‘아빠’라고 속삭인다. 유리는 오사무 가족에게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들을 기다린다. 감독은 자식마저 ‘훔쳐’ 만든 가족의 절절한 이야기를 통해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개발도상국에서 입증된 ‘넛지’ 효과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정부가 이들에게 현금을 쥐여줬다면 빈곤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세계 각국의 정부와 많은 경제학자는 오랫동안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왔다. 가장 손쉽고 직접적인 방법이 현물 지원이다. 정부에서 매달 생활 보조금을 주거나 상황, 계층별로 일시적인 지원금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학계에서는 이보다는 간접적인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많다. 교육·의료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현실적이라는 논리와 같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부부는 저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 “선심성 정책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빈곤층 복지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간접적인 ‘넛지 효과’를 활용한 지원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넛지(nudge)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강요 없이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상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줘 스스로 일하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두 교수는 빈곤율이 높은 개발도상국에 직접 거주하며 이 이론을 증명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빈곤층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예방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예방 접종을 무조건 독려·강제하는 대신 접종하러 올 때마다 주식인 렌틸콩을 상품으로 나눠줬다. 그 결과 접종률이 5%에서 37%까지 일곱 배가량 오르는 등 큰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림2>. 이들 부부는 “빈곤층이 왜 저축을 하지 않느냐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지만 상당수는 은행에 계좌 개설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저소득층이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을 설립하는 등 전반적인 시스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① 한국의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 계층이동 가능성(소득탄력성) 등이 미국, 영국보다 좋은 이유는 왜일까.
②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적인 개입과 ‘넛지(부드러운 개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까.
③ 비혼과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