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시급)’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문 대통령이 사과했다. 2018년, 2019년 각각 최저임금을 16.4%, 10.9% 올렸는데 이에 따른 문제점과 후유증이 너무 컸다.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 충격 요인도 있었다. 노동혁신, 즉 생산성이 뒤따르지 않은 인위적 임금 인상의 여파는 길고 컸다. 결국 ‘시급 1만원’을 집권 3년 만에도 도달하지 못한 데 대한 대통령 사과가 나왔지만, 산업계에서는 “오히려 그게 정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과속 급등한 임금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심지어 “경제 여건과 생산성에 비추어 지금도 많이 높다”는 반발이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지난해 이후 계속 나왔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2022년도 최저임금 산정 준비 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면서 인상을 압박해 사회적 관심거리가 됐다. 자영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2021년 8720원인 최저임금이 동결돼도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어렵다는 곳이 32%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도 시급 1만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하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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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언제까지 저임금에 기대나…이제 정부가 적극 나서야경제 발전을 언제까지 저임금에 기대어 도모할 것인가. 한국 근로자들도 이제 저임금 구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이 문제를 기업과 고용주에게 맡길 수는 없다. 시급 1만원은 물가와 경제의 발전 정도를 감안할 때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소득을 끌어올림으로써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소주성)’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니었나. 그런 경제철학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부인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지금이라도 시급 1만원 실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들어 소주성에 대한 주장과 목소리가 정부와 여당 쪽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소주성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채 한계를 인정해버린 탓이다.

취약계층의 절규와 청년세대의 한탄에 귀 기울여보라. ‘이생망(이번 생은 망해)’ ‘헬조선 탈출’이란 말이 왜 생겼나. 나오지 않는 일자리에만 계속 매달릴 게 아니라 일단 임금 수준부터 올려둘 필요가 있다. 연애도 못하고,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청년들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올려주는 것보다 더 나은 대책이 무엇인가. 약간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경영의 합리화, 기존 임금체계의 재조정 등으로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물가 상황도 봐야 한다. 한동안 정체된 저물가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왔지만, 각국이 경쟁적으로 풀어낸 과도한 유동성으로 2021년 들어서는 물가 상승이 서민의 현실적 위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다가온다는 우려까지 공공연하지 않나. 오르는 물가 대응 차원에서도 임금 올리기는 필요하다. 대기업은 실적도 상당히 좋다. 영세한 가입자만 주로 언론 조명을 받고 있지만, 프랜차이즈 본사 같은 곳도 경영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정부와 국회가 좀 더 결심하면 임금 인상을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 속도 조절을 하더라도 일단 1만원은 달성해놓고 볼 일이다. [반대]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것"…영세사업자 지원책 허사 될 것임금은 생산성의 결과이다. 영업이익을 내야 많이 줄 수 있는, 경영 실적의 분배물이다. 제3자가 높은 임금을 강요할 권리도 없거니와, 형편이 못 되는데도 굳이 강제하면 빚을 내 줄 수밖에 없다. 이게 지속 가능하겠나. 한국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자영업자 10명 중 3명(32%)이 2021년 기준으로 8720원인 시급이 더 오르지 않고 동결만 돼도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어렵다고 하지 않나.

최저임금 1만원을 안 주겠다는 게 아니라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종업원이 없거나 가족과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과반수(46%)가량이 동결을 원하고, 아예 인하(16%) 주장도 적지 않다. 임금을 억지로 올렸다가 사업장 문을 닫게 되면 근로자들은 어디로 가나. 직원 해고나 줄폐업이 전체 산업계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영세한 자영업자 비중이 유난히 높아 전체 취업자의 25%에 달한다. 임금을 조금 더 받자고 일자리 자체를 잃어버리면 결국 누가 더 피해를 입고, 어느 계층의 손해가 커지는지 보나마나다.

지금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쪽은 이런 한계상황에 놓인 취약지대 근로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그 위의 임금도 연쇄적으로 올라가니 결국 대기업과 공기업 등 일자리가 극히 탄탄한 노동기득권 그룹만 득을 보는 것이다. 민주노총 쪽에서 ‘1만원 달성’ 주장이 유난히 큰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소주성 자체가 말이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끄는 것 같은 엉터리 정책이라는 게 친정부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가 집중된 중소사업자에게 특별 손실보상을 한다며 막대한 정부 빚까지 내기로 해놓고 임금 올리기로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중소기업의 호소와 자영사업자들의 절규를 흘려들으면 큰 부작용이 초래될 뿐이다. √ 생각하기 - 일본보다 높은 최저임금…지역·업종·연령별 차등화 모색할 때
[시사이슈 찬반토론] 일자리 감소 우려에도 '최저임금 1만원' 밀어붙일 만한가
한국의 최저임금(달러 환산 구매력 기준)이 아시아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나왔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3배, 1인당 국민소득은 1.3배인 일본보다 더 높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그만큼 최근 몇 년 새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인한 소득 개선 효과가 더 클지, 일자리 상실의 역효과가 클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노동시장에 아예 진입하지도 못한 실업자 등 진짜 약자를 위한 길인지,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근로자는 또 어떻게 줄일지도 숙제다. 생산성도 올리고 그에 맞춰 임금도 올려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면 기업은 채용을 줄이면서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이 최소한 생활비용 보장이라는 차원이라면 서울과 지방소도시가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지역별 차등화와 함께 업종별 차별화도 생각해볼 만하다. 부가가치가 더 높아 돈을 더 버는 업종은 좀 더 많이 받게 하는 식이다. 연령별 다양화까지 선진국처럼 유연하게 접근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