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 리디노미네이션
화폐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
돈의 자릿수 늘어나 생기는 불편 해소
한국도 1953, 1962년 두 차례 단행
장점 있지만 위험부담 감수해야
거래 편리해지고 물가 불안심리 차단
직·간접 비용부담 크고 경제혼란 우려
화폐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
돈의 자릿수 늘어나 생기는 불편 해소
한국도 1953, 1962년 두 차례 단행
장점 있지만 위험부담 감수해야
거래 편리해지고 물가 불안심리 차단
직·간접 비용부담 크고 경제혼란 우려

리디노미네이션은 잘하면 경제에 약(藥)이 되지만 잘못하면 독(毒)이 될 수 있다.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며 접근하는 ‘디테일’이 성패를 가른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터키가 꼽힌다. 터키는 2005년 화폐 단위를 100만분의 1로 낮추고, 돈의 이름도 리라에서 뉴리라로 변경했다. 이전까지 연평균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터키의 물가상승률은 화폐 개혁을 거쳐 한 자릿수로 묶였다. 반면 짐바브웨는 수차례 리디노미네이션에도 물가가 잡히지 않고 더 폭등한 사례다. 결국 2015년 자국 화폐 짐바브웨달러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를 쓰고 있다.
한국도 두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경험이 있다. 1953년 전쟁 이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100원을 1환으로 바꿨다. 1962년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10환을 지금의 1원으로 바꿨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리디노미네이션이 틈틈이 거론됐지만, 번번이 없던 일이 됐다. 순기능과 부작용 중 어느 쪽이 더 클지 예단하기 어려워서다.
한국은행이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에 소요되는 직접비용을 계산해 본 결과 2조6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새 화폐를 찍는 데만 3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측됐다. 금융회사 전산망, 상점 메뉴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교체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예상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물가 상승이었다. 9500원짜리 설렁탕이 9원이 아닌 10원으로, 3억9000만원 아파트는 390만원이 아닌 400만원으로 슬그머니 가격이 오를 수 있어서다. 한국은행 분석에는 물가 상승 가능성이나 경제 혼란에 따른 간접비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잘하면 약, 잘못하면 독…섣불리 추진 못해2000년대 들어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나라는 터키와 짐바브웨 외에도 루마니아, 아제르바이잔, 모잠비크, 가나, 베네수엘라, 투르크메니스탄, 잠비아, 북한 등 생각보다 많다. 선진국은 없고 하나같이 경제력이 취약한 국가들이란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남미 국가 베네수엘라가 3년 만에 리디노미네이션에 나선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2360%를 기록한 ‘살인적 물가상승률’을 잡을 방법이 없어서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다음달께 볼리바르 화폐 단위에서 숫자 ‘0’을 여섯 개 빼는 100만 대 1의 화폐 개혁을 예고했다. 현재 321만9000볼리바르 수준인 1달러가 하루아침에 3.2볼리바르로 바뀐다. 이 나라는 2008년 1000 대 1, 2018년 10만 대 1 비율로 화폐 단위를 줄인 적이 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